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는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정식종목으로 열렸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정식종목에서 제외됐던 당구는 오는 2030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부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2019년부터 PBA 프로당구투어가 열리고 있고 김가영과 스롱 피아비, 이미래, 조재호 같은 스타 선수들이 활약하며 '당구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당구장은 '비행청소년들의 소굴'로 인식되곤 했다. 실제로 그 시절 학생부 선생님들은 학교의 문제아들을 선도하기 위해 당구장을 찾았다. 당구장에서 시비가 붙는 경우도 많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20세기의 당구장을 배경으로 불량 청소년들이 등장하면 십중팔구 패싸움 장면으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당구장에 담배연기가 자욱하던 어둡던 시절에도 순수하게 당구라는 스포츠에 빠져 당구를 연구하고 훗날 당구스타가 되는 꿈을 꿨던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절 당구 마니아들에게는 마치 교본처럼 반드시 봐야 하는 당구영화가 있었다. 수많은 후배 감독들에게 존경 받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했고 당시 60대였던 고 폴 뉴먼과 파릇파릇한 시절의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컬러 오브 머니>였다.
 
 <컬러 오브 머니>는 국내에서도 1987년에 개봉해 서울관객 12만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컬러 오브 머니>는 국내에서도 1987년에 개봉해 서울관객 12만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 브에나비스타 픽쳐스

   
중후한 매력을 갖춘 할리우드의 신사

1925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뉴먼은 1943년 오하이오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색맹이었던 뉴먼은 희망하던 조종사가 되진 못했지만 뇌격기의 후방기총 사수로 항공모함에 배치됐다. 하지만 뉴먼이 탑승할 뇌격기의 조종사가 귀 염증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뉴먼도 전투에서 제외됐는데 덕분에 뉴먼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있었던 일본군의 자살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1946년 제대 후 예일대학교 연극대학원에서 연기를 배운 뉴먼은 1955년 배우로 데뷔했고 1958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의 톱스타로 떠올랐다. 뉴먼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고 말론 브란도, 고 제임스 딘과 함께 1950년대 미국의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반항아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는데 그 중에서도 뉴먼은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도시남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1년 당구도박사 에디 펠슨의 이야기를 다룬 <허슬러>로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뉴먼은 1969년 <내일을 향해 쏴라>,1973년 <스팅>,1974년 <타워링>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특히 1960년대를 함께 호령했고 <빠삐용>으로 유명한 고 스티브 맥퀸과의 라이벌 구도는 꽤 유명했다. 하지만 항간에 알려진 소문과 달리 실제 뉴먼과 맥퀸은 <타워링>에 함께 출연해 1억1600만 달러의 흥행을 견인했하기도 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뉴먼은 1958년 <길고 긴 여름날>을 통해 일찌감치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지만 정작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6번 후보에 올라 한 번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결국 뉴먼은 1986년 아카데미에서 공로상을 받은 후 1987년 시상식에 불참했는데 그 해 <컬러 오브 머니>를 통해 만62세의 늦은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물론 대부분의 관객들은 너무 늦은 남우주연상 수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90년대 이후 활동이 줄어든 뉴먼은 1999년 <병 속에 담긴 편지>와 2002년 <로드 투 퍼디션>에서 1990년대 최고의 배우 케빈 코스트너, 톰 행크스와 연기호흡을 맞췄다. 작품 속 이미지와 사생활이 크게 달랐던 많은 배우들 사이에서 모범적인 생활로 귀감이 됐던 '영원한 신사' 뉴먼은 지난 2008년 83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생전에 설립한 비영리 식품회사는 현재까지 2억 달러가 넘는 기부를 하며 사후에도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노장 폴 뉴먼과 신예 톰 크루즈의 '신구조화'
 
 환갑이 넘은 폴 뉴먼(오른쪽)과 라이징스타 톰 크루즈는 <컬러 오브 머니>에서 멋진 연기호흡을 보여줬다.

