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100분토론 특집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 (2021.5.31.) 당시 실시간 채팅창.
MBC유튜브 갈무리
- 유튜브 채팅 창에서 이준석이 당선될 게 느껴지던가요?
"인터넷 방송 문법을 아셔야 이해하기 쉬울 텐데, 인터넷 방송에서는 하이라이트 장면 같은 데서 채팅창이 우르르 올라가거든요. 이준석씨가 발언을 하면 '준석업(up)' '빛준석' 이렇게 우르르 올라가고, 나경원씨가 말을 하면 한 사람은 '나,' 다른 사람은 '락' 이렇게 쳐요. 이게 번개처럼 이어지면 나락, 나락..."
- '나락으로 떨어진다' 할 때 그 나락? 채팅창을 통한 집단유희 같군요.
"그렇죠. 주호영씨가 말을 하면 '꼰', '대', '틀', '딱' 이런 식으로. 이준석씨가 나경원씨 몰아붙여서 나경원씨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잖아요. 그럼 '누나, 울지마' 이러면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가 된 거죠. 그 주요장면들만 따다가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나르고, 그러면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날의 분위기를 전달받고 그 유희에 동참하게 되고, 그렇게 여론을 재생산하고 확장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 거죠. 이런 현상은 특정 유튜버가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될 때 벌어지는 현상인데, 이준석은 정치인 이전에 온라인 엔터테이너로 볼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이런 현상이 이준석 이전에도 있었나요?
"2010년대에 걸쳐 만들어진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문법이 정치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고요. 역사적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후보가 처음 문을 열어젖혔죠. 온라인이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대중의 여론을 결집시키고 기존의 정치문법을 벗어나서 팬덤을 즐기는 분위기로 기세를 만들었으니까요. 그 점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거의 세계 최초인 것 같아요."
- 이준석씨 경우는 별도의 팬클럽이 있는지 잘 눈에 띄지 않던데요.
"팬클럽을 만들어 움직이는 건 노사모식 접근이고요, 요즘엔 유튜브 플랫폼이라든가 온라인 커뮤니티 통해서 조직 없이 무정형의 대중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형세예요. 저는 이준석이 대중을 선동한 게 아니고 대중이 이준석을 끌고나온 거라고 봐요. 30대 이준석이 어눌하고 느린 아저씨 아줌마에 대해서 거침없이 찌르고 들어가는 걸 보면서 직장생활이나 사회에서 위축돼 있는 청년들은 굉장한 대리만족을 얻었을 거예요."
- 이준석의 젊고 에너제틱한 이미지로 국민의힘이 뜨니까 민주당에서도 청년정치인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준석 돌풍이 정치권 전반의 변화를 몰고 올까요?
"힘들다고 봅니다. 이준석이 뜬 건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나이가 어린데 '들이박았기' 때문인데, 민주당에서 이걸 용납할까요? 국민의힘은 전통적 지지기반이던 노년층이 아젠다세팅 능력을 잃고 2016년 이후로 5년째 패배를 거듭하면서 정통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들이박는 것도 승인을 해준 건데, 민주당은 지금 거대정당이잖아요.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청년층이 들이박고자 하면 용납할 수 없겠죠."
- 그래도 청년정치인으로 뜨려고 하면 들이박아야 한다는 걸 알 텐데요.
"첫째, 애초에 그런 싹수가 보이는 애들은 청년정치인으로 올리지 않을 것이고 둘째, 만약 그런 애가 올라온다면 엄청난 견제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버틸만한 심력이 있는 사람이 있겠어요? 이기고 있는 정당에선 강성지지층을 떨어내기가 어렵죠. 바닥을 찍어야 강성지지층 입을 다물게 할 텐데 '야, 우리가 해온 대로 해서 잘 됐잖아. 그냥 계속하면 안 돼?' 할 테니까요."
공정성은 '나 짜증 나요'의 또 다른 표현일 뿐
- 그간 거대양당의 진보-보수 논쟁이 무의미했던 건 민주당이 진보답지 않고 국민의힘도 보수답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준석의 등장은 시장주의, 능력주의를 보수의 좌표로 찍었다는 데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특히 공정성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청년층의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되는데, 임명묵씨는 <K를 생각한다>에서 '90년대생이 공정에 민감하다'라고 보는 견해는 착시일 뿐이라고 주장하셨어요.
