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과 2021년에 관측된 북극의 얼음 면적과 나이 비교 자료. 형성된 지 4년 이상된 두꺼운 얼음이 1985년 30.6%에서 2021년 3.5%로 크게 줄어 현재 북극의 얼음은 1년 미만인 얇은 얼음으로 되어있다.
미국국립해양대기청, 미국국립빙설자료
빙하 면적의 감소와 얇아진 얼음은 북극의 해양 생태계에 큰 위협을 가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은 위기 종 목록(Red List)에서 북극곰을 취약(Vulnerable) 등급으로 분류하며 북극곰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해빙 손실을 언급했다.[10] 해빙의 감소로 먹이를 사냥하기 어려워지자 북극곰은 먹이를 찾아 인간이 거주하는 육지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반면 북극 지역의 남쪽에 거주하던 회색곰은 온도가 상승하자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북쪽으로 올라갔다. 결국 북극곰과 회색곰은 같은 영토를 공유하게 되었으며 두 종이 만나 짝짓기를 해 그롤라 베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주는 경고
그롤라 베어의 등장이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분명 북극곰과 회색곰이 생존을 위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나서면서 그롤라 베어가 태어난 것은 맞다.
동시에 그롤라 베어와 같은 혼혈종은 생태계 교란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켈리는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이종교배가 반드시 환경에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급속하게 진행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많은 종이 교배하고 잡종이 탄생하는 것은 생태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11]
1980년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고래 종이 그린란드의 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됐다. 이후 덴마크 자연사 박물관으로 옮겨져 연구한 결과 일각고래와 벨루가의 이종교배에서 탄생한 고래(나루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12]
캐나다의 비영리단체 '해양포유류 연구 및 교육 그룹(GREMM)'이 2018년에 수집한 영상은 혼혈종 나루가가 추후에도 발견될 가능성을 보여준다.[13] 영상은 일각고래가 벨루가 무리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담았다. 해양포유류 연구 및 교육 그룹은 북극의 기후변화로 앞으로 또 다른 나루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루가가 부모에게서 번식에 유리한 이빨 구조를 물려받지 못한 외교배 약세(outbreeding depression)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14] 외교배 약세는 생태학적으로 각자의 서식 환경에 맞게 진화한 두 개체군이 교배한 결과 생태적 적합성이 감퇴한 후손을 낳는 현상을 말한다.[15]
그롤라 베어도 북극곰의 뛰어난 수영 능력을 온전하게 물려받지는 못했다.[16] 북극곰의 신체 조건은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맞춰졌는데, 그롤라 베어는 북극곰에 비해 목이 짧아 물 속에서 수영하기에 최적화하지 않았다. 아직 그롤라 베어의 생존 능력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켈리는 "가속화 하는 환경 변화로 발생하는 종 간의 번식은 혼혈종이 생존 특성을 진전시킬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17]
새로운 혼혈종의 등장은 비교적 최근에 목격된 현상이기에 아직까지 그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기후변화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북극에서 계속해서 발견되는 혼혈종의 흔적은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지표다. 진화 생물학자 베스 샤피로 교수(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 크루즈 캠퍼스)는 카크토비크에서 발견된 그롤라 베어를 보고 "극심한 기후변화가 생기면 꼭 이종교배가 일어나며 현재 북극에서 발견되는 혼혈종은 극심한 기후변화의 증거"라고 말했다.[18]
극심한 환경 변화에 따른 어려움은 북극에 서식하는 동물만이 겪지는 않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화면 속이 아닌, 실제 주거 지역에서 그롤라 베어와 직접 마주치게 된 인간도 겪는다.
2019년 러시아의 노바야제믈랴 섬 중심지에 북극곰 52마리가 나타났을 때 러시아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주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집을 나서지 못했다.[19] 북극곰은 코카콜라 광고 속에 나오는 친근하고 귀여운 존재가 아니라 조우했을 때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점점 더 많은 북극곰과 서식지를 공유하게 된다면 인간에게 '비상사태'는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멸종까지 포함해 북극곰이 겪어낼 비상사태는 더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서 비롯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공동대표, 이주현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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