24.04.29 12:01최종 업데이트 24.04.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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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넘어섰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환전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환율.연합뉴스

올해 들어 환율이 7% 이상 급등했다. 윤석열 정부 취임 초기 1200원대 초반에서 시작해 상승 추세를 보이다 최근에는 1400원대를 넘어서며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무너졌다. 역사적으로 이 선을 넘어선 시기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2년 '레고랜드발 채권 쇼크' 사태 때뿐이었다.

이전 사례와 비교해 이번의 환율 급등은 외환위기로 전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023년 말 현재 외환보유액(4201억 달러)이 단기 해외채무(1362억 달러)에 비해 3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단기 해외차입금이 각각 777억 달러, 635억 달러에 달해 가용 외환 관리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주목할 것은 고환율의 장기화 가능성이다. 고혈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여러 합병증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 건강을 위협하듯,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수입 물가 상승, 자본유출 등으로 이어져 이미 고물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원화 약세, 달러 강세가 내년 이후까지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부채의 악순환 구조

최근 달러 강세의 근본 원인에는 미국 정부의 막대한 부채와 그에 따른 무분별한 국채 발행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미 연방정부 부채는 17조 달러나 증가해 2배로 급증했고 4월 현재 34.5조 달러를 넘어섰다. 매년 한국의 1년 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부채가 증가해 왔다는 얘기다.

미 의회예산국(CBO) 분석에 따르면, 조 바이든 정부 3년 동안 6.3조 달러의 연방 정부 부채가 늘었다. 2023 회계연도엔 1.7조 달러, GDP 대비 6.2%의 예산 적자가 발생했고 2024 회계연도인 올해 9월까지 1.6조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 적자는 채권 발행으로 메워 왔는데 2020년 이후 지난 4년간 10조 달러 이상의 채권을 발행해 왔다. 매년 2.5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문제는 부채의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 급증이다. 2024 회계연도 이자비용 지출은 8700억 달러로 국방비(8220억 달러)와 저소득층 의료지원예산(5390억 달러)을 넘어설 전망이다. 내년에는 이 이자비용이 더 늘어나 1조 달러 가까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빚이 빚을 낳는 구조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연합뉴스

이자비용이 급증한 이유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2022년 1.68%였던 평균 이자율은 2023년 5.03%, 2024년 5.33%로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에 따라 국채 수익률도 같은 기간 2.95%에서 4.22%로 크게 올랐다. 금리 인상으로 미 국채의 매력도가 높아지면서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증세나 세출 축소 등의 획기적인 재정개혁이 없는 한 10년 후인 2034년에는 예산 적자가 GDP 대비 6.1%, 이자비용이 3.9%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미국은 부채 증가 → 이자비용 증가 →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향후 10년 동안 이자비용 지급을 위해서만 12조 달러 이상의 채권을 발행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미국의 재정위기 가능성은 당분간 낮다. 글로벌 경제 불안이 지속되면 달러와 미국 국채 수요가 오히려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채 발행이 늘어날수록 달러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달러 수요 증가로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더 유입되면 인플레이션 통제가 어려워져 금리 인하가 쉽지 않게 된다. 실제 지난 10년간 미국으로 유입된 순자본은 14조 달러를 넘었다. 앞으로도 미국의 대규모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 자본 유입 가속화, 달러 강세, 고금리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달러 강세, 미국의 고금리 기조는 신흥시장국의 자본유출과 외채 부담을 가중시켜 글로벌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로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부채위기, 1990년대 아시아와 러시아 금융위기, 2018~2019년 튀르키예 외환위기 등은 모두 달러 강세 국면에서 대외 부채와 경상수지 적자가 높았던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IMF가 최근 미국의 공공 부채 증가와 이것이 글로벌 금융 시장, 특히 신흥시장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경고하고 나선 이유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마친 뒤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은 고환율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몇 달 내에 경제가 좋아질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거나 일시적인 경기 회복을 위한 대증요법식 정책 처방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특히 정부는 신흥국발 외부 충격에 대비해 환율, 금리, 국제수지 관리 등을 위한 정부의 각종 정책 수단과 기능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환율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보는 분야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경제위기 극복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제조업체 및 수입 물가 상승 등으로 구매력이 크게 떨어진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현금성 지원과 함께 식품, 주거 등 생활 안정을 위한 사회 보장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코로나 위기에서 효과가 입증된 소멸성 화폐 활용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멸성 화폐의 일종인 지역화폐로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면 소비 진작, 자금 유통 향상,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는 소멸성 화폐를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미국은 인프라 부족으로 도입조차 못 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곧 시작될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이를 위한 민생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흔히들 1000조 원이 넘는 국가부채 금액을 강조하지만 국가채무는 개인 채무와 달리 상환 시기보다 이자 감당 능력이 더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작년 말 현재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GDP 대비 1%도 되지 않는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윤 정부는 균형재정신화에 갇혀 저성장 속에서도 재정을 너무 소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희망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종합적인 위기극복 로드맵이 필요하다. 만약 정부가 설득력 있는 청사진을 내놓지 못할 경우, 야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기극복 로드맵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달러 강세, 미국의 부채 증가는 경제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미 외교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계속 증가해 왔고, 특히 재정적자는 당분간 개선되기 어렵다.

2023년 6월, 미국 의회는 연방정부 부채 한도 재협상 시한을 2025년 1월로 설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시한 이전에 여야 간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오는 11월 대선의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 정치권은 부채 한도 상향 조정과 재정적자 문제를 둘러싸고 큰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주둔비용,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 모든 부문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전략을 수립하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외교 협상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22대 국회도 큰 역할 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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