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사회 안에는 조화로움을 완성하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픽사베이
침을 뱉은 후 밀봉해서 보내면 유전자를 분석해 주는 시장이 있다. 수십만 원 하는 비용을 내면 인종, 혈통, 예상 질병, 탈모 등이 포함된 수십 가지 DNA 정보를 분석해 주는데 놀라운 건 대상자의 키와 몸무게뿐 아니라 직업 유형까지도 맞춰낸다. 단지 침을 뱉어 보냈을 뿐인데.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아주 많은 것들이 이미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본인이 차은우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본인 잘못이 아니고 차은우 본인도 자기 의지가 아니다. 그저 순전히 우연이 만들어낸 껍데기다.
거기에 각자의 성향과 취향 노력 가족 환경 등 삶에 영향을 주는 많은 변수들이 개입되면서 한 개인의 인생이 완성되어 간다. 유전형질은 개인의 선택이 배제되었지만 그 외의 변수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여기에서 자기 삶의 가능성과 희망의 싹을 틔운다.
내 인생 경험으로 공부 머리가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몸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복잡한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있고 단순한 일에 최적인 사람이 있다. 직업군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다. 이는 본인의 선택적 변수가 아닌 타고난 형질에서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 시대 최고의 글쓰기 전문가이고 시대를 선도하는 지식인인 유시민 작가의 고백처럼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김훈이 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타고난 문학적 재능의 임계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우리는 김훈이 유시민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유감스럽게 차은우도 김훈도 유시민도 될 수 없지만 다행인 것은 모두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가 사랑하는 나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가장 큰 이유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영역이 있고 각자는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다. 이런 소중한 개인이 그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되는 온도가 민주시민사회의 척도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교양은 그러니까 상대에 대한 배려가 포함된 존중이다. 있는 그대로의 개인에 대한.
조화로운 사회 안에는 조화로움을 완성하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의사, 목수, 교사, 벽돌공, 공무원, 택시 기사 등등이 직업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이 사회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몸을 쓰는 거의 모든 직업과 함께 택시 운전사는 과거로부터 존중되지 못한 직업이다. 개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빠진 자리는 자동으로 차별과 편견이 차지한다. 존중되지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존심은 높아진다. 자존감은 자기에 대한 신뢰이고 자존심은 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다.
차별적인 언어와 편견 어린 시선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화를 내는 이유가 그런 방어본능 때문이다. 그럼 또 택시 기사들은 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더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차별과 편견은 고착된다. 그러니 택시 기사는 30여 년을 변함없이 '이런 거'나 하는 사람들이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인 우리나라의 우울증 문제가 심각하다면 대표적 항우울제인 '프로작' 처방률이 월등하게 높은 북유럽 국가 중 아이슬란드 역시 그 심각성이 내재되어 있다.
대신 아이슬란드는 인구 대비 독서율과 작가군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은데 열악한 기후환경과 우울증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결국 같은 우울증 병인을 가진 사람이 어떤 나라에서는 작가가 되고 어떤 나라에서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린다.
교사와 벽돌공이 부부라는 말에 의아해하는 나를 오히려 의아해하던 입양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인권선언 초안이 작성된 해는 1789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35년 전, 조선 정조 13년일 때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인권을 헌법으로 새긴 해는 그로부터 159년 후, 제헌의회가 열린 1948년이었다.
한국 사회가 짧은 기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민주사회로의 진전을 이루긴 했지만 그만큼의 시민의식은 고양되지 못했다. 역사 발전에 '스킵'은 없고 세대를 뛰어넘는 시민의식의 발전 또한 불가능하다.
인간의 인식 체계는 자기 경험 안에 머물고 집단 경험이 세대 의식을 형성한다. 형식적이나마 민주화 이후 세대의 집단 경험이 우리 사회의 주류의식으로 대체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 민주화 이전 야만의 시절, 주위를 돌아 볼 여유조차 없었던 각자도생의 시민의식이 밀려나는 자리에 스며들어야 하는 건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런 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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