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생일> 메인포스터 영화 <생일> 메인포스터
영화 <생일> 메인포스터영화 <생일> 메인포스터NEW

01.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난다. 참사 직후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던 것도 잠시, 다른 모든 사고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 역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사고 5주기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참사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2014년 4월 16일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작품이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수호(윤찬영 역) 가족의 시계는 참사가 있었던 날에 멈춰있다. 아빠 정일(설경구 역)은 해외 출장 중 사고 소식을 듣게 되지만 현지 사정으로 귀국하지 못했고, 홀로 모든 순간을 감내해야 했던 순남(전도연 역)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외면한 채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자신의 감정을 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점차 어려워지는 집안 사정으로 마트에서 일하며 홀로 어린 딸 예솔(김보민 역)을 키우던 중, 뒤늦게 돌아온 남편에게 그녀는 이혼을 요구한다. 오랜 시간 마음 속에서 뭉쳐있던 각자의 사정이 부딪히는 순간, 아들 수호의 생일이 다시 돌아온다.

02.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철저히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작품이라면 으레 떠올릴 법한 사고 당시의 실제 장면이나 컷들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얼마 전 개봉했던 <우상>에서와 같이 언론이나 미디어를 빌려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식의 노출도 극도로 피하고 있다. 도로 위에서 서명 운동을 받는 이들의 모습을 스쳐 지나가듯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사건 자체를 떠올리게 만드는 매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시도 해당 장소를 관통하는 순남의 행동을 통해 최대한 억누른다.

영화를 연출한 이종언 감독은 참사가 있었던 그 다음해인 2015년부터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을 찾아 유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때의 경험이 많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동안 제작된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들이 세월호 참사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면, 그보다는 진실과 조작 그 바깥에 존재하는 유가족들의 마음 그 자체에 주목하고 싶었던 것.

사람들이 특정 프레임이나 구도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사랑하는 존재를 상실한 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 심정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길 바랐던 부분이 크게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대부분의 장면이 실제를 마주하는 듯 디테일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영화를 만들기로 한 이후 이어간 416 가족협의회와의 긴밀한 소통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영화 <생일> 스틸컷 영화 <생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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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이 작품의 중심에는 삶의 한 부분을 잃음으로 인해 남겨진 모든 잔해들을 홀로 짊어져야 하는 엄마 순남의 모습이 있다. 조금도 정리하지 못한 스스로의 감정은 물론, 홀로 감내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될 수밖에 없는 유가족 모임 구성원으로서의 삶 또한 그녀는 홀로 감당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도 없지만 혼자서는 제대로 해낼 수도 없다. 그녀는 여전히 아들을 떠나 보내지 못한 채, 사고 이전의 시간 속에 발이 묶여 있다.

다른 유가족 부모와 달리 수호의 상실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순남의 모습에는 두 가지 요인이 제시된다. 사업을 이유로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했던 남편 정일의 부재를 믿음직한 아들 수호를 통해 채워나간 지점의 이야기가 하나,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아들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원망과 자책이 또 하나다.

이 중에서 전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되고 후자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생일 모임 장면에서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남의 심리는 그녀를 더욱 입체적으로 설명하는 요소가 되고, 이를 통해 관객들은 그녀에게 깊숙하게 이입하게 된다.

한편, 아빠 정일은 순남과 완전히 반대의 상황에 놓여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를 끝까지 밝히지 못한 채 - 그 이유는 다른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만 공개된다. - 믿음을 다시 획득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순남을 표현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면, 그의 처지가 관객들에게만 공개될 뿐 극중 다른 인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순남의 심리 가운데 일부도 행동을 통해 유추가 가능할 뿐이지만, 정일의 사정은 완전히 가려져 있다.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극 중 인물과 관객의 정보 비대칭은 더욱 커다란 안타까움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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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만큼, 어떤 인물도 놓치지 않고 극을 이끌어가는 점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딸 예솔의 이야기이며, 아무것도 모를 것만 같은 소녀의 심리까지 끌어내 표현해내고 있는 이종언 감독의 시선은 세심하고 정밀하다.

