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량으로 살포되는 농약
픽사베이
4. 양봉 자체의 폐해
2010년까지 양봉 분야에 알려진 병원균은 바로아병, 노세마병, 부저병 등과 관련한 29개이다. 그 중 일부는 봉군 폐사에 관한 최근 연구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석고병(stone brood), 편모충류(flagellates) 등과 같은 벌과 관련된 일부 미생물과 병원균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새롭고 더 치명적인 병원균 변종이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양봉농가들은 방제를 위해 항생제와 화학 물질을 벌집에 사용한다. 적용 빈도와 방법은 다양하다. 1904년에 동남아시아에서 꿀벌응애가 처음 발견된 이후 1980년대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도달하며 양봉농가들은 벌집에 살충제를 사용했다. 현재는 전 세계에서 꿀벌응애가 확인된다. 쿠마포스와 플루발린에이트 등 다양한 종류의 살충제가 벌집에서 검출됐다. 이중 많은 살충제가 꿀벌을 위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의 일부 연구는 꿀벌응애 방제와 꿀벌 폐사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살리려고 노력해도 죽고 내버려둬도 죽는 진퇴양난인 셈이다.
이동양봉도 꿀벌 폐사율을 높인다. 미국은 작물 수분을 위한 이동식 양봉이 발달해 있다. 트럭 한 대당 2000만 마리 이상의 벌이 실리며, 매년 200만 개 이상의 벌통이 미국 대륙을 이동한다. 장기간 이동으로 인한 활동 제한과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는 벌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또한 이동식 양봉은 벌집의 위생관리가 어렵고 외래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꿀벌 폐사율을 높일 수 있다. 보고에 따르면 이동 후 봉군 폐사율이 종종 1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17]
5. 꿀벌의 수명 단축
미국 메릴랜드대학 데니스 반엔겔스도르프 교수(곤충학)가 이끄는 연구팀은 농약이나 기생충, 질병 등 환경적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에서 자란 꿀벌의 수명이 절반으로 짧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표준화 절차에 따라 꿀벌 봉군에서 24시간이 안 된 번데기를 수집해 부화 장치를 거쳐 실험실 우리 안에서 사육했다. 실험결과 1970년대에는 평균 수명이 34.3일에 달했으나 현재는 17.7일에 그쳤다. 50년 사이에 꿀벌의 수명이 절반으로 짧아진 것을 확인했다.
실험실 환경이 자연 봉군 상태와 크게 다르지만, 실험실 사육과 관련된 기록은 실험실 꿀벌의 수명이 자연의 꿀벌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꿀벌의 수명이 50% 단축된 것이 봉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팀이 컴퓨터 모델로 분석한 결과 약 33%의 손실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지난 14년간 양봉업계가 매년 평균 30~40% 벌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18]
생태계와 세계경제가 흔들린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벌은 전 세계 식량의 90%를 공급하는 100여 종의 농작물 중 71종의 수분을 돕는다. 유럽에서만 농작물 264종의 84%가 화분매개동물에 의존하며, 4000여 품종의 야채가 벌의 수분작용을 필요로 한다. 동물매개의존 작물 1톤의 생산 가치는 그렇지 않은 작물보다 대략 5배 높다. 전 세계 식량 생산에서 벌을 포함한 화분매개동물의 기여는 1530억 유로(약 274조 원)로 추정되며, 전 세계 식량 생산 총 가치의 약 9.5%에 해당한다. 벌은 이중 228억~570억 유로(약 32조~80조 원)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돼 화분매개동물 중 가장 경제적 가치가 높다.[19]
우리나라의 100대 농작물 중 38~42종이 화분매개의존 작물로 파악된다. 그 중 상당수가 높은 의존도를 보이며 오미자, 다래 등 일부 작물은 수분 과정이 필수적이다. 범위를 주요작물 75종으로 좁히면 39종이 화분매개의존 작물에 해당돼 그 비중이 더 커진다. 화분매개의존 작물 39종은 전체 농경지 129만ha 중 28만ha(20.2%)와 농작물 총생산액 24조7000억 원 중 9조9700억 원(40.2%)을 차지한다. 이중 화분매개곤충의 경제적 기여는 5조 원으로 추정된다. 전체 5조원 중 약 4분의3이 꿀벌에 의한 기여로, 나머지 4분의 1은 야생벌에 의한 기여로 평가된다.[20] 2010년을 기준으로 과거 50년에 수분과 무관한 작물은 세계시장에서 2배로 성장한 반면 수분이 필요한 작물은 4배로 성장했다. 농업의 화분매개곤충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꿀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21]
식물의 수분은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필수적이다. 수분은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붙는 일로, 식물이 열매와 씨앗을 형성하도록 한다. 수분이 잘된 식물은 발아 능력이 향상돼 더 크고 좋은 형태의 열매를 맺으며 많은 씨앗을 퍼뜨린다. 특히 수분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꽃에서 열매로 발달하는 시간이 줄어 열매가 해충, 질병, 악천후, 농약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아몬드나 블루베리와 같은 일부 작물은 수분과정이 필수적이다.
특정 과일, 씨앗, 견과류 작물은 화분매개곤충이 없으면 수확량이 9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분매개곤충의 해부학적 구조와 꽃의 구조는 상호 협력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이러한 진화방식은 한 종의 위기가 필연적으로 다른 종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분을 책임지는 화분매개곤충의 활동성은 생태계 보전과 세계 경제 유지에 핵심적이다. 꿀벌은 여러 화분매개곤충 중에서 가장 큰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22]
사무엘 마이어 미국 하버드 공중보건대 교수 연구팀은 2015년 국제학술지 <란셋>에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한 해 142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23]
꿀벌은 화분매개기능 외에 벌꿀, 프로폴리스 등 양봉 산물을 생산한다. 2017년 전 세계 벌꿀 생산량은 240만 톤으로 그중 중국이 전체 생산량의 22.6%인 54만3000톤을 생산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국 다음으론 터키 11만4000톤(4.7%), 아르헨티나 7만6000톤(3.2%), 이란 7만톤(2.9%), 미국 6만7000톤(2.8%) 순이었다. 우리나라는 1만5000톤을 생산해 세계 생산량 중 0.6%를 차지했다.[24][25]
세계적 생물학자 스티븐 굴드는 진화를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온 과정'으로 정의했다.[26] 지구는 10년마다 생물 다양성의 1~10%를 잃고 있다. 많은 과일, 견과류, 채소, 콩류, 씨앗 작물이 수분에 의존한다. 벌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물 수분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생명종이다.[27] "벌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4년안에 멸종할 것"이란 말은 흔히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누구의 경고이든 그 말의 무게가 아인슈타인만큼 다가오는 건, 벌의 분주한 움직임이 사라지는 건 한 종의 위기가 아닌 생물 전체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봄이 다가오는 건 아닌지 벌써 걱정이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철학대표, 이은서·현경주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