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8 15:41최종 업데이트 23.10.0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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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나의 해방일지>에는 인생 역전을 꿈꿨던 염창희(이민기)가 승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고심 끝에 내려놓는 장면이 나온다. 편의점에 납품할 고구마 기계의 시연에 가야 하는 급박한 순간, 그는 임종의 순간을 목전에 둔 알고 지내던 형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혼자서 숨이 넘어가던 형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창희는 희한하게도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을 첫 번째로 목도한 데 이어 극중 어머니의 죽음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인물이다. 시종일관 말 많고 욕심 많은 창희는 알고 보면 고인들의 곁을 빠짐없이 지킨 속정 많은 성정의 소유자. 고백하자면 그는 극중 나의 '최애 캐릭터'였다.

드라마에서 최다 성장한 인물을 꼽으라면 창희가 아니었을까. 그에게 죽음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극 끄트머리, 창희는 자신이 신청한 한국화 예술 수업을 듣기 위해 들어간 강의실에서 예기치 않게 인생의 새 출발을 맞이한다.
 

. ⓒ 고정미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강의실을 잘못 찾아온 것을 알고 나가려던 창희는 몇 번을 망설이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더니 도로 자리에 앉는다. 그가 책상 서랍에서 강의 교재를 꺼내는 장면에선 기분 좋은 전율이 오소소 돋아난다.

"고인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게 떠날 수 있도록 온전히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을 장례지도사라고 합니다."


창희는 장례지도사가 되기 위해 모인 그 강의실에서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운명처럼 타인의 임종을 함께해 왔던, 단 한 번도 그들의 마지막을 회피하지 않았던 창희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 죽음을 다루는 직업을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장례지도사를 기억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던 팬데믹 초기, 대구에서 전염병으로 목숨이 다한 고인의 시신을 가장 먼저 수습한 시민을 소개한다.

홀로 살다간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는 이유
 

▲ 책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사이드웨이 ⓒ 최문희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를 쓴 저자 강봉희는 오랜 세월 무연고자 혹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정이 여의치 못한 이웃들의 장례를 치러왔다. 그는 예전에는 '염쟁이'로 불렸던 장례지도사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일찍이 소년 시절 솔선수범해 이웃을 챙기곤 하셨던 어머니의 부름으로 동네 어른에게 직접 첫 염습(斂襲)을 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때 어머니가 '봉희, 네가 들어가서 염을 해주거라' 하시며 내 등을 떠밀었던 게 기억난다. 어머니는 염장이가 흘리는 땀은 절대로 시신 위에 떨어지면 안 된다고 수건을 내 이마에 묶어주시면서, 향나무를 깎아서 한나절 물에 담가두어 만든 향 물과 탈지면을 내게 건네주셨다. 그렇게 어머니가 일러주시는 대로 내 생애 첫 염습을 시작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는 어머니의 길잡이에 따라 시신의 옷을 벗기고, 닦고, 수의를 입히는 과정을 해냈고 어쩌면 그 기억이 훗날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이었을까 회고한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장례 일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건축 일을 하며 생계를 오랫동안 유지한 그는 여느 자영업자 혹은 직장인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20년 가깝도록 생을 다한 무연고 시신들을 돌봐온 그는 2004년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을 발족해 "죽은 자들을 보내드리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일체의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고 어제까지 숨이 붙어 있던, 살다간 사람에 대한 예를 다하며 오늘도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장례 봉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아니라고 밝힌다. "나를 위해서" 일한다는 그는 책 초반에 사경을 헤맸던 지난날을 복기하며 오랫동안 병상에서 자신을 지켜줬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재차 표현한다. 나아가 자기의 업과 봉사가 미화되는 것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석 달을 채 못 살 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가 암으로 한창 입원했던 병실 가까이에는 장례식장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에 몇 번이고 사람들이 시신을 달달달 싣고 가는"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한 가지 생각을 불현듯 한다. 죽지 않고 병원에서 살아나간다면, 저 일을 해보면 어떨까. 이후 그는 누구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생을 다한 사람들을 위해 영안실을 동분서주하게 된다.

기적처럼 완치 판정을 받은 저자는 투병 중에서도 장례 봉사를 다니며 염습(斂襲)을 해왔다. 염습이란 시신을 씻긴 다음 수의를 입히고 염포(殮布, 시신을 묶는 베)로 묶는 일을 말하는데, 여기서 습(襲)이란 "시신을 닦고 옷을 입히는 데"까지를 말한다. 염(殮)이란 "'습'의 과정 이후 시신을 옷과 홑이불로 싸서 묶고, 관에 넣어서 이동하고 매장하는 과정 전체"를 일컫는다.

이 엄숙한 과정을 코로나19로 촌각을 다투던 시기에는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시신은 24시간 안에 화장해야 하는 방역당국의 방침 때문이었다.

팬데믹 초기,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넋을 기리다

때는 2020년. 감염될까 봐 의료진조차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팬데믹 초창기, 그는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해 시신을 수습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를 비롯해 의료 현장에서 고투한 의료진에 대한 수고는 기억하지만,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장례를 돌본 봉사자는 쉬 떠올리지 못한다.

