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이진순(왼쪽)과 박정훈(오른쪽).
재단법인 와글
- 올해 라이더유니온이 제일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뭔가요?
"산재보험제도의 전면조정이요. 지금도 산재는 되는데 사각지대들이 있어요."
- 예를 들면?
"이른바 '전속성' 기준이라는 게 있는데요. 전속성이 있어야 산재를 받을 수 있어요. 라이더들의 경우, 하나의 배달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전체 노동의 절반 이상을 거기서 일했거나, 혹은 전체 자기 수입의 절반 이상을 거기 한 군데서 얻는 경우 전속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전속성에서 벗어나 일하는 사람들은 해당이 안 되죠."
- 아, 복잡하네요. 그러니까 한 군데서 주로 일하는 경우가 아니면 산재가입이 안 된다?
"그렇죠. 중소기업사업주로 개인이 산재에 직접 가입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이건 개인이 전액 부담을 해야만 하니, 실효성이 없고요."
- 그러니까 배민에서도 일하고 쿠팡에서도 일하고 여기저기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경우엔 전속성이 없어서 산재가 안 되고, 산재에 들려면 개인이 보험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맞아요. 그리고 특수고용종사자 9개 직종(보험설계사, 건설기계 운전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은 산재보험 당연 가입대상이거든요. 사업주가 당연히 이들을 산재에 가입시킬 의무가 있다는 얘기죠. 근데 노동자가 산재적용 제외신청서를 써내면 산재보상이 안돼요. 이걸 노리고 사업주가 노동자한테 제외신청서를 쓰도록 유도하기도 해요."
- 그러면 노동자들이 순순히 산재 제외신청서를 쓰나요?
"그럼요. 특수고용노동자는 보험료를 사용주와 노동자가 반반씩 내거든요. 사장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이거 돈만 드니까 할 필요 없다'고 하면, 대개 그 말을 따르게 되죠."
- 최근 정부에서 전국민 고용보험을 실시하겠다고 했는데, 배달노동자들도 그 수혜를 받게 될까요?
"그렇게 되도록 설계를 해야 하는 건데... 아마 정책 짜는 분 가운데 실업급여 타보신 분이 거의 없는 것 아닐까 싶어요. 실업급여 타려면 적어도 두세 달 정도를 실업상태로 있어야 하잖아요. 노동청 가서 신청서 쓰고 교육받고 구직활동하고 증명하고... 근데 플랫폼 노동자들은 실업상태를 견딜 수 없어서 이 시장에 들어온 거거든요. 몇 달씩 일 안 하고 버틸 수가 없어서 라이더가 된 거예요. 전국민 고용보험이라고 하지만 배달노동자들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의 예상대로 지난 8일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에 대한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플랫폼노동자의 경우도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며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는 계약을 체결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았는데, 라이더유니온은 다음날 즉각 반대성명을 내고 '통상적으로 계약서 없이 일하는 다수 배달 라이더들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며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했다. 이번에 발표된 개정안의 기준 자체가 '실업과 취업이 명확한 근로자들에게는 가능한 개념일지 모르지만 떠다니는 일감을 잡으며 일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스타트업 신화에 가린 플랫폼 노동자의 삶

▲라이더유니온에서는 '늦어도 괜찮아요. 안전하게 와주세요'란 자석스티커를 배부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
- 여전히 현실의 변화에 비해 제도적 변화가 더디긴 하지만 '혁신성장을 위해서 플랫폼산업이나 데이터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에 비해, 폭증하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대책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죠. 세계적인 흐름을 보더라도 스타트업 신화들이 있잖아요. '나는 창고에서 만들었어' '나는 대학 중퇴해서 만들었어', 이런 서사를 만들어서 그런 스토리에 목말라 있는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파고들죠. 시장규칙을 벗어난 틈을 파고들려고 하고 국회 로비도 적극적으로 하고요. '나는 혁신이니까 다른 법의 규제를 받고 싶어' 하면서요. 최소한 경총도 최소한 노동법은 인정하면서 가요. 어떤 의미에서 스타트업은 경총보다도 못한 것 같아요."
- 스타트업 가운데서도 사회적 가치를 꿈꾸면서 소셜벤처를 창업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청소년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소셜벤처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노동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벤처신화가 낳은 부작용 같은 게 있는데, 스타트업들은 자기들이 잘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법의 사각지대에서 (노동자들에게) 줘야 할 것을 안 주고 가져가는 게 범죄라는 생각을 안 해요. 플랫폼 노동이 기존의 노동법에 해당되지 않으면 노동법을 여기 맞도록 수정해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노동법을 날려버리는 방식으로 대처하거든요. 혁신가라고 자처하면서 '자기들은 다르다'는 착각에 빠져서 잘못된 일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자의식 과잉이죠."
- 그런 문제에 대해서 벤처업계 쪽에 함께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하는 건 어때요?
"삼성한테 그런 제안을 해보라고 말하는 이는 별로 없잖아요? 스타트업은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시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데, 이들도 돈 벌려고 하는 일이거든요. 꿈과 열정을 갖고 자기를 갈아 넣는 젊은이들이 스타트업에 투입되죠. 옛날 같으면 운동을 했을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다 거기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CEO나 투자자들은 자선사업 하고 혁신이나 공유경제하려고 투자하는 거 아니잖아요. 이 사람들이 (노동문제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럴 거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에요. 그거는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죠. 본인이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창업을 못하게 하는 게 시장 논리예요. 영세자영업자들이 식품위생법 위반하면 난리 나잖아요. 백종원 '골목식당' 보세요. 동네 식당 주인이 지켜야 하는 것 정도는 스타트업들이 지켜야죠."
-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에요. 못다한 말씀이나 꼭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라이더유니온은 '교통신호를 잘 지키자'는 안전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 하고 '세금 잘 내자'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렇게 내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도 꼭 넣어주세요. (웃음)"
인터뷰 내내 피곤에 찌든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그가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라이더유니온 사무실에는 '늦어도 괜찮아요. 안전하게 와주세요'라고 적힌 자석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라이더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자는 캠페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무료 배부하는 스티커였다. 오늘 내 문 앞까지 배달되는 것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플랫폼 노동자들의 땀방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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