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지옥에서의 자화상>1903년, 캔버스에 유채, 노르웨이 뭉크미술관
에드바르 뭉크
여기, 40살의 뭉크가 있다. 그런데 벌거벗었다. 맨살을 드러낸 채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그의 뒤에는 지옥의 화염이 뜨겁게 치솟고 있다. 이미 불꽃 하나는 뭉크의 목을 조르는 중이다. 그 때문일까. 숨이 막힌 듯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놀랍게도 눈빛만큼은 형형하다. 마치 이 지옥 속에서도 살아남겠다는 굳센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그림 속에는 뭉크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뭉크 몸에 바짝 붙어 있는 커다란 그림자가 그것. 그림자는 마치 위협하듯이 뭉크의 머리 위에서 넘실거린다. 이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그의 '내면아이'이다.
에드바르 뭉크는 1863년 다섯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유독 병약했다. 류머티즘에 의한 고열과 만성 기관지천식은 어린 그를 늘 괴롭혔다. 훗날 뭉크가 "유년기와 청년기 내내 질병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폐결핵 균은 흰 손수건에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핏빛 깃발을 꽂았다"라고 진저리치듯 회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년기의 그를 제일 큰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건강하지 못한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위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일련의 죽음과 그 체험에서 비롯된 충격의 무게가 그를 가장 깊은 절망 속으로 빠뜨렸다.
뭉크가 고작 5살이었던 1868년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사실 자체만으로도 5살 아이는 세상의 무게에 허우적거렸지만, 아버지는 그 무게를 덜어주지 못했다. 기둥이 되어야 할 아버지는 오히려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우울증을 앓았고, 종교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증상을 보였다.
당연히 집은 어둠으로 가득 찼고, 뭉크는 이 숨 막히는 광기를 피해, 한 살 위의 누나 소피에에게 마음을 의지했다. 소피에는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카렌 이모를 도우며 동생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던, 의젓한 누나였기 때문이다. 뭉크의 '소울 메이트'이자 '제2의 어머니', 그가 소피에였다.
그런데 어머니를 떠나보냈던 폐결핵이 몇 년 후 다시 뭉크의 집을 찾아왔다. 이번 희생자는 처음엔 뭉크가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피를 토해내던 뭉크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대신 폐결핵을 떠안은 주인공은 바로 소피에가 되었다.
신은 잔인하게도 뭉크에게서 어머니에 이어, 누나마저 앗아간 것이다. 이때 뭉크의 나이는 고작 15살이었다. 죽음의 폐허 속에서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 뭉크는 절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배웠으리라.
그러나 뭉크는 어린 시절에 마냥 머무르기를 거부했다. 그에게는 '그림'이 있었다. 뭉크는 공학 공부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6세 때인 1879년 기술학교에 들어가지만, 이듬해에 그만둔다.
<병든 아이>를 반복해 그린 이유
그 후 1881년, 크리스티아니아(현재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왕립미술학교에 기어이 입학했다. 그리고 그림을 방패 삼아 밀려오는 슬픔, 분노, 우울, 두려움에 맞섰다. 캔버스에 생채기를 남기듯 거칠게 그린 <병든 아이>는 바로 뭉크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았다는 증거다.

▲에드바르 뭉크, <병든 아이>1885~1886년, 캔버스에 유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에드바르 뭉크
한 눈에도 병색이 짙어 보이는 소녀가 희미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살짝 벌린 소녀의 입은 그녀가 자연스럽게 숨쉬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한다. 베개를 덧댄 의자에 앉은 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체념하듯이 고개를 돌린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손을 부여잡은 채 흐느끼며 고개를 떨군 어머니. 어머니는 '살려 달라'고 신을 향해 기도 중인 것만 같다. 그러나 그 기도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이 되어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하지만, 뭉크의 머릿속에서는 불쌍한 누이가 죽음을 앞두고 있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작품 속 소녀는 소피에이고, 어머니로 표현된 사람은 카렌 이모와 다름없다.
뭉크는 "이 작품은 내 예술의 돌파구"이며 "이후 나의 거의 모든 작품들도 이 작품 덕에 존재하는 것"이라며 <병든 아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를 증명하듯 뭉크는 <병든 아이> 그림을 6번이나 다시 그리고, 이후 판화로도 제작하기도 했다. 왜였을까? 뭉크의 말에서 답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의 모든 작품은 질병에 대한 사색에서 비롯되었다. 두려움과 아픔이 없었다면 나의 삶은 방향키가 없는 배와 같았을 것이다."
뭉크는 슬프고 아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림으로 구체화했고,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감정을 객관화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사랑하던 누나가 죽었다는 사실까지는 바꿀 수 없었지만, 예전보다는 그 기억이 자아내던 참담한 슬픔을 잘 통제할 수 있었다. 22살 때인 1885년부터 노년이 된 1927년까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병든 아이>를 반복해 그리면서 '맷집'이 생긴 것이다.
뭉크는 알았던 것 같다. 어려서의 환경은 주어진 것이지만, 어른이 되면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주어졌던 어릴 때의 시간이 평생을 잡아먹게 두지 않도록 싸울 힘이, 어른에게는 있다는 것을. <지옥에서의 자화상> 속 그의 눈빛이 증명하듯 말이다. 그렇게 뭉크는 '그림'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고, 마침내 '내면 아이'에 지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몇 년 전 스위스 출신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나라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에 대한 드 보통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는 '아니'라고 단언하면서도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은 명쾌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멋진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슬퍼할 줄 안다는 것은, 더 큰 만족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증거인 까닭입니다."
정말 그렇다. 나는 여전히 슬퍼하고 애도한다. 단발머리 소녀 시절,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지냈던 그 흑백같던 나날들을. 하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내 아이들의 현재가 좀더 평화로울 수 있도록 남편과 세심히 조율하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내 삶에 가끔씩 비 맞은 검은 개가 오더라도, 이제 나는 여유롭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물과 사료도 내어준다.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이 경험 앞에서 '내면 아이' 이론은 빛을 잃는다. 나는, '단단한 어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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