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벌교 추동저수지 아래 마을
하승수
벌교읍에서 주민을 만나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고 있다는 곳으로 가 봤다. 벌교읍과 순천 외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 부근이었다. <태백산맥>에도 나오는 석거리재라는 고개이자, 과거에 벌교읍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되던 추동저수지 위쪽이기도 했다. 지금은 추동저수지 물을 농업용수로 쓰고 있었다.
필자가 현장에 가 보니 추동저수지는 깨끗하게 관리되는 중이었다. 저수지 아래쪽은 논이 펼쳐져 있었고, 여러 마을들이 자리잡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저수지 위쪽에 매립장이 들어선다면, 주민들이 매립장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요즘처럼 폭우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매립장 오염물질이 유출되면, 아래쪽 저수지 오염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도로를 따라 순천시 외서면 쪽으로 가 보았다. 외서면 마을은 매립장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매립장이 추진되는 곳의 행정구역은 보성군 벌교읍이지만, 순천시 외서면도 매립장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다.
과연 순천시 외서면 주민들이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지 걱정됐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광주·전남 지역 식수원인 주암호도 매립장 추진장소에서 멀지 않다고 한다. 안내해주시는 주민은 "예전에 채석장으로 쓰던 곳인데, 그때도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했다. 그래서 10년 전 채석장이 중단됐는데, 이제는 그 땅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채석장도 허가가 돼서는 안 될 입지였다. 인근 마을들이 입을 피해뿐만 아니라, 하류의 저수지에도 미칠 영향이 컸다. 그런데 이런 곳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산업단지 없는 청정지역에 200만톤 폐기물매립장이라니
지난해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의 산업폐기물매립장 부근 지하수에서 '시안'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검출돼 업체가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의 안전성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2년 12월에는 충북 제천시 왕암동 산업폐기물매립장에 설치된 에어돔이 폭설로 붕괴됐고, 그 전인 2009년에는 전남 광양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 제방이 붕괴돼 침출수가 바다로 유입되는 사고가 났다.
이처럼 산업폐기물매립장을 둘러싼 사고가 빈번한 상황에서, 청정한 저수지 상류에 유독성이 강한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된다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에게 혹시 식수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지하수를 쓰는 마을들이 많다고 한다. 지하수 오염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산업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설 경우, 매립되는 산업폐기물은 벌교 외부에서 들어올 수밖에 없다. 벌교에는 산업폐기물이 대량 배출되는 산업단지도, 큰 공장도 없기 때문이다. 농공단지 정도만 있을 뿐이다.
한국환경공단이 발표하는 '2020년 전국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보성군 전체에서 1년에 발생하는 지정폐기물은 993톤 정도인 것으로 나온다. 전국 지정폐기물발생량 541만톤의 0.02%도 안 된다. 그런데 200만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왜 보성군 벌교읍에 들어서야 하는가?
안내하신 주민분은 "내가 언제 씨뿌리고 어떻게 농사지어야 하는지는 잘 알지만, 도대체 이런 매립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