당시, 사설 장례업체들조차 꺼리던 시신 수습 일을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락한 그 역시 처음에는 섬뜩했다고 한다. 그보다 섬뜩한 건 봉사단 후배들과 함께 아무 밀봉 절차도 거치지 않은 시신 앞에 덩그러니 놓였을 때였다.

"코로나19 매뉴얼에는 사망자가 발생했을 시 시신팩에 넣는 것까지는 의사들이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매뉴얼에 따라서 밀봉된 상태 그대로 시신을 모시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의사가 그 일을 안 해봐서 해두지 않는 것이었다. 일반인과는 다르게 전염병을 앓던 사망자는 감염성이 있으니 그 시신을 봉해놓는 게 의료인들의 의무였다. 그렇지만 매뉴얼과 현장은 똑같이 굴러가지 않았다."

저자는 후배와 함께 코로나19로 생을 달리한 시신을 단단히 봉한 뒤 시신팩에 넣어 화장장으로 수없이 향했다. 팬데믹 사망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그가 봉사단과 함께 장례 봉사로 수습한 시신만 해도 2022년 기준 800여 명에 달한다(교양프로 <종로사진관> 출연 당시 밝힌 내용).

특히 그는 당시 삼일장을 치르지 못한 채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유가족의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가 이끌던 봉사단은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새도 없이 화장장으로 직행해야 했던 시민들을 돕고자 방호복 가격을 대신 지불하는 등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가족의 화장을 참관할 수 있게 하려고 봉사단의 예산을 끌어다 쓴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갑작스레 가시는 시신들이 조금이나마 덜 외롭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순식간에 사망자가 급증했던 코로나 상황을 회고하며 '죽음의 얼굴'을 조망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책 1부에는 무연고자의 장례, 그들의 몇 남지 않은 유가족을 둘러싼 풍경도 등장한다.

저자가 장례 일을 하는 봉사단에 주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대개 주민센터에 무연고로 등록된 사람, 종합병원에서 돌아가신 연고가 없는 분들, 타국에서 목숨을 다한 이주민 노동자인 경우들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족과 연을 끊고 살다 간 고인의 경우 남은 가족이 장례식 참관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 악다구니하거나 유골을 버리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엄숙한 죽음 대신 '함께 기억하는 장례'가 안착했으면

세상사에 사연 없는 사람 없듯이, 장례지도사는 제각기 사연이 다른 무연고자들의 장례에 찾아오는 몇 되지 않는 유가족들의 반응을 시시각각 마주한다(저자 홀로 고인의 죽음을 지키기도 했다. 하여 이 땅 위에 연고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저자는 남겨진 무연고자의 유가족에게 연락이 닿아 그가 장례식장에 와서 고인에 대한 억한 감정을 털어놓으면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고인은 이미 돌아가셔서 아무것도 모르니, 당신 혼자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고인은 당신이 미워하는지조차 모른다고. 그는 악다구니하는 사람의 통증을 알게 모르게 덜어 주고 예를 다해 염습 후 유가족과 함께 화장장과 납골당에 인도한다.

죽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 책에 어두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이의 일은 씻고 밥 먹고 잠드는 일처럼 덤덤했다.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의 여느 일상과 비슷하기도 했고, 머리로만 알던 '애도의 생활화'를 상세하게 알려 주기도 했다.

어느 선생의 가르침 덕에 훗날 장례를 치를 때 값비싼 수의를 입히거나(입거나) 성대한 장례 절차가 무용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삼베 수의 대신 즐겨 입던 점퍼를 입고 입관하고 싶다는 그의 소탈함은 저자 특유의 매력이기도, 장례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새기겨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장례지도사란) 한자어로 된 축문(祝文)을 유식한 척 읽으면서 전체의 장래 금액을 합리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족의 마음을 가장 쉬운 말로 편안하고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인간의 죽음을 잘 주관하는 사람일 것이다."


저자 강봉희가 말하는 장례 일의 경중과 함께, 살아생전 연락 한 통이라도 전해 안부를 나누는 일이 더 긴요하다는 당부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새겼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치르고 싶은 한 할머니의 생일잔치를 명랑하게 표현한 동화 <모두 웃는 장례식>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죽은 뒤에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지."

임종을 가까이 둔 할머니의 일리 있는 요청을 손녀 윤서의 시선으로 그려내 '다정한 장례식'의 풍경을 보여주는 동화와 장례지도사의 실제 경험이 곡진하게 실린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음은 엄숙한 무언의 절차가 아니라, 누군가 살았던 생의 한 조각으로 평범하게 이해하자는 것. 영정사진도 자신이 가장 즐거웠던 순간의 선글라스 낀 개구진 모습으로 점찍어 놓았다는 저자 강봉희 선생이 이 책에 담은 숱한 바람 중 한 가지 공유했으면 하는 것을 옮겨본다.

명절을 앞둔 요즈음, 우리를 우리일 수 있게 하는 건 홀로 있는 누군가의 생사를 챙기는 사소한 마음일 듯싶다. '우리'라는 건 어쩌면 똑같이 밥 한 술 뜨는 아침을 바라는 누군가에 대한 깃털보다 가벼운 약간의 인기척일지도.

"나는 그분들이 가족들한테는 잊혔더라도, 사회는 그들을 안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 어느 장례지도사가 말해주는 죽음과 삶에 관한 모든 것

강봉희 (지은이), 사이드웨이(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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