환갑이 넘은 폴 뉴먼(오른쪽)과 라이징스타 톰 크루즈는 <컬러 오브 머니>에서 멋진 연기호흡을 보여줬다. ⓒ 브에나비스타 픽쳐스

 
영화 <컬러 오브 머니>는 폴 뉴먼이 출연했던 1961년작 <허슬러>의 속편으로 무려 25년 만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의해 속편이 제작됐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당시 <비열한 거리>와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등을 만들었던 열정이 넘치던 40대의 젊은(?) 감독이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허슬러>에서 에디 펠슨을 연기했던 폴 뉴먼과 <탑건>으로 한창 떠오르던 톰 크루즈를 캐스팅해 <컬러 오브 머니>를 완성했다.

<컬러 오브 머니>는 도박 당구계를 떠나 위스키를 팔면서 생활하던 에디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한 전도유망한 당구도박꾼 빈센트(톰 크루즈 분)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월터 테비스 작가의 동면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지만 폴 뉴먼의 진중한 연기와 라이징스타 톰 크루즈의 매력, 그리고 스코세이지 감독의 노련한 연출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은퇴 후 나빠진 눈과 함께 노쇠화를 깨달은 에디는 안경을 맞추고 체력관리를 한 후 나인볼 클래식대회에 참가했다. 에디는 8강에서 빈센트에게 힘들게 승리했지만 사실 빈센트는 에디에게 돈을 걸고 일부러 경기에서 패한 것이다. 에디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곧 빈센트와 제대로 승부를 해보자며 다시 당구대 앞에 섰다. 비록 마지막 승부 결과는 나오지 않지만 에디의 마지막 대사 "내가 돌아왔어"는 관객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긴 명장면이다. 

1987년에 개봉해 서울관객 12만을 동원한 <컬러 오브 머니>는 그 시절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감상해야 하는 영화였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특히 <컬러 오브 머니> 개봉 후 빈센트가 선보인 화려한 퍼포먼스와 '찍어치기'는 당시로선 혁명에 가까웠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브레이크 샷>이라는 당구만화도 국내에서 <나인볼황제 용소야>라는 해적판으로 발매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와는 별개로 <컬러 오브 머니>는 게임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빈센트가 에디에게 선물 받은 발라부시카 큐를 내기당구 상대에게 소개하며 '둠'이라고 외치는 장면 때문이다. 톰 크루즈의 대사에서 영감을 얻은 게임회사 이드 소프트웨어에서는 1993년 명작게임 <둠>을 출시했다. 톰 크루즈가 지나가면서 했던 대사가 레전드 게임의 제목이 됐을 만큼 당시 톰 크루즈의 인기와 영향력이 대단했다는 뜻이다.

<컬러 오브 머니>에 조연으로 나온 연기파 배우
 
 <컬러 오브 머니>에서 당구도박꾼 에이모스를 연기한 포레스트 휘태커는 2년 후 <버드>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컬러 오브 머니>에서 당구도박꾼 에이모스를 연기한 포레스트 휘태커는 2년 후 <버드>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브에나비스타 픽쳐스

 
폴 뉴먼과 톰 크루즈가 이끌어가는 영화 <컬러 오브 머니>에서는 메리 엘리자베스 매스트란토니오가 빈센트의 여자친구 카르멘을 연기했다. 매스트란토니오는 1984년 <스카페이스>와 1991년 <로빈 훗>, 1993년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2000년 <퍼펙트 스톰> 등에 출연했다.

<컬러 오브 머니>에는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최고의 배우 2명이 출연했다. 한 명은 당연히 1958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이자 1987년 <컬러 오브 머니>를 통해 6전7기 끝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폴 뉴먼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은 1988년 <버드>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후 2007년 <라스트킹>을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포레스트 휘태커다.

<컬러 오브 머니> 출연 당시 지금처럼 유명배우가 아니었던 휘태커는 순박한 동네 청년으로 위장한 당구도박꾼 에이모스를 연기했다. 에이모스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사를 이야기하며 에디를 방심시킨 후 에디에게 연승연승하며 큰 시련을 안겼다. 하지만 이는 당구도박꾼에서 은퇴했던 에디의 승부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고 에디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승부사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컬러오브머니 마틴스코세이지감독 폴뉴먼 톰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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