"일반적으로 식자층이나 언론에서는 '공정'을 정치철학적인 가치로 보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진중권씨가 마이클 샌델을 인용하면서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이전되는 걸 교정해야 진짜 공정 아니겠어?' 하는 게 그런 예죠.
근데, 90년대생들이 그런 가치개념으로 공정을 주장했다고 보긴 힘들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애초에 이건 정치철학적 가치 개념이 아니라 굉장히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인데, 한마디로 '나 짜증 나요' 이런 거죠. 그걸 표현하는 레토릭으로 찾아낸 말이 공정일 뿐이고요."

▲90년대생 임명묵이 보는 90년대생은 개인주의적이지도 공정을 가치관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도 않다.
와글
임명묵은 90년대생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더 공정성을 중시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제도를 우회해서 자신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공정에 어긋난다고 특혜를 거부하기보다는 90년대생 역시 이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가치관으로서의 공정이 아니라 정서로서의 공정은 편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상층은 상층대로 무한경쟁에 대한 압박감으로 불안하고 하층은 하층대로 박탈감이나 좌절감을 느끼는데, 이런 불안감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이건 공정하지 않잖아!'로 표현할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나는 여기서 90년대생이 제기하는 공정을, 어떤 가치나 정당화 기제보다는 정서적 문제로 바라볼 때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요컨대, 공정에 대한 그들의 외침은 그들의 처한 심리적 압박과 가치의 퇴조라는 배경하에서 형성된 정서적 기초가 특정 이슈와 맞물려 터져 나오는 현상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90년대생 사이에서 공정은 가치와 논리보다는 느낌, 즉 '공정감'의 문제가 된다. (<K를 생각한다> 84-85쪽)
- 현재의 공정담론이 청년세대가 느끼는 불만과 좌절의 알리바이 같은 것이라면 능력에 따른 차별을 거부하고 사회적 약자층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사회적 공정성을 추구하긴 쉽지 않다는 얘기네요. 방송 인터뷰에서 "20대는 상향욕구가 높아서 바닥을 높이는 것보다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고 얘기하셨던데요.
"애초에 한국사회는 고도성장사회였고 청년층이 원하는 것도 고도성장이었던 거예요.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상향의 기회가 줄고 계층격차가 커질수록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나도 올라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타오르는 거죠. '너도 이만큼 살 수 있도록 받쳐줄게'라고 하면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 할 거예요. 50% 세금 내고 복지혜택 받는 유럽식 모델과는 안 맞는다는 거죠."
- '90년대생들은 개인주의가 강하다'는 평가도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셨어요.
"공정과 마찬가지로, 삶의 지향점이나 가치관으로서의 개인주의가 아니에요. '나한테 간섭하지 마. 귀찮으니까.' 이게 현실인 거죠. 진짜 개인주의라면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와 사적 선택을 존중해야 하고 그걸 존중하기 위해서 스스로도 어느 정도 참고 규율해야 하는데, 나는 남들한테 간섭해도 되고 남들은 나한테 간섭하지 말라는 건 개인주의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온라인 멍석말이' 같은 게 발생하는 거죠."
- 너무 비관적인 평가 아니에요? 개인주의라고 하기엔 집단린치에 열광하고 공정성을 옹호한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세대라고 하면...
"그걸 콘텐츠로 승화시켜서 나오는 게 케이팝, 웹툰, 드라마 같은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죠."
- 그게 잘되면 뭐해요? 인생이 괴로운데.
"지금은 엔터테인먼트가 밥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 진담이에요?
"진담이죠."
- 엔터테인먼트가 어떻게 밥보다 중요해요?
"지금 인류는 칼로리를 고민하는 시대잖아요. 이젠 밥도 엔터테인먼트가 됐어요. 내가 얼마나 힙한 식당에서 먹었는지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사진 찍어 자랑하고... 밥보다 엔터테인먼트가 중요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하겠습니까? 물질적인 절대빈곤에서 해방된 다음에는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한 번뇌와 불행이 작동하는 거고, 엔터테인먼트는 그걸 자극적으로 해소해주니까요."
