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과 백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흑인이 태어났다면? 믿기 힘든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다. 백인과 백인의 결합으로 흑인이 태어나기도 하고, 흑인과 흑인이 낳은 아이가 백인일 때도 있다. 주변에선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이 같은 일은 과학적으로 가능하고 종종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힙합계 톱스타로 꼽히는 드레이크가 아이를 낳은 뒤 친자확인을 세 차례나 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자식을 꽁꽁 숨기고 외부에 알리지 않은 사실이 논란이 되었으나 그가 제 아이 사진을 SNS에 올리고나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유색인 부모의 자식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지고 태어났던 것이다. 외모로는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없는 그들은, 그러나 분명한 부자지간이다.
 
해외 토픽 기사에서나 만날 법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겐 닥쳐올 수 있는 일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단에 고립돼 인종적 다양성이 크지 않은 한국인에겐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지극한 행운이나 불행, 예외적인 일이 제게는 닥치지 않으리라 믿고 산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예외적 사건과 맞닥뜨린다. 만약 이런 일이 제게 닥친다면? 자식으로 태어난다면, 의심하고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다우팅 토마스> 포스터

<다우팅 토마스> 포스터 ⓒ Long Way Home

 
백인 부부가 흑인 아이를 낳았다
 
<다우팅 토마스>는 백인 부부 사이에서 흑인 아이가 태어나며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다뤘다. 주인공은 잘 나가는 변호사 톰(윌 맥패든 분)이다. 로펌 파트너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그에겐 사랑하는 아내 젠(사라 버틀러 분)과 남달리 가까운 친구 론(제이미 헥터 분)이 있다.

부족할 것 없는 그에게 남은 꿈이 하나 있다면 아이를 갖고 가정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최고의 아빠가 되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일도, 가정에도 충실한 삶을 이어가는 그 모습이 곁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흐뭇해질 정도다. 마침내 젠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웬걸, 태어난 자식이 백인이 아닌 흑인이란다.

톰이 받은 충격이야 이만저만이 아니다. 직접 아이를 낳은 젠은 그가 제 자식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않기로 마음을 정한 듯하다. 그녀라고 혼란스럽지 않은 건 아니겠으나 세상에 맞서 아이를 지켜야 할 엄마가 바로 저라는 데 굳은 결심을 한 듯 보인다. 론을 비롯해 병원을 찾은 친구들 또한 상당히 놀라기는 했으나 톰과 젠 앞에서 별다른 이야기를 않고 돌아간다. 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은 이미 이러한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의심이 될 경우 유전자 검사 또한 가능하니 불필요한 의심은 없는 쪽이 낫다. 병원에서도 아이가 바뀌지 않았다고 확언하는 가운데 오로지 톰만이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영화 <다우팅 토마스> 스틸컷

영화 <다우팅 토마스> 스틸컷 ⓒ Long Way Home


믿으라는 아내, 믿겠다는 남편... 그러나

제 아이가 흑인일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을 톰이다. 누가 보아도 그는 완전히 백인이었으니까. 그가 기억하는 제 부모와 조부모 또한 백인으로, 그가 흑인 자식을 낳을 확률은 없다시피 해도 좋았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은 젠 앞에 서면 저의 불안을 꺼내어 이야기하지 못하는 톰이다. 유전자 검사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 있겠으나 탐탁지 않은 말투로 당신이 원하면 유전자 검사라도 해보라는 아내의 말에 그저 믿겠다 약속할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마음은 머리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해도 마음은 좀처럼 흑인 자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혹여 아내가 외도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수시로 머리를 쳐든다. 아내가 가까이 지낸 흑인이라고는 제 친구인 론 뿐인데, 어쩌면 그들이 저를 속였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설상가상 회사 직원 가운데선 론과 젠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거나 그들이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까지 등장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톰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영화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가운데 의심에 잠식되는 톰의 상황을 흥미롭게 포착한다. 말로는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뒤에선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그다. 그렇다고 말을 바꿔서 몰래 검사를 하기에도 면이 서지 않아 속절없이 속으로만 불온한 상상을 반복하는 것이다.
 
 영화 <다우팅 토마스> 스틸컷

영화 <다우팅 토마스> 스틸컷 ⓒ Long Way Home


어떤 혐오는 혐오인 줄 모른다
 
영화가 인상적인 건 이 대목부터다. 영화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대면한 사람들의 행동을 진지하게 포착한다. 겉으로는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낯설고 흥미로운 사건을 그저 지나치려 하지 않는다. 한 마디씩 거드는 말들 사이에는 톰이나 젠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흑인이 백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수 없다는 경험적 믿음이 과학에 앞서고, 거리낌 없이 표현되기까지 한다.
 
흑인과 백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 또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법 제도는 흑과 백을 동일하게 취급하지만, 여전히 몇몇 영역에선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선명한 게 사실이다. 특히 톰과 론이 다니는 로펌 또한 그러해서, 건물 전체에서 흑인이라곤 론과 청소부 단 둘 뿐이다.

론과 가까이 지내는 톰 또한 인종차별적 인식이 없는 것처럼 행세하고 다니지만 론이 아닌 다른 흑인들에 대해선 전혀 그렇지 않다.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혐오가 아니라도 흑인이 백인에 비해 못하다 여기는 인식이 생활 주변에 겹겹이 깔려 있음을 영화는 자연스레 드러낸다.
 
 영화 <다우팅 토마스> 스틸컷

영화 <다우팅 토마스> 스틸컷 ⓒ Long Way Home

 
결코 쉽지 않은, 혐오 너머로 나아가기
 
이를테면 흑인과 교제한 백인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백인의 태도, 또 집 밖에서 노는 흑인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흑인이 다가오면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백인들의 모습, 백화점에 흑인이 들어서면 보안요원이 유의 깊게 살피는 일들 따위가 그러하다. 노골적으로 흑인을 괴롭히고 기본권조차 보장하지 않던 시대가 지났다곤 하지만, 흑인과 백인 사이엔 여전히 차별과 혐오의 장벽이 있다는 걸 이 영화가 짚어낸다.
 
백인 부부에게 흑인 아이가 태어났다는 설정으로부터 감독은 좀처럼 따로 떼어 마주하기 어려운 교묘한 차별을 효과적으로 끄집어낸다. 앞에 나서 돌을 던지는 것만이 혐오고 차별이 아니라는 걸, 태생과 출신만으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일인지를 적나라하게 일깨운다. 그 같은 인식이 이성의 끈이 약해진 순간 터져 나오게 될 때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다우팅 토마스>는 영화를 보는 관객 내면에도 이와 같은 인식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과학적 사실과 믿음에 앞서 경험적으로 얻은 조막만한 인식을 더욱 중하게 여기는 우리의 못난 태도를 경계하라 주문한다. 혐오가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 우리는 과연 이성을 붙들고서 혐오 대신 사고하고 관용하는 인간으로 남을 수가 있을까. <다우팅 토마스>의 요구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우팅토마스 LEXICON 윌맥패든 사라버틀러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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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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