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부동산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지난 수년간 정부가 하는 얘기는 "우리는 잡을 수 있다", 이 얘기 하나밖에 없다. 언론의 메시지는 하나로 수렴된다. "집 살까요, 말까요?" 따져보면 정부든 언론이든 잡는다, 못 잡는다, 사야 된다, 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얘기 말고는 한 게 없다.
여러 나라가 각각의 문제로 부동산 버블에 대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아파트 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택지 조성부터 하는 박정희식 '분양제'와 이에 연동된 청약 저축으로부터 나온다. 한때 일본이 가지고 있던 제도인데, 일본도 부작용이 심해서 없앤지 오래된 제도다. 우리만 지금 분양제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로 한국의 자가주택보급률은 53~56% 사이에서 변한 적이 없다. 마치 자연율과 마찬가지이고, 집을 많이 공급하든 덜 공급하든, 임대주택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이 비율은 유신경제 이후로 변한 적이 없다.
보유세와 거래세의 장기적 비율과 함께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 같은 문제부터 좀 더 근본적으로 분양제에 대한 접근까지, 문재인 정부라면 이 정도는 검토하면서 종합 대책과 장기적 플랜 같은 것을 잡아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다. 실제로는 제도 검토와 대안 제시는 하나도 없고 '두더쥐 잡기 게임'만 임기 전반기 내내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법률을 실제로 바꾸고 안 바꾸고 이게 정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여전히 개도국 시절의 의회주의에 갇힌 생각이다. 21세기의 제도는 법보다 많은 시민들의 폭넓은 합의와 이해 같은 것이 우선이다. 토론과 대안 제시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이 형성되면 법은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
대표적인 게 학교 급식이다. 그게 법으로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상식으로 한 것이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끌고가는 것도 권위주의적 시각이다. 많은 토론을 해서 사람들의 상식이 형성되면 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인데
문재인 정부 후반기, 조급하게 성과를 내고 엄청난 결과를 위해서 매진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좀더 근본적으로, 부동산을 비롯해 우리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더 깊이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장기적인 방향에 많은 시민들의 의견이 수렴해가는 과정, 바로 그 과정이 문재인 정부의 하반기 성과물이기를 바란다. 그게 선진국의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법률에 있고 행정절차와 내규에 있는 게 아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방법이야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논의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모아나가는 정책적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이 정부 하반기의 결과물이기를 기대한다.
그건 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규로 하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이 그냥 그렇게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수많은 위원회들이 좀더 시민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경청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시민사회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정책 민주주의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대한 조급증을 잠시 내려놓고, 충분히 많은 대안들을 다층적으로 같이 토론하는 절차들을 정착시키는 것, 그게 문재인 정부다운 정책 민주주의의 성과물이다. 정부 내부 문건이나 공기업 내부 문건에서 VIP라는 단어가 자꾸 나오고, BH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위의 눈치를 보는 것, 결국 그게 군사주의식 밀실행정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는 현 정부도 바뀐 게 거의 없다.
정책의 민주주의, 정책 한 건 한 건의 성과보다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넓고 개방적으로 운영하는 것, 그게 후반기 정부의 성과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건 경제의 외부 조건이 안 좋아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절반을 넘는 고공행진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문재인 정부의 성과로 다음 정권에 넘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밀실행정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었다고 몇 년 후에 우리가 회상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정부가 되기를 여전히 기대한다.
청와대 경제관료들과 고위직 경제관료들, 도대체 왜 군사정권 시절처럼 구중궁궐 데스크에서 정책을 하려고 하는가? 타운홀로 나오고, 시민들 사이로 나서고, 먼 미래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는 일을 왜 문재인 정부에서 못하는가?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더라도 과정에 대한 논의마저 생략하는 것, 촛불 정권에 어울리지 않는 폐쇄적 행정 아닌가? 집권 하반기에는 다른 과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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