86이 되지 못한 6의 이야기
임명묵과의 대화는 다소 껄그러우면서도 신선했다. 미래세대에게서 어떻게든 희망의 열쇠를 찾고 싶은 나는, 90년대생의 몰가치함을 가차없이 토로하는 그의 견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불편했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찾는 희망은, 기존의 통념에 반대하고 새로운 렌즈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당차고 호기로운 에너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충돌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꿈을 공유할 수 있을까?

▲임명묵은 한국의 386을 구소련의 특권층 노멘 클라투라에 비유한다. 2019년 시베리아 여행 중 부랴티아공화국 울란우데에서 찍은 사진.
임명묵
-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임명묵씨 글은 <'86'이 되지 못한 내 어머니 '6'의 이야기>(슬로우뉴스, 2019.9.16.)였어요. 성적이 우수했지만, 가난 때문에 공장에 다니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끝내 대학입학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이야기.
"저희 어머니가 66년생이신데, 60년대생들은 5남매, 7남매 이런 경우가 많잖아요. 거기서 두어 명은 집안에서 밀어줘서 대학 가고 나머지는 못 가고. 세월이 흘러서 명절 때 다시 7남매와 그 자식들이 모이면 흔히 나오는 얘기가 '사촌형은 뉴욕에 있어', '사촌누나는 영국에 연수 가느라 못 왔어'. 같은 배에서 나서 우연한 계기로 갈라진 건데, 그 자식대에 이르면 그 격차가 아주 극명해지죠."
임명묵은 <조국사태를 바라보며>라는 글에서, 86과 6들의 삶이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격차로 고착됐는지 설명하고, 권력을 쥔 한국의 86세대를 소련의 특권계급 '노멘 클라투라'에 비유한다. 자본주의를 욕하고 노동자 농민의 유토피아를 말하면서 노동계급과 유리된 삶을 산 노멘 클라투라처럼, 한국의 86들도 이중적 사고와 생활로 특권을 세습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마침내 백일하에 드러난 한국사회의 거대한 계층화이다. 이 흐름은 막을 수도 없고 386을 쫓아낸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막대한 교육투자와 인맥으로 무장한 엘리트들, 즉 386의 자녀들이 결국 그 자리를 이어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도시를 오가는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상층 세계화의 수혜자는 '86'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생산시설이 이전하고 저개발국 이주민들과 경쟁해야 하는 하층 세계화의 피해자들은 '6'의 자녀들이다. (<조국사태를 바라보며> 슬로우뉴스, 2019.9.9.일자 중에서)
-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세습 받을 부도 지위도 없는 '6들'의 자녀는 왜 좀 더 과감하게 정치적인 주체로 나서지 않는 거죠?
"이번에 나선 거죠. '너네는 왜 이런 걸 온라인에서만 하고 현실에선 안 해?' 하시겠지만 사실은 온라인이 현실이고 현실이 온라인이에요. 10년 전에 이준석이 한 말이 '여러분,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였어요. 커뮤니티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성향이고 일베가 태동할 때, 온라인으로 여론을 읽으면 안 된다는 얘기였죠.
근데 지금은 어떤가요? 근 10년 사이에 모바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온라인 오프라인 구분이 없어졌어요. 우리는 24시간 온라인에 접속한 채 살고 있죠. 이준석한테 '아직도 세상이 키보드 밖에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고 싶어요."
- 책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지셨어요. "586이 686이 되어가는 2020년대에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586이 주도하는 계층화에 문제의식을 갖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게 뭘까요? 저도 궁금해요.
"우선 개인 단위에서는, 증오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에 잠식되지 말고, 자신과 주변 인간관계에 충실하게 건전한 일상을 살면서 멘탈을 단단히 잡아야겠죠. 자극적인 인터넷 문화라는 불길 속에 몸을 태우는 건 즐겁지만 한편으론 허무하고 남는 게 없기도 하니까요. 집단적으로는,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 여론도 폭발시켜보고 '한번 즐겨보자!' 하는 마음으로 두들겨 패보는 것. 그런 건 해볼 만한 일인 것 같아요. 한국사회는 에너지가 넘치고 역동적이니까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