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위해 지어져 그 해 창설된 프로야구의 주무대가 된 잠실야구장은 40년 이상 한국야구를 상징해온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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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각 지역의 공설야구장들이라면, 잠실야구장은 국제적 행사를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1962년 4월부터 8월 사이에 확장공사를 통해 1만 8000석에서 2만 2000으로 증축되고 1966년에는 국내 야외 경기장 최초로 야간 조명시설이 설치된 동대문의 서울야구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를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1976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적인 스포츠대회들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으로 잠실 일대에 세계적인 수준의 종합운동장을 건설하겠다는 대통령의 구상이 발표되면서 길고 길었던 동대문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특히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예상을 깨고 우승한 데 고무된 정부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 작업에 나서 성공하면서 그 과정은 본격화되었다.
1980년 4월에 착공되어 1982년 7월에 준공된 잠실야구장은 홈플레이트에서 가장 먼 가운데 펜스까지의 거리가 125미터나 되는 거대한 그라운드를 중심으로 3만 명 이상의 관중이 동시에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넓은 관중석과 쾌적한 관람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화장실과 매점, 주차장을 비롯한 부대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기적적인 우승을 이루어내면서 개장과 동시에 역사적 의미까지 가지게 된 잠실야구장은 그 대회가 끝난 뒤에는 같은 해에 창설된 프로야구의 주무대로 전환되면서 순식간에 한국인들의 가슴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 '서울야구장'이라는 공식 명칭이 옮겨지고 원래의 서울야구장이 '동대문야구장'으로 격하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만 석 규모의 야구장이란 프로야구의 산업적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었다. 프로야구란 기본적으로 관중의 입장 수입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물품판매, 광고비, 방송중계권료 수입 등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산업이며, 주중에는 야간 경기는 어쩔 수 없더라도 주말 경기만큼은 최대한 많은 관중을 불러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1985년에는 제2의 도시 부산에도 3만 석의 관중석을 가진 대형 야구장이 지어졌다. 오늘날 '야구의 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사직야구장이다. 잠실야구장이 국제대회를 위해 지어진 뒤 프로야구에서 주로 활용되었다면, 사직야구장은 프로야구를 위해 지어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총재이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군 시절 상관이기도 했던 서종철은 프로야구가 창설 첫 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둔 데 고무되어 부산에도 잠실야구장에 맞먹는 야구장이 반드시 지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대통령의 공감 하에 부산시장이 행동에 나선 결과였다.
사직야구장, 부산을 야구도시로 만들다
사직야구장은 2008년 시즌 중 롯데 자이언츠 경기를 해설하던 허구연 현 KBO 총재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가장 흥이 넘치는 야구 문화가 자리한 한국 야구의 또 다른 중심이다.
다른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강렬한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산의 깊은 야구 역사 외에도 3만 명이라는 압도적인 규모의 군중이 같은 장면에 시선을 집중시킨 채 목소리를 집중시킬 수 있는 야구장, 그리고 잠실야구장과는 달리 롯데 자이언츠 한 팀만을 응원하는 관중만으로 3만 석 거의 전부를 채울 수 있는 부산이라는 위치의 독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프로야구는 처음부터 흥행에 성공했고 그 뒤로도 꾸준히 성장했지만 야구장의 건설은 한동안 뜸했다. 잠실과 사직에 야구장이 문을 연 이후 2002년 인천에 문학야구장이 지어질 때까지 80년대와 90년대 내내 새로 지어진 야구장은 없었다. 프로야구의 규모가 커지는 사이에 정부의 주도성은 점점 약해졌고 그 공백을 기업들이 채워갔지만, 야구장은 여전히 정부가 아니면 짓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은 야구장을 체육시설업이 가능하지 않은 전문체육시설로 분류하며 설치와 운영의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만 부여했다. 물론 야구장을 건설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영리 목적 운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단이 경기장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야구장을 임대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은 특정한 사업자에 대한 수의계약을 금지하고 일반경쟁입찰을 의무화했을 뿐 아니라 임대 기간도 5년 이내로 한정하고 임차인의 영구시설물 축조를 금지하는 등 여러 가지 규제조항을 가지고 있었다.
야구장 홍보수입이 전부 혹은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입장료 수입의 대부분을 야구장 임대료로 지불해야 하며, 야구장의 개조나 변형을 통한 특색 있는 마케팅 전략도 어려웠다.
하지만 2007년에 '스포츠산업진흥법'이 제정되어 구단과 사업자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특히 2015년 12월 31일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을 통해 경기장의 25년 장기임대와 수의계약을 허용하도록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대중의 여론이 정부를 압박해 법률의 일부 개정을 이끌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