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택시미터기는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 터치형으로 진화했다. 차와 장비가 세련되게 진화해도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는 택시노동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다른 하나가 더 있다. 개인택시는 성실한 만큼 보상이 따른다.
김지영
택시는 매일 적게는 6시간에서 많게는 12시간 이상 운전한다. 택시 운전하는 사람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크게 두 종류다. 생계형과 은퇴형이다. 6시간에서 8시간 정도를 운전하는 사람은 돈보다 일이 필요한 사람이고 8시간에서 12시간 이상까지도 운전하는 사람은 일보다 돈이 필요한 사람이다.
어떤 유형이든 공통점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함께 오랜 시간 운전을 한다는 점이다. 내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도 오랜 시간 좁은 차 속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를 찾아내지 못했는데 저 노인의 말을 곱씹어보니 답이 떠올랐다.
성취였다. 그것도 매번 다른 사람을 낯선 곳에서 태우고 내려주는 작은 성취의 반복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말하자면 크든 작든 목적 있는 일의 연속이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만약 자동차를 주면서 매일 10시간을 아무 데고 상관없이 운전만 하라고 한다면 일당을 준다 해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건 견디기 힘든 무료함과 지루함이다. 제아무리 고급 차라도 마찬가지다. 그건 마치 돈 걱정은 없지만 일도 없는 은퇴 후의 지루함과 같다.
매일 택시에 오르면서 시간을 잊고 일을 할 수 있는 이유였다.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고 또 다른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는,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짧은 시간이 쌓여 하루를 만들었다. 새로운 출발지와 목적지의 무한한 반복이 택시의 운명이었지만 그 반복은 곧 작은 성취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원대한 꿈은 오히려 게으름과 포기의 명분이 되니 지금보다 딱 한 계단만 더 높은, 그러니까 지금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꿈을 가지라고 말해왔던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였던 셈이다.
그런 성취감이 삶을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그 발걸음의 총합이 잘나든 못나든 지금 내가 사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 발자국을 만드는 일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적성에 맞는 일이면 더 좋겠다. 말하자면 로망이 현실이 되어도 동요 없이 지속되는 삶이다.
택시는 혼자 하는 일이다. 개인택시는 일과 보상을 스스로 정한다. 돈 버는 방식은 단순하고 매출도 그만큼 정직하다. 열심히 하면 보상을 많이 받고 게으르면 보상이 적다. 택시가 가진 독립성과 단순성은 내 성향과 맞았다.
나는 복잡하게 돈 버는 일을 하지 못하지만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하려 노력한다. 그게 아니라도 나이 들어 돈은 단순하게 벌고 머리는 맑게 쓰자 했다. 택시가 가진 독립적 노동과 단순한 매출구조는 내 적성에 맞다.
과거 회사에 다닐 때 점심시간이 곤혹스러웠다. 지금은 밥값을 '엔빵' 하는 차이만 있지 이삼십 년 전에도 회사 점심은 동료들과 어울려 먹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그때도 나는 점심시간 직전에 먼저 조심스레 자리를 떠서 혼자 식당으로 향했다. 손에는 언제나 그날 신문이 들려있었다.
혼잡한 식당 거리를 지나 일부러 외진 단골 식당을 찾아 백반을 먹으면서 네 번 접은 신문을 돌려가며 읽는 시간이 내겐 가장 황홀한 시간이었다. 정말 좋았던 것이 활자인지 혼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읽는 것과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시 점심 문화에서 '혼밥'하는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내에게는 매우 미안하지만 나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투자'라는 단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자본주의적이지 못한 사람이고 돈과 관련해서는 더욱 복잡한 것이 꺼려지는 단순한 사람이다. 다만 주어진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려 노력하고 보상까지 정직하면 더 없이 만족하는 성향이다.
개인택시를 하기 전 법인택시를 해보라

▲18년 전 귀농 후 유정란 농장을 했다. 생명을 기르는 소중한 일이 현실에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았다. 다시 도시로 나와 택시를 하는 지금도 충분히 그 때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김지영
회사와 도시를 떠났던 40대 이후로 단순노동에 끌렸던 이유가 다 있었다. 택시가 20대 후반에 한 번, 제주에 살던 40대 후반에 또 한 번, 그러다 서울로 와서 60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직업으로 다가온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혼자 일하고 단순하게 노동하며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에 대한 선망이 자연스럽게 나를 개인택시로 이끌었다.
나이 들어 현역에서 은퇴하면 개인택시를 사서 일을 놓치지 않되 자유롭게 살겠다는 소망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아이들에게 가지지 말라 했던 원대한 꿈이었다. 법인택시 3년 무사고 경력과 억대에 이르는 면허 값은 내가 넘어서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런데 자격요건이 완화되었고 어렵사리 돈도 마련되어 60이 안 된 좀 이른 나이에 개인택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로망이 현실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을 주고 몸까지 쓰면서 실패한 귀농에서 (농사는 내게 맞는 직업이 아니었다는 것과 함께) 배운 바를 나는 잊지 않았다.
1년 6개월간 투잡으로 법인택시를 운전하며 택시가 내 삶이 되었을 때의 현실을 미리 체험해 본 후였다. 두 가지 일을 해내느라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진상손님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택시를 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내 생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나와 함께 할 택시라는 직업을 사람들이 물을 때 나는 선뜻 해보라고 권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설명할 수 있는 사실만을 전달한다. 그저 손님을 태우고 내리는 단순한 노동처럼 보이지만 말로 설명되지 않는 비언어의 영역이 택시 안에도 존재한다.
그건 당사자가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다. 똑같은 경험도 해석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우린 각자가 너무 다른 존재이고 너무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은 확정적이지 않은 조건에서의 사전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개인택시를 하기 전 법인택시를 해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으로 말한다면 '개인택시 어때요?'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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