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법원 1심 법원이 다루는 연간 접수 사건은 2019년 기준 총 2,839건이고, 군사범죄는 이 중 약 8% 정도다.
김형남
군사법원 1심 법원이 다루는 연간 접수 사건은 2019년 기준 총 2839건이고, 군사범죄는 이 중 약 8% 정도다. 92%는 형법주요범죄, 성범죄, 폭력범죄, 교통범죄 등 비군사범죄다. 종래에 제기되어 온 바와 같이 순정군사범죄로 인하여 평시에도 군사법원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군사법원에 기소되어 접수 된 사건의 수로 미루어 볼 때 사건 수사를 맡은 군사경찰, 수사·기소를 맡은 군검찰도 실제 다루는 사건도 대부분 일반 범죄이고, 순정군사범죄의 수는 얼마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순정군사범죄로 인하여 평시에도 군수사기관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사법개혁을 가로 막는 이들
이 지리하고 오랜 논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놀란 국방부는 2심 고등군사법원만 폐지하고 1심 보통군사법원을 유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은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줄기찬 반대에 부딪혀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지 못하다 그만 임기만료 폐기가 되고 말았다.
21대 국회가 출범하고 국방부는 다시 2심 고등군사법원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1심 법원과 수사기관만 남길 수 있다면 2심 법원 정도는 내어줘도 된다는 것이 군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방위원장인 민주당 민홍철 의원도 똑같은 내용의 법안을 자구 몇 개 바꾸어서 제출했다. 민 의원은 고등군사법원장 출신의 예비역 법무관이다.
그리고 2021년,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 여군이 사망했다. 군 수사기관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 무마 시도, 여기에 더해지는 전관예우 의혹까지.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수사기관이 거꾸로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국회는 또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쏟아냈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 2심 군사법원 폐지 등 법안마다 개혁의 수위가 다 다른 것이 2014년 상황과 판박이였다. 다만 국방부가 2심 군사법원 폐지 정도까지는 양보(?)할 마음을 먹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국방부는 평시 군사법체계를 폐지하자는 권은희 의원안이나 비군사범죄를 다 민간으로 이관시키자는 김진표 의원안이 힘을 얻을까봐 전전긍긍했다. 군이 관할하고 있는 범죄의 95% 이상이 비군사범죄라 김진표 의원안은 사실상 평시 폐지의 효과를 낳는다.
당초 국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안'(김진표 의원안)으로 논의를 정리하려 한다는 소문이 국회 안팎을 오가고 있었다. 국방부에도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장관은 8월 22일에 부랴부랴 각 군 참모총장을 다 소환하여 관련 회의를 열었다. 작전 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휴일인 일요일에 장관이 긴급회의까지 소집하다니. 군사법체계 개혁이 국방부에 얼마나 민감한 이슈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8월 23일 국회 법사위 소위가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의원들은 비군사범죄를 민간으로 모두 이관하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와 법무부도 이견이 없었다. 국방부만 반대할 뿐이었다. 국방부는 이 날 회의에서 전 날 장관과 참모총장이 모여 만든 타협안을 내놨다. 성범죄, 피해자가 사망한 범죄, 군인이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만 민간으로 이관하고 나머지 사건은 그대로 군에서 처리하겠다는 안이었다.
여러 의원들은 국방부가 갖고 온 타협안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국방부는 이렇게까지 군사법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변변한 설명도 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원들은 돌연 국방부 안으로 타협하고 회의를 마쳤다. 그렇게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누더기가 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번에도 개혁은 반걸음에 그쳤다. 국방부 추산에 따르면 법 개정으로 민간에 이관될 범죄는 전체 사건의 30% 정도로 추산된다.
반쪽짜리 개혁
이번엔 성폭력 범죄로 사람이 죽어서 성범죄 사건 관할을 민간으로 이관한다 치자. 그럼 나중에 구타로 사람이 죽으면 그때 가서 구타 사건 관할을 민간으로 이관할 생각인가? 군이 성폭력 범죄, 사망사건만 유독 불공정하게 수사해온 것도 아니고, 군사법체계의 근원적 문제가 일부 범죄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잃은 개정 과정에서 애초 군사법체계 개혁을 하기로 한 계기와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군사법원법 개정 과정은 군 수뇌부의 기득권 보위 투쟁이요, 군법무관들의 밥그릇 투쟁이었다. 전자는 '지휘권 보장' 논리로, 후자는 '전시 군사법체계를 운영하려면 평시에 조직 체계가 갖추어져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치환되었다. 그 밖엔 국방부가 내민 논거가 없다.
타협에도 원칙과 방향이란 것이 있다. 정치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시민이 바라는 속도보다 더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하다 보면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한 사람 죽으면 이만큼, 또 한 사람 죽으면 이만큼. 그럼 누가 또 죽으면 그때 가서 뭘 또 손 볼 생각인가. 2014년, 2021년, 그리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죽음에 빚지고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