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가 속출하고 있는 7일 한 시민이 '살인 예고'를 정리해 알려주는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예고 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에게 '살인 예고'는 온라인 커뮤니티 혹은 SNS에서 즐기는 '밈'에 가까웠다. 그들 대부분은 경찰 조사에서 "장난이었다"고 고백했다. 오직 공포 조성을 통한 우월감을 점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게 목표인 하나의 유희였던 것이다. 194라는 숫자는 일종의 커뮤니티 문화에 가까워보이는, 죄의식을 무화할 수 있는 수치에 가깝다.
실제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들은 "장난으로 저지른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인천 계양역 살인예고 글을 게시한 10대 청소년), "게시글에 달릴 댓글이 궁금하고 관심 받고 싶어서 그랬다"(인천서 '여성 살해' 게시물을 올린 40대 남성)고 진술했다. 스포츠 팬 5만 명이 있는 오픈 톡에서 '사직야구장 흉기난동'을 예고한 고등학생은 "팀이 경기에 지고 있어서 홧김에 그랬다"고도 했다. 장난으로, 관심 받고 싶어서, 홧김에 이뤄진 '테러 예고'인 것이다.
이러한 온라인 상의 놀이 문화는 '디지털 도파민'을 증폭시켜 서로가 서로를 강하게 추동한다. 미국의 중독 전문가이자 임상 심리학자인 니컬러스 카다라스는 책 <손 안에 갇힌 사람들>에서 감각을 마비시키는 쾌락 호르몬인 '디지털 도파민'에 대해 논한다.
스마트폰 화면에 갇힌 사람들은 게임이나 SNS에 빠져드는데, 이들 디지털 플랫폼은 며칠 이상 반복적으로 사용 혹은 의존할 수 있는 도파민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이로 인해 '극단까지 가면 일반적인 자극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분포를 벗어난 곡선의 끝에는 실제로 유령이나 다름없는 젊고, 공허하고, 화가 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인간성을 말살하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디지털 실험실에서, 강력한 전염력을 바탕으로 죄의식도 없이 테러 예고글을 올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신변을 위협하는 '밈'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들 '밈'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효능감을 발휘하는 환경에 있다.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재생산되는 온라인 공간, 미디어에서 특히 위세를 떨친다.
'경기 포천의 버스터미널에서 발생한 흉기난동으로 30명이 다쳤다', '대구의 PC방에서 손님이 직원을 흉기로 찌르고 도주했다'는 식의 괴담이 여러 갈래로 재생산되는 식이다. 이른바 '온커따'(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로 시작되는 확인 없이 받아쓴 뉴스 기사들이 대중의 공포를 확산시키는 한편으로, '밈' 제작자의 영향력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밈'과 가짜뉴스의 콜라보 속에서, 일상에서는 긴장이 상시화된다. 퇴근길,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게 낙이라던 직장인은 혹시나 모를 위해에 눈 똑바로 뜨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사람이 많은 대형 쇼핑몰이나 내부가 어두운 영화관 등의 다중 이용 시설은 어느덧 재난 영화의 세트장 같은 위협감을 준다.
흉기 난동이 예고된 장소를 알려주는 웹사이트에 틈틈이 접속, 내가 있는 곳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전국 도심에 배치된 경찰특공대와 전술장갑차가, 이러한 긴장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그저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살인예고'가 유행인 시대의 일상이다.
손 안에 갇힌 사람들 - 화면 중독의 시대, 나를 지키는 심리적 면역력 되찾기
니컬러스 카다라스 (지은이), 정미진 (옮긴이), 흐름출판(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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