영화는 현재 곁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대상과 부모, 아니 한부모인 엄마의 – 예솔은 처음에 정일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아버지와 떨어져 오래 지냈다. – 사랑을 두고 경쟁해야 했던 예솔의 마음은 물론, 이미 수호에게 다 쓰이고 난 뒤에 남은 사랑의 찌꺼기마저 긁어 모으려는 듯한 안타까움까지 놓치지 않고 그려내고 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정일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핏줄이라는 당위보다 갈급했던 사랑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고 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예솔은 자신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했을 것들에 대한 투정이나 요구는 생각한 적도 없거니와, 눈 앞에서 쏟아져 흐르는 엄마의 상실에 대한 깊은 슬픔 앞에 자신의 아픔을 드러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물이 다 빠져나간 갯벌을 두고 아빠에게 안겨 힘껏 몸부림치는 장면은 그렇게 숨죽이며 지내온 어린 소녀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자, 엄마에게는 단 한번도 부릴 수 없었던, 하지만 그 나이 또래에는 충분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할 것이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이는 아무도 없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05.

이 작품 전체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지점도 있다. 어떤 결과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다. 하나의 상황을 대하는 것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부분을 이 영화는 객관적으로 설명해낸다. 납골당에서 다른 유가족 부모들과 조우하게 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인물이 순남이기에 그들의 모습은 순남의 시선에서 다소 불편하게 그려지지만,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방식에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위로금을 받겠다는 부모에 대한 묘사 역시 각자의 사정이 있을 뿐이라고 설명된다. 영화는 그 모든 이들의 슬픔을 끌어안는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뿐, 슬픔을 끌어안는 방식에 옳고 그름은 없다는 것이다.

순남의 무너져가는 삶을 지탱해주는 이들이 항상 그녀의 주변에 함께하고 있는 이웃이라는 부분도 그 맥을 함께한다. 지극히 이상적이기만 한 장면과 행위의 연속이지만, 순남은 그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서 조금씩 껍질을 깨고 나온다. 오히려 그녀에게 불편한 것은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사이라는 이름으로 그 외면의 것들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의 변질된 사랑이다. 평소에는 먼 곳에 존재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야 나타나 첨언하려고 드는 인간들. 아무런 악의가 없던 정일의 보상금 이야기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순남의 모습 속에서 그 지난하고 긴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와도 같은 순남의 울음은 90분 가까이 쌓아온 이 영화의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이다. - 울음 소리만으로도 인물의 모든 감정을 전달해내는 배우 전도연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 2년, 3년, 혼자서는 몇 년을 반복해도 해소되지 않던 것들이 이제사 놓아지는 까닭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함께였지만 제대로 마음에 품지 못했던 딸 예솔도,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빈자리로 남아있던 남편 정일도 이제는 모두 그녀의 품 속에 있다. 이 장면 뒤로 등장하는 30분 가까운 생일 모임 장면 역시 이 지점의 감정적 해소로 인해 똑바로 설 수 있게 된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감정 뒤로 남은 잔재들을 모두의 힘을 빌려 정리해가는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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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하나의 사건뿐만 아니라, 하나의 가족, 한 사람을 대하는 지점에 있어서도 다양한 태도가 이 극 속에 녹아있다. 서로의 감정이 채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거리를 좁히지 않고 유지하려는 이도 있고, 그 미묘한 감정을 조심스럽게 엮어내며 관계의 걸음을 나아가고자 하는 이도 있고, 상대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의 욕망대로만 달려드는 이도 있다.

이종언 감독의 말에 따르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고자 한 부분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한다. 실제 유가족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실제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옮겨내고 싶었을 뿐, 굳이 대답을 하자면 그것은 관객들 각자의 몫으로 남겨둘 것이라고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아픔에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동일한 강도의 아픔이라면 자신의 아픔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고, 시간이 흐르면 타인의 아픔은 이내 곧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의 모습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점과 어떤 가르침이 아닌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 막연한 슬픔이었을지도 모르는 감정의 더욱 세밀한 부분을 사실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만으로 영화 <생일>의 역할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생일 전도연 설경구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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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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