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이씨가 트럭 위에 달린 작은 크레인을 움직여 그물을 펴고 있다. 동료들은 붉은 노끈을 메고 어망을 고친다. 후이씨는 동료들 중 유일하게 크레인을 운전하고 용접할 줄 아는 기술공으로 인정받고 있다.
고태은
쉬는 날은 첫째 주와 셋째 주 월요일이다. 그 날도 오전 10시까지 쓰레기 정리를 마치고서야 휴식이 시작된다고 했다. 쉬는 날에도 사장이 부탁하는 선박 수리와 정비 일을 간간이 하는데 일을 하고 받는 보너스가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는 매일 1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육체노동을 한다.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그가 일하는 시간은 야간노동으로 규정된 시간(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에 걸쳐 있다. 급격한 기온 차와 같은 계절노동의 특성도 후이씨를 비롯한 이주 선원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5월에서 7월, 9월에서 11월은 어획량이 느는 성어기로 업무 강도가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다.
바쁘고 힘들겠다고 하자 "고기가 없으면 쉰다"고 했지만 그 쉴 때를 이주 선원 노동자가 정하는 경우는 없다. 공판장이 모두 쉬는 첫째 주, 셋째 주 월요일과 비수기가 휴식 시간일 뿐이다.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묻자 그는 대부분 잠을 잔다고 했다.
이주 선원으로서 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는 4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한 번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오면 4년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갔다가 온다 해도 추가로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9년 8개월이 최대다.
그는 여러 차례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선주민 선원들보다 임금이 낮고, 제대로 된 보상이나 보호 조치가 없고, 그의 본국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본 만족감일 뿐 아주 양호한 노동조건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후 그의 삶은 어디로 갈까.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더 먼 바다로 떠나는 원양어선을 타거나 미등록 체류 상태로 머문다. 한국의 원양어선 선원 노동자에 대한 인권 실태는 해외에서도 '현대판 노예제도'로 부를 정도로 악명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한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두 형 중 큰형은 아프리카에서 선원을 하고 있지만, 다른 형은 한국에 미등록 체류자로 있다. 네 형제 중 한 사람이 미등록 체류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업주는 후이씨를 비롯한 베트남 선원들에게 큰 비용이 들어가 이주 노동자를 쓸 이유가 별로 없다며 한탄했다. 그 말에 '이주노동자는 싼 맛에 쓰는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어있어 서늘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이주 선원 노동자 고용 시 드는 높은 송출 비용 등 구조적 문제와도 닿아있다. 베트남 선원의 경우 송출 비용으로 선원 급여에서 매월 8.3%를 공제하고 이를 이탈 보증금에서 차감하고 있다. 이탈 보증금은 베트남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예치하는 기금으로 귀국 후 이주 노동자에게 되돌아 와야 하는 돈이다. 허나 민간 송출 업체들이 이탈 보증금에 손을 대면서 이를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또 연근해 어선 노동자의 경우 자신이 조합원인지도 알 수 없는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해상노련)에 특별회비를 매월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주 선원은 내국인 선원과 달리 특별조합원 자격이며 조합 가입 및 탈퇴도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뤄진다. 이주 선원에게는 조합원으로서의 권리 없이 조합비 납부의 의무만이 있는 것이다.
낙천적인 사람
그는 영락없는 바다 사람이었다. 어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기계는 더욱 알지 못하는 나를 데리고 배에 올라 여러 기계에 대하여 오래 설명해주었다. 앉아서 이야기 나눌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한국 배의 엔진이 좋아 베트남 어선보다는 훨씬 덜 피로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중국, 인도네시아와 더불어 한국에 선원 송출이 가능한 3대 국가 중 하나다. 베트남의 선원들은 본국보다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조금 나은 배를 탄다는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그는 OO항과 그 인근에서 어업 일을 하는 베트남 이주 선원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일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이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보낸다. 각 방은 네 명씩 생활하고, 스무 명의 베트남 선원이 함께 숙소에 산다.
