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석봉씨와 아내 정노숙씨가 운영 중인 지리산 민박 꽃별길새의 식탁. (출처: 꽃별길새 페이스북)
꽃별길새
제초제를 안 쓰려고 삼복더위 아래 남보다 곱절로 일하다 물비누로 몸을 씻으면서 이게 무슨 친환경일까 자문한 일, 기운 좋은 지리산 산골로 으리으리한 승용차를 몰고 와 주말마다 즐기고 가는 도시인을 마주한 일, 장터에 나온 닭과 개를 거둬들이고 함께 사는 삶의 즐거움을 누린 일. 책에는 '유기농 소농'의 행복이 평범한 직장인의 행복만큼 소박하게 이어진다. 하루가 다르게 독거노인 이동 목욕차가 들락거리는, 고령화 돼 가는 산골의 풍경도 상세히 옮겨낸다.
"왜 이렇게 힘들여 양파를 심어야 하는가" 어느 날 밭이랑을 타며 질문을 던졌다는 저자는 농업의 가치를 구구절절 말하는 대신, "살기 위해" 일한다는 노동의 가치를 되새긴다. 궁핍한 봄철의 한때를 뜻하는 춘궁기에 양파를 수확해야 살아갈 수 있다며 화학비료를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여전히 이어 간다.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이 한 농부의 삶과 마음을 정밀하게 들여다보게 해준 기록이라면,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는 과수‧축산‧시설 등 분야별로 종사하는 농업인들이 기후위기 시대의 농사 현황과 대안을 모색한 기록이다.
여전히 농업이, 농민이, 1인분의 농부가 도시를 전전해온 자신의 삶과 유리된 채 까마득해 보인다면 일독을 권한다. 농민 역시 노동 현장의 개선을 위해 광장에서, 시위 현장에서 투쟁하는 시민임을 알게 하는 목소리들이 알곡 찬 곡식처럼 실려 있다.
"(농민은) 소비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농민이 지원의 대상이라는 인식은 은연중에 지원의 대가로 안정적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해야 하는 존재로 만든다. (중략) 농촌을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식량을 생산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많은 농민은 지원 이전에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자 한다."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녹색연합) 중에서
먹기만 할 줄 알지, 어떻게 심고 키우는지 들여다볼 노력조차 하지 않은 한 독자는 농부님들이 쓴 두 권을 통해 다음과 같은 앎을 얻었다.
첫째, 유기농법이나 친환경 농사를 권장하기 전에 제각기 노동의 형태가 다른 농민들의 현황을 분석하고 그에 걸맞은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모든 농촌 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정부의 탄소중립 농업 제도는 '농민에 대한 이해' 없이 수립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화학비료를 쓸 수밖에 없는 농민 당사자들의 사정을 우선 청취해야 한다.
둘째, 농촌을 휴양지 혹은 '도시민이 먹어야 할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으로만 인식하는 도시민의 농민에 대한 이해 역시 필요하다. 오랫동안 지역소멸 문제를 연구해온 배문규 <경향신문> 기자는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로 인한 차별을 감지하는 민감성인 '지역인지감수성'을 모두가 길러야 할 때라고 지적한 바 있다.
농부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풀과 나무, 논밭과 산천이 무한정 떠오른다면? 어쩌면 한국 미디어는 농촌을 반복적으로 '비슷비슷한 녹색의 이미지 타운'으로 덧씌우고, 일하는 이들의 개별적 삶을 몰이해하게 만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농촌을 쉴 수 있는 휴양지쯤으로 여긴다면? 농산물의 가격이 왜 천정부지 오르는지, 자식처럼 키운 작물들을 광장에 쏟으며 쇳소리로 투쟁하는지 농민의 마음을 한 톨이라도 헤아릴 기회는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자라는 것들이 아름다웠다." 하염없이 괭이질을 하며 흙 위에서 삶을 예찬하는 농부 김석봉은 아름다움 이전에 수반되는 노동의 고통을 책에 날씨처럼 기록했다. 맑고, 흐리고, 천둥이 치고, 태양이 작열하는 지상의 어지러움을 농부는 가장 기민하게 마주하는 직업인이다. 때로 원수 같고 선물 같은 자연 앞에서 한 알의 사과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의 내력을 공부해야 할 때다. 태양이 우리 모두를 앗아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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