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예비역과 예비역 가족들이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 주최로 열린 ’고 채 해병 순직 진상규명 촉구 및 해병대수사단 수사 외압 규탄 집회’에 참석해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에 발생한 해병대 고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 수립, 지휘 책임자 처벌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명예 회복 등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동굴의 우상'을 경계한다. 동굴 안쪽에 죄수들이 앉아 있다. 뒤쪽의 동굴 입구에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사지와 목이 묶여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죄수들은 앞쪽 벽면에 비친 그림자를 실상으로 여긴다. 족쇄에서 풀려나 지상에 다녀온 누군가가 세상과 사물의 실체를 알려줘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동굴 속 환경에 익숙해져 지상에 올라가길 꺼린다.
고 채 해병 사망 사건을 두고 국방부와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주장이 맞선다. 맹목적 상명하복과 권력의 뜻에 충실한 자들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동굴의 그림자'를 실상이라고 우기거나 착각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도록 길든 그들에게는 법과 규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 박 대령의 '소신'이 오히려 허상이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진행된 '고 채 해병 순직 진상 규명 촉구 및 해병대 수사단 수사 외압 규탄 집회'에서 연단에 올랐다가 야유를 받고 쫓겨 내려간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도 그림자를 실체로 오인한 듯싶다. 집회 성격과 맞지 않게 해병대 병 출신 예비역들이 군기가 빠졌다는 취지의 '오합지졸론'을 펼 때부터 조짐이 이상했는데 기어코 대형 사고를 쳤다. 무지와 편견이 빚은 오류였다.
전씨는 "법이 바뀌어서 군에서 사망 사고가 나면 지휘관이고 뭐고 아무 권한이 없다. 경찰에 (권한이) 다 있다"며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를 수사하고 혐의자를 가려냈는데 그럴 권한이 박 대령에게는 없다"고 주장했다. 전씨의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하지만 핵심 내용인 후자가 틀린 만큼 전체적으로 허위주장이다. 누구 말마따나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이런 가짜뉴스가 더 위험하다.
채 해병 사건을 통해 온 국민에게 알려진바,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 군인 사망 사건(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 입대 전 범죄는 군에서 자체 수사하지 말고 민간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군사법원법 2조/228조). 대통령령('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7조)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이때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인지통보서라는 걸 작성해서 이첩해야 한다('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 7조). 인지통보서에는 피의자 인적사항, 죄명, 인지 경위, 범죄사실을 적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초 조사 또는 수사를 해야만 한다. 박 대령이 이끄는 해병대 수사단은 바로 그 일을 한 것이고, 이는 정당한 직무수행이었다.
전씨 주장대로 해병대 수사단이 권한 없는 일을 했다면, 국방부도 마찬가지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재조사를 통해 애초 수사단이 특정한 혐의자 8명 중 대대장 2명만 피의자로 적시해 경찰에 이첩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군에서 사전 조사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언뜻 국방부 재조사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박 대령은 맞고, 국방부는 틀렸다. 왜? 조사본부의 재조사는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의 불법적 권한 행사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특례조항인 3대 범죄에 관해서는 군 지휘부가 관여하면 안 된다. 그게 개정 군사법원법의 취지다. 개입하면 직권남용이다. 박 대령이 장관 지시를 받고 고민하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그런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좋겠다. 사령관님도 다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쫓기듯 퇴장한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