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갈등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내홍을 겪는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남소연
그런데 이번 민주당 공천이 유난히 시끄러운 이유가 뭘까? 혼란과 분열의 원인을 꼽자면 한둘이 아니겠지만, 이 대표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을 빼놓을 수 없다. 덧붙여 말하면, 당 지도부의 헌신과 희생 부족이다. 감동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비판론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읍참마속 사례라도 있었다면, 당 분위기가 달라졌을 테다.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비록 억울하거나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대의를 위해 승복할 수 있다. 이른바 선당후사다. 그런데 그런 게 안 보인다. 자의든 타의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언행에서도 애당심이나 이 대표에 대한 믿음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영이 안 서는 것이다. 최상의 리더십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것이다.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형평성과 균형성은 갖춰야 한다. 그래야 영이 선다.
어떤 의원은 기소됐다는 이유로, 어떤 의원은 1심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불출마를 종용받았다. 똑같이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받는데도 어떤 의원에게는 출마를 허용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당헌 80조를 개정했다. 직무 정지의 기준이 '기소'에서 '1심 유죄'로 바뀌었다. 검찰의 집중 수사로 기소 위기에 처한 이 대표 방탄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난해 5월에는 1·2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와도 출마를 제한할 수 없도록 당규를 바꿨다. 역시 이 대표의 기소와 관련됐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민주당으로서는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어느 정당이든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았던 전 대선 후보이자 당 대표인 사람을 사법적 판단에만 내맡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정치적 표적수사로 기소되거나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퉈볼 만한 의원들은 당이 보호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논란이 있는 수사의 경우 심급마다 판단을 달리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검사 출신들이 온 나라를 장악하고 야권 수사를 밥 먹듯이 하고 비판 언론 압수수색을 예사로 여기는 검찰정권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규정 바꾼 게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 '외부 공격'을 이유로 앞뒤가 안 맞고 일관성도 없는 공천 잣대를 들이댄다면 당사자와 그 지지자들이 쉽게 수긍할 수 있겠나?
선거를 앞둔 만큼 명분 못지않게 실리도 중요하다. 한 석 한 석이 소중한 상황에서 현역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현역을 무리하게 배제하고 본선 경쟁력이 의문인 대타를 출전시키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자칫 이적행위가 될 수 있다.
중대한 해당 행위자가 아닌 다음에야 웬만하면 경선까지는 허용해야 한다. 당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더 존중받아야 하는 건 지역주민 뜻 아닌가? 물론 민주당 깃발만으로 당선되는 지역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자유 경쟁을 보장하는 게 순리다. 경선조차 막겠다는 건 횡포나 탄압으로 비칠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2023년 12월 2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당 비대위원장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에 대한 갖가지 비리 의혹과 별개로, 산뜻해 보인다. 사심을 버리는 모습을 보이니, 영이 선다. 정치적 야심이 큰 그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별개 문제다. 위장이라고 해도 포장이 그럴듯하니 효과가 있다. 총선 군기가 잡히는 모양새다.
반면 야당 대표는 2년 전 보궐선거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지역구 출마를 고집해 논란을 자초했다. 부도덕한 정당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사법 리스크가 있는 현역 의원들을 쳐내야 한다면, 이 대표부터 출마하지 않는 게 도리다. 그래야 혁신공천의 명분이 선다. 공천에 불만을 품고 이 대표에게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탈당하려는 의원들을 주저앉히는 데도 힘이 실린다.
게다가 민주당 지지자들은 좀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한동훈 효과'와 민주당 분란의 반사이익으로 국민의힘 지지도가 오르는 형국이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와 디올백 소동으로 그로기 상태에까지 몰렸던 윤 대통령이 수건을 던지기는커녕 링에서 반격 채비를 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윤 대통령은 국가지도자의 자질이 심히 의심스러운 사람이지만,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난관을 돌파하거나 목표를 이루는 재주가 있다. 검찰총장 재직 시 조국 수사로 장기간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검사들의 반감과 윤석열 사단의 인사 독식에 따른 불만을 잠재우더니, 대선 때는 코로나 손실보상 이슈를 선점해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고 분노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표를 끌어들였다.
지금은 의사 정원 확대 논리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의사들의 파업 위협에 굴하지 않는 뚝심으로 점수를 따는 모양새다. 이 또한 의사들에게 백기를 들었던 문재인 정부와 비교된다. 민주당으로서는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자신의 출마를 접어야 한다. 아니, 양보해야 한다. 당 대표가 당선됐던 상징적인 지역이니만큼 다른 후보가 나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을 것이다.
설사 거기서 한 석을 잃더라도, 얻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이 대표의 희생적 리더십에 힘입어 당이 일치단결해 검찰정권 심판이라는 이슈를 재점화하면 지지층 이탈을 막고 중도층 합류를 기대할 수 있다. 당연히 승리하는 곳이 늘어날 것이다. 그건 이 대표 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총선 승리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단합을 도모해야 한다. "시스템 공천"이라는 울림 없는 말로 분란을 방치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지도력을 보여줄 때다. 적의 목을 자르려면 내 팔을 내줄 수도 있어야 한다. 이 대표 측근 의원의 동반 불출마 선언이 나오면 효과가 더 클 것이다.
그래야 "총선 승리보다 당 장악이 목표"라는 의구심도 덜고 혁신공천의 명분도 살릴 수 있다. 민주당이 사는 길이고 이 대표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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