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1 14:01최종 업데이트 22.09.0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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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9월 2일 오전 11시 23분]

지난해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산다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벌교에 산업폐기물 중에서도 유해성이 강한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매립하려고 하는 양이 무려 200만 톤에 달한다고 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믿기지가 않았다. 벌교 하면 소설 <태백산맥>이나 꼬막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가 가 본 벌교는 농사와 어업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에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보성군에 접수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호남 쪽에서 강의할 일이 있어 현장을 한번 가보기 위해 하루 일찍 길을 나섰다.

"채석장 중단했더니, 이번엔 또 매립장을..."
 
전남 보성군 벌교 추동저수지 아래 마을하승수
 
벌교읍에서 주민을 만나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고 있다는 곳으로 가 봤다. 벌교읍과 순천 외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 부근이었다. <태백산맥>에도 나오는 석거리재라는 고개이자, 과거에 벌교읍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되던 추동저수지 위쪽이기도 했다. 지금은 추동저수지 물을 농업용수로 쓰고 있었다.

필자가 현장에 가 보니 추동저수지는 깨끗하게 관리되는 중이었다. 저수지 아래쪽은 논이 펼쳐져 있었고, 여러 마을들이 자리잡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저수지 위쪽에 매립장이 들어선다면, 주민들이 매립장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요즘처럼 폭우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매립장 오염물질이 유출되면, 아래쪽 저수지 오염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도로를 따라 순천시 외서면 쪽으로 가 보았다. 외서면 마을은 매립장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매립장이 추진되는 곳의 행정구역은 보성군 벌교읍이지만, 순천시 외서면도 매립장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다.

과연 순천시 외서면 주민들이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지 걱정됐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광주·전남 지역 식수원인 주암호도 매립장 추진장소에서 멀지 않다고 한다. 안내해주시는 주민은 "예전에 채석장으로 쓰던 곳인데, 그때도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했다. 그래서 10년 전 채석장이 중단됐는데, 이제는 그 땅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채석장도 허가가 돼서는 안 될 입지였다. 인근 마을들이 입을 피해뿐만 아니라, 하류의 저수지에도 미칠 영향이 컸다. 그런데 이런 곳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산업단지 없는 청정지역에 200만톤 폐기물매립장이라니

지난해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의 산업폐기물매립장 부근 지하수에서 '시안'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검출돼 업체가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의 안전성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2년 12월에는 충북 제천시 왕암동 산업폐기물매립장에 설치된 에어돔이 폭설로 붕괴됐고, 그 전인 2009년에는 전남 광양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 제방이 붕괴돼 침출수가 바다로 유입되는 사고가 났다.

이처럼 산업폐기물매립장을 둘러싼 사고가 빈번한 상황에서, 청정한 저수지 상류에 유독성이 강한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된다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에게 혹시 식수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지하수를 쓰는 마을들이 많다고 한다. 지하수 오염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산업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설 경우, 매립되는 산업폐기물은 벌교 외부에서 들어올 수밖에 없다. 벌교에는 산업폐기물이 대량 배출되는 산업단지도, 큰 공장도 없기 때문이다. 농공단지 정도만 있을 뿐이다.

한국환경공단이 발표하는 '2020년 전국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보성군 전체에서 1년에 발생하는 지정폐기물은 993톤 정도인 것으로 나온다. 전국 지정폐기물발생량 541만톤의 0.02%도 안 된다. 그런데 200만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왜 보성군 벌교읍에 들어서야 하는가?

안내하신 주민분은 "내가 언제 씨뿌리고 어떻게 농사지어야 하는지는 잘 알지만, 도대체 이런 매립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전남 보성군 벌교 추동저수지하승수
 
위험한 산업폐기물, 손 놓고 있는 정부·국회

그도 그럴 것이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는 절차는 복잡하다. 주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벌교읍에 추진되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은 여러 단계의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폐기물처리 사업계획서의 적합·부적합 여부는 영산강유역환경청이 판단한다. 일반폐기물은 지방자치단체가 판단하지만, 지정폐기물이 포함돼 있으면 환경청의 몫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전행정처분이다. 사업계획서의 적합성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정폐기물 매립용량이 일정규모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업체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 협의권한도 영산강유역환경청이 담당한다.

폐기물매립장의 국토계획법상 인허가권은 지자체에 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지자체가 폭넓은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영산강유역환경청도 사업계획서 적합·부적합을 판단할 재량권을 갖고 있다. 결국 행정관청이 환경과 주민건강 등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느냐가 중요하다.

필자가 사는 충남 홍성군에 추진되던 한 산업폐기물매립장은 2021년 1월 환경청과 홍성군이 모두 '불가' 판단을 내려 백지화가 되기도 했다.

법원도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산업폐기물매립장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2021년 1월 대전고등법원은 충남 예산에 추진되던 산업폐기물매립장을 군청이 불허해 업체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환경오염 우려, 재해발생 우려 등을 이유로 들며 예산군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폐기물이 별로 발생하지 않는 농촌지역에 대규모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는 것은 공익 측면에서 맞지 않다고 봤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처럼 농촌지역으로 밀려드는 산업폐기물매립장에 대해 지자체와 사법부가 제동을 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매립장이 추진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허가만 받으면 수천억 원을 벌 수 있는 이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농촌의 환경이 오염되고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문제는 중앙정부와 국회가 이런 상황에서도 국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생활폐기물은 지자체가 책임지는데, 왜 더 위험한 산업폐기물은 민간기업들에게 떠맡기고 손놓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국회의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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