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앙소르, <정책적인 영양 보급>1899년, 에칭에 채색,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립미술관
제임스 앙소르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재위 1865~1909)와 군대, 교회, 정부의 대표자들이 담장 위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이 기득권자들은 당시 사회의 진보 세력이 요구하고 있던 '의무 교육', '보통 선거' 플래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겉으로는 교양있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담장 아래로 더러운 대변을 쏟아낼 뿐이다.
문제는 담장 아래에 있는 군중들. 이들은 입을 벌리고 이 배설물이 영양분이 가득한 음식이라는 듯 받아먹고 있는 모습이다. 앙소르는 이처럼 '필터 따위 없이' 벨기에 사회의 민낯을 희화화했다. 사람들이 "앙소르의 표현방식은 유치하고 저속하다"라고 비판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라는 보이지 않는 훈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 벌어졌다. 1929년 앙소르는 구할 수 있는 모든 <정책적인 영양 보급>의 인쇄본을 찾아 황급하게 파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의 앙소르는 조롱만 받았던 그 옛날의 앙소르가 아니었다.
1920년 브뤼셀 지루화랑이 앙소르 회고전을 개최해 성공을 거둔 이래, 그는 이미 거장으로 우뚝 선 상태였다. 마침내 벨기에 왕 알베르 1세가 앙소르에게 남작 작위까지 수여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앙소르는 조급해졌다. 왕실을 공격했던 자신의 '흑역사'를 얼른 지워야 했던 것이다.
과연 그의 '솔직한 본심'은 무엇이었던 걸까. 어쩌면 앙소르야말로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냉정한 세상에 대해 보복하기 위한 '위선의 가면'을 써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막힘 없이 비아냥과 조롱을 날리는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는 훈장이 아니라 가면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앙소르의 모순된 삶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그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쓰는 '사회적 가면'과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쓰는 '이기적 가면'을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의 저자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가면'은 인간이 적절하게 발달시켜온 기술이고, 고도로 발달한 사회성"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중요한 모임에 참석했을 때, 거짓된 자기를 보이기 싫다며 집에서 하던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무례한 일일 것이다.
이 같은 가면의 장점을 간과했던 앙소르는 솔직함과 무례함 사이의 경계도 너무도 자유로이 오갔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자처했기에, 앙소르는 자주 사납게 성질을 부리며 타인의 평화로운 일상을 헤집곤 했다. 갑작스럽게 공격적으로 돌변하기 일쑤였고 한번 터진 분노는 며칠 동안 가라앉질 않았다.
집 밖에서 기분 상한 일이 있으면, 집에 있는 피아노가 수난을 겪었다. 그가 피아노 건반을 쾅쾅 사정없이 내리칠 때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이런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적절한 '사회적 가면'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약하고 모순적이라서
다카마쓰의 버스 운전사와 승객들의 속마음은 짜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약속 시간이 급한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고, 그래서 속으로는 욕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혼네였다면? 사실, 상관없다. 그들이 속으로야 어떻게든 생각하든, 일단 내게 따뜻함과 고마움이라는 귀한 감정을 안겨줬던 것은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친절함이었으니까.
누군가는 그것을 가면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게 진짜 선한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타인에 대해 친절과 예의를 갖추는 것을 '위선'과 '가식'으로 폄훼하는 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소중하게 가꾸어온 문명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본심과 솔직함을 내보이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위선자'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문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바로 십계명에서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끊임없이 오랜 세월에 걸쳐 내려온 살인자들의 후예자들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말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이다. 옛날부터 얼마나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났으면, 기원전 13세기에 만들어진 십계명에 따로 언급될 정도였겠는가.
그렇다. 우리의 본성은 악한 구석이 많다. 그리고 앙소르의 삶이 증명하듯 약하고 모순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안의 본능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단속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위선이고 가면일지 몰라도, 말투를 다듬고 행동을 다듬는 세월이 오래 쌓이면 그것이 결국에는 나의 인격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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