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심야 음악프로그램 KBS2 '더 시즌즈 - 이효리의 레드 카펫'이 막을 내렸다. 한 해 동안 네 명의 서로 다른 MC가 계절마다 진행을 맡는다는 기획 아래 시작된 <더 시즌즈>는 지난해 2월 '박재범의 드라이브'부터 시작되어 '최정훈의 밤의 공원', '악뮤의 오날오밤'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이효리가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 '미스 코리아'를 부르며 마지막 회의 문을 열었다. 이날 특집은 '다시 봄'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다. 데뷔 52년 차 가수이자 화가인 정미조가 첫 번째 게스트로 등장해 '귀로', '엄마의 봄'을 불렀다. 관록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화면에 여럿 잡혔다.

이어 '더 시즌즈'의 첫 번째 시즌이었던 '박재범의 드라이브'를 진행했던 박재범이 'yes sir'라는 힘찬 외침과 함께 춤을 추며 등장했다. 그리고 '최정훈의 밤의 공원'을 진행했던 잔나비 최정훈, '악뮤의 오날오밤'을 진행했던 악뮤(이찬혁, 이수현) 역시 무대에 올랐다. 1년 동안 같은 시간대를 책임진 MC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KBS2 '더 시즌즈 - 이효리의 레드 카펫' 한 장면.

KBS2 '더 시즌즈 - 이효리의 레드 카펫' 한 장면. ⓒ KBS2

 
나란히 앉은 이들은 각자의 지난 1년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기치못한 콜라보레이션 무대 역시 볼 수 있었다. 이효리와 최정훈이 박재범을 사이에 두고 잔나비의 '외딴섬 로맨틱'을 부르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역대 KBS 심야 음악프로그램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강승원의 기타 연주에 맞춰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부르기도 했다. 

잔나비는 다른 방송 무대에서 잘 부르지 않았던 '나의 기쁨 나의 노래', 'pony' 등의 노래를 연주했고, 악뮤 역시 히트곡 대신 청춘의 고민을 담은 '그때 그 아이들은'을 부르며 관객들을 위로했다. 프로그램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묻어난 선곡이었다. 네 엠씨는 함께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를 부르며 관객들과 작별했다. 이 프로그램의 밴드 마스터를 맞고 있는 멜로망스 정동환 역시 한 소절을 불렀다.

앙코르 요청을 받으며 다시 무대 위에 오른 이효리는 빅뱅의 '봄 여름 가을 겨울(Still Life)'를 커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순심이, 모카 등 먼저 떠나보낸 반려견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리움을 드러내고, 26년 동안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관중석으로 내려가 팬들과 일일이 손을 맞부딪혔다.

심야 음악 프로의 역사를 새로이 계승하다
 
 KBS2 '더 시즌즈 - 이효리의 레드 카펫' 한 장면.

KBS2 '더 시즌즈 - 이효리의 레드 카펫' 한 장면. ⓒ KBS2

 
1992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이르기까지, 심야 음악프로그램의 역사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2022년 7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반년 가까이 후속 프로그램은 정해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심야 음악프로그램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론도 제기됐다. 

그것은 곧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을 선보일 무대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도 연결됐다. 돌아온 '더 시즌즈'는 예전과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트렌드와 발을 맞췄다. 베테랑 진행자의 능숙함보다는, 젊은 진행자들의 개성과 패기에 주안점을 두었다.

'더 시즌즈'는 시작부터 기존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첫회에서 밴드 연주에 맞춰 박재범이 선보인 화려한 퍼포먼스는 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정립했다. 그는 뮤지션들과의 대화 중 프리스타일 랩과 춤을 선보이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드러내며 진행의 틀을 깼다.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는 가사를 밈으로 만든 이찬혁에게, 힙합의 거물인 박재범이 화해를 권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밤의 공원'을 진행한 잔나비의 최정훈은 첫 방송에는 자신의 우상 김창완을 초대해 존경심을 표했다. 실리카겔, Surl 등의 인디 밴드를 초대하면서 밴드맨의 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야 음악프로그램 사상 최초의 2MC 체제로 진행되었던 '악뮤의 오날오밤' 역시 호평을 받았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애정을 드러내는, 현실 남매의 모습을 진행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 특징이었다.

'레드카펫'의 이효리는 시즌 내내 슈퍼스타다운 여유를 드러냈다. 첫회 게스트로 출연한 블랙핑크의 제니가 '미스코리아(이효리)'를 부르자, 무대 도중에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며 듀엣 무대를 꾸린 장면, 관객석에 앉아서 오프닝을 꾸린 장면 등이 상징적이다. 하지만 게스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등, 솔직한 감정 표현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마지막 방송에서 이효리는 "처음 혼자 할 땐 떨렸는데, 지난주에 좀 재밌다 하니까 마지막이 오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처럼 진행자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적응할 때쯤 시즌이 막을 내린다는 점은 아쉽지만, '더 시즌즈'는 반년 넘게 단절되었던 심야 음악프로그램의 역사를 무사히 계승하는 데에 성공했다.

한편 '더 시즌즈'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래퍼 겸 프로듀서 지코가 후임 MC를 맡아 시리즈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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