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길과 최동원1977년부터 1981년까지 5번 치러진 실업야구 코리언시리즈 중 3번의 우승을 이끈 것은 롯데 자이언트의 박영길 감독이었다. 특히 1981년에 그는 최동원이 코리언시리즈 6경기에 모두 나가 혼자 우승을 쟁취하는 모습을 감독으로서 지켜봤고, 3년 뒤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그 최동원의 롯데를 한국시리즈 맞상대로 지목하려는 감독을 만류하기도 했다.
롯데 자이언츠
반면 1999년에는 가장 큰 폭의 제도 변화가 시도되었지만 2년 만에 실패로 돌아가며 해프닝으로 끝나는 일이 있었다. IMF 경제위기의 여파 속에 공멸의 위기에 몰리던 프로야구가 양대 리그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1,4,5,8위팀(현대·두산·해태·롯데)은 드림리그로 2,3,6,7위팀(삼성·LG·쌍방울·한화)은 매직리그로 분류해서 각 리그 1위팀이 다른 리그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그 승자 간에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각 리그 2위 팀들에 비해 1위 팀이 가지는 유리함이 없다는 점과 두 리그 팀들 사이의 전력 격차가 벌어지면서 공정성이 침해되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 하나둘씩 땜질하다 보니 리그를 나눈 의미를 찾기 어려워지는 문제의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미리 충분한 검토와 연구 없이 시도된 실험은 성과도 낼 수 없지만 교훈조차 별로 남기지 못한다는 깨달음 정도가 굳이 꼽을 수 있는 성과였다.
결국 2001년부터 이전 방식으로 돌아갔고, 각 팀은 정규시즌에서 최소한 4위 안에 들어 '가을야구'에 참가함으로써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는 것을 1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2015년부터는 10개로 팀이 늘어난 상황을 반영해 정규리그 5위 팀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기회를 주는 변화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1989년에 정착된 방식의 뼈대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문제들은 있다. 우선 미국이나 일본처럼 '리그 우승팀들이 벌이는 최종승자 결정전'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순위와 우승팀을 제쳐놓고 다시 한 번 우승팀을 가리는 어색함이 있다. 또 144경기를 치른 끝에 결정된 우승팀보다, 많아야 열댓 경기를 치러 만들어진 또 다른 우승팀에 더욱 큰 찬사와 환호가 집중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싶은 고민도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나 WBC 같은 국제대회에서도 흔히 '예선리그'와 '결선리그'를 나누어 운영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굳이 이상할 것은 없다. 정규리그 하위 팀에 좀더 많은 경기 과정을 통해 부담을 지우고 상위 팀에 좀더 휴식하며 정비할 여유를 주어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보통의 '결선리그'보다 좀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포스트시즌, 야구 없는 겨울 견디기 위한 사육제
돌아가 보면, 포스트시즌이란 좀 더 멋진 마침표를 찍고 싶은 팬들의 마음 위에 펼쳐지는 무대이며, 마지막 힘을 짜내 그 마음 위에 이름을 새기고 싶은 선수들의 꿈이 만드는 공연이다. 그 순간을 함께하며 야구팬들은 지나간 1년을 압축해 돌아보며, 내년에 다시 맞이할 새 시즌을 상상한다.
그래서 포스트시즌이란 우승팀을 결정하는 마지막 승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팬들에게 더 큰 선물을 줄 수 있는 팀을 가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하나씩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승리한 팀은 그렇지 못한 팀보다 팬들의 '야구가 끝나는 날'을 조금씩 뒤로 미뤄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끝내 우승을 해낸다면, 팬들에게 감격을 곱씹으며 '야구 없는 날들'을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과 더 아름다운 다음 시즌을 상상할 수 있는 강력한 희망을 선물하는 단 하나의 팀이 될 수 있다.
이제 2022년 가을야구의 마지막 관문인 한국시리즈가 시작된다. 올해의 '야구 끝나는 날'이 5일일지 9일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까지는 울고 웃고 설레고 분노할 수 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또 어떻게든 낙관과 비관을 오가며 겨울을 버틸 것이다. 그리고 감격으로 시작하건 아쉬움으로 시작하건, 팬들 마음속의 '겨울 야구'는 늘 내년의 '봄 야구'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