그에게 숙소 생활의 어려움을 묻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바닥은 난방이 잘 되고, 에어컨이 있어 여름에 시원하다고. 내게 그의 한국에서의 삶은 먹고 자는 것은 무리 없으나 그 이상은 없는 삶으로 보였다. 그는 쉬는 시간 대부분 잠을 잔다고 했다. 그 정도의 삶만이 가능한 것일 테다.
후이씨는 동료들과 돈독하고, 사장에게 일 잘하는 선원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그는 다른 동료들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연차에 따라서도 임금이 달라지지만, 기계를 다룰 줄 아는 후이씨에게 특별히 더 얹어지는 수당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지난해 임금은 성어기에 붙는 비정기적인 수당을 합쳐서 선주민 선원노동자 평균 임금에 조금 못 미쳤다. 기본급에 성어기 때의 어획량에 따라 수당이 붙는데 올해는 고기가 많지 않아 걱정된다고 했다. 임금 수준이 높지 않은 데에다 불안정하기까지 한 것이다.
두 번째로 그를 만났을 때 코로나 기간 밀린 휴가를 가기 위해 동료 중 한 사람이 베트남으로 떠났다며 그 동료는 열흘 뒤쯤 돌아온다고 했다. 후이씨가 한국에 있던 4년은 코로나가 심한 시기였다. 가족을 위해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사진으로만 가족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야 했던 후이씨도 다음 달 베트남에 다녀온다고 했다. 오랜만에 가는 베트남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후이씨는 자신이 매일 오르는 어선의 기계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어선이 처음인 내가 그 설명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의 배와 바다에 대한 애정이 전해진 순간이었다.
고태은
그는 이주민, 선원, 노동자로서 고생하지만 낙천적이었다. 배의 곳곳을 구경시켜주고, 한 시간 넘게 배를 타고 나가야 도착하는 어장에서 어획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즐거워했다. 그의 삶에는 이주선원으로서 겪는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고독한 이주민으로서의 삶도 보였지만, 뱃사람으로서의 자긍심도 가득했다. 그 자긍심이 무거운 그 삶을 버티는 힘일 것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선원들
그는 선주와 관계가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고 가능하다면 다시 한국에 와서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선주는 최선을 다해 그에게 임금이나 복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주고, 추가 노동에 대한 비용 지불도 해왔다. 후이씨는 일을 잘하는 노동자로서 일터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생활에 대한 만족도 여러 차례 내비쳤다.
하지만 후이씨의 만족은 선주의 호의로 지켜질 뿐 권리로서 보호되지는 못하고 있다. 어업 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모국어 계약서는 없고, 이주 선원의 송출과 송입 등을 맡는 수협중앙회에도 전문적 통역 인력이 없어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도움이 되기 어려웠다. 후이씨는 곤란한 상황이 생겼을 때에 충분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도움 받을 공적 체계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선원으로서 선원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야 했지만 이러한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어업 이주 선원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과 만연한 인권침해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섬에서 거주하거나 원양어선에서 장시간 배를 타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는 비교적 연구가 많이 진행됐다. 그러나 후이씨의 삶을 이해해보려 찾아본 이주 선원 노동자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2012년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국내 이주 노동자 중 미등록 체류자 비율은 19.3%인 데 반해 고용허가제 대상이 아닌
어업 이주 노동자의 미등록 체류자 비율은 29.9%로 높은 수준이다. 이들을 상담한 자료와 소송 관련 자료들은 인권침해, 임금체불, 연장근로 등 이들 삶의 처참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아야 할 정부는 여전히 이주 선원 문제에 무관심하다. 이주 노동자를 연수생 신분으로 들여오던 '산업연수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이주 선원의 도입과 관리는 민간 대행업체가 그대로 맡고 있다.
이주 선원들은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수협과 송출 업체, 송입 업체, 해상노련 등에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도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인권위는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변화는 없다.
후이씨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어업 선원으로서의 삶을 지켜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는 또 다른 후이씨들에게도 그런 삶이 보장되길 바란다. 호의가 아니라 권리로서. 운이 아닌 제도로서. 그러한 삶이 그의 앞에 펼쳐지길 바라본다.
* 필자 소개: 글쓴이 고태은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운영위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