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문학동네
3부로 이뤄진 책의 갈피를 살펴보면 1부는 자신의 유년과 청년시절을 비롯해 징글징글하게 얽혔으나 애증하는 가족과 직면해온 과정을 다룬다. 2부에선 "늙어가는 몸의 쾌와 불쾌 사이"를 돌아봄으로써 오랜 세월을 지탱한 몸과 정신의 늙음을 우리 사회가 '노쇠'라고 함부로 지칭한 건 아닌지 살펴본다(한편 그는 치매라는 단어가 '어리석다'라는 의미의 한자어로 이뤄져 있음을 꼬집고, 되도록 알츠하이머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작별 일기> 등).
3부에선 홈리스 현장에서 살며 싸우며 선의로 건넨 일말의 행동이 홈리스에게 어떤 모멸감을 줄 수 있는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공부의 기록을 보여 준다(<그여자가방에 들어가신다> '영주와 나' 편에서 해당 이야기를 더 자세히 접할 수 있다). 자신의 구술 작업이, 누군가에 대한 선의나 이타심에서 비롯됐을 거라는 편견 또한 명랑하게 깨부순다.
"내 삶의 원동력 중 하나는 호기심이다. 구술생애사 작업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연민이니 연대니 이전에 우선 호기심이다. 알고 싶은 거고, 이해하고 싶은 거고, 내 고정관념을 깨고 싶은 거고, 좋으면 배워서 따라 하거나 널리 알리고 싶은 거다. 정치‧사회‧문화‧섹슈얼리티‧젠더 등 내가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들에 대한 고민도, 시작은 호기심인 경우가 많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중에서
만나면 말문이 트이고, 이야기를 주절주절 읊어대는 노인들에게 연민보단 호기심이 발동해 생애구술 작업을 하고, 소설가로서 글쓰기도 해온 작가(<황 노인 실종사건>). 악착같이 남편과 자신들을 위해(혹 나 자신을 위해) 돈을 번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다가 도둑질을 시작하고, 새벽 내내 헤매다 또 다른 도둑질에 골몰했다던 청년 시절 그의 회고는 어쩌면 금기어, 다른 말로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었을 테다.
그가 숨 한번 크게 내쉬어 뚜껑을 열어 기록했을 불안의 나날을 마주 읽으며 나도 떠올랐다.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댄 후 동네 어귀를 서성이며 불안해했던 어린 시절의 한 조각. 모범생과 얌전한 여자아이, 책임감 큰 첫딸이라는 이미지에 한없이 순응하다 가족의 기대와 점점 어긋났던 내 학창 시절. 독립해 비로소 자아를 찾은 것 같다가도 비루한 글쓰기에 시달리며 줄담배를 태우곤 했던 이십 대 시절. 궁핍한 가족의 생활과 나의 대학 생활이 공존할 수 없음을 회피했던 진창의 기억 들까지 말이다.
사회적이며 계급적인 개인의 상처, 우리는 감추지 않는다
지독하게 미웠거나 덮으려 했던 나의 지난 시절을 들추어 몰랐던 나의 "긍과 부"를 알게 하는 힘. 고백하건대 한동안 그의 문장에 펀치를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가, 수첩을 꺼내어 나의 문장을 몇 번 끄적인 일이 여럿이었다. 독자에게 자신의 시절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나라는 삶의 여정'을 살피게 하는 필력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상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젠더적이고 계급적인 것"이라고 했던 그의 말을 이정표 삼아 나와의 거리두기를 시작하게 해준 작가는 몹시 이상하고 아름답고 힘이 세다. 선생 같기도 언니 같기도, 한편으론 '밥은 잘 먹고 다니는감?' 고르게 안부를 챙기는 마을 어른 같기도 하다.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닌 '호기심은 나의 힘'으로 베테랑 구술 작업을 해온 그의 영향으로 삶을 돌아거보나 쓰고자 하는 어른 세대, 청년 세대는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삶의 밑천을 해명하는 글쓰기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사람. 대다수 베이비부머 세대 여성들이 포진한 요양보호사 업계에서 일하면서, 식모 노동 처우를 경험하고 돌아온 밤중에 통곡했음을 시원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 그 와중에도 친해진 가난한 노인들과 구술 생애 작업을 통해 숨은 삶을 들려주는 사람.
"쓰이지 않아 시간의 기억 속에 매장된 죽어버린 말들을, 그 여자들의 말라버린 혀로 휘젓게 하라." 자신의 첫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초입에 이같이 밝히며 사적인 삶들이 '가장 센 정치적 삶'이 될 수 있음을 자명하게 고해온 사람. 가난이라는 나의 현실을, 너의 치부와 혐오를, 남몰래 나눈 다정함을 소문으로 두지 않고 이야기로 뜨끈하게 발라내는 최현숙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난은 사람을 흉측하게 '보이게' 만든다. 이 정리에 머물지 말자. 흉측하다는 문구에 그 표현에 대한 내 심리적 정상성을 계속 더 붙들고 노려보자. 나는 왜 내면이 아닌 외양의 어떠함을 놓고 감히 흉측하다는 혐오의 표현을 사용하는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중에서
"상대가 천박해서 불편하다면 내 소갈머리를 살펴야 한다."
-<할배의 탄생> 중에서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은이), 문학동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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