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상영 섹션 가운데는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가 있다. 전국 각지, 지역에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영화들을 전주를 찾은 영화팬 앞에서 소개하는 섹션이다. 이미 다른 영화제에서 발표된 바 있는 작품들로, 전주영화제에서 경쟁이며 다른 섹션에 삽입될 자격을 갖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 몇 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 어디든 옮겨갈 수 있는 세상이다. 지역영화와 중앙영화가 과연 따로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마땅찮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지역에서 기획되고 촬영된, 혹은 지역 출신 영화인이 제작한 영화를 특별히 지원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꾸준히 제기되고는 한다.
 
<거리에 서서>는 그에 대한 답변과도 같은 작품이다. 지역영화의 가치가 있다고, 지역영화만이 비출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이 작품이 말한다. 투박하고 조악한 연출이 눈에 걸린다는 타당한 비판 앞에서도 과연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 있느냐고 당당히 되물을 수 있는, 그런 영화라는 뜻이다.
 
거리에 서서 스틸컷

▲ 거리에 서서 스틸컷 ⓒ JIFF

 
젠트리피케이션 가운데 놓인 갤러리 카페
 
이야기는 대전의 원도심 대흥동에 위치한 어느 갤러리 카페로부터 시작한다. 상미는 선배인 화가 미래와 함께 지내며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그녀는 미래와 함께 발품을 팔아가며 새로 카페를 옮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지금 카페가 자리한 건물의 주인이 원룸을 짓겠다고 카페를 비워 달라 통보한 때문이다.
 
이들이 함께 알아본 자리는 대흥동 바로 북쪽에 위치한 선화동이다. 역시 원도심으로 낙후되었다 볼 수 있지만, 가진 자산으로 옮길 곳은 그뿐이라 여겼기 때문일 테다. 외지에서 온 이들이 땅값을 크게 올려놓은 탓에 새 카페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래 한 자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세상은 관대하지 않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그저 저 멀리 서울의 무슨무슨길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상미와 미래는 이사를 두고 갈등한다. 빈 카페 공간에 선뜻 작업실을 차리라며 미래를 맞이했던 상미지만, 새로운 자리로 옮기면 그만한 공간을 내어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하고 가진 돈이란 빠듯한 탓이다. 눈 앞에 보이는 막막한 현실 가운데 미래는 이사를 마냥 반길 수가 없다. 가뜩이나 모난 성격, 괜히 상미에게 싫은 소리를 하게 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거리에 서서 스틸컷

▲ 거리에 서서 스틸컷 ⓒ JIFF

 
흔들리는 관계, 무너지는 마음
 
영화는 이사를 앞두고 카페에서 개인전을 여는 미래의 모습을, 약간의 다툼을 화해로 갈무리하고 전시회를 돕는 상미를, 그로부터 이어진 성공적 전시를, 그러나 마냥 즐겁게 끝낼 수만은 없는 결말까지를 차근히 그린다. 만듦새가 떨어지는 연출과 각본, 연기에도 불구하고 지역과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만큼은 물씬 묻어나는 이 영화를 그리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하는 건 완성도보다 마음이 귀한 때가 있음을 아는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열린 GV자리에서 김경양 감독은 말수가 많지 않은 다른 감독들보다 몇 배는 족히 되는 시간 동안 제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았던지 대전이라는 도시의 역사부터 온갖 유물과 유적, 배출한 인물들 따위를 한참이나 설명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철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구도심과 새로이 발전한 신도심의 이야기,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서울에서 온 이들에게 구도심 일대 소유권이 크게 이전된 사정, 부동산 투기바람과 개발붐이 본래 예술의 거리였던 대흥동 일대를 파괴한 과정들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풀어놓았다.
 
김 감독은 "(구도심엔) 과거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화실이나 갤러리가 집결된 지역이었고 그 흔적이 남아 있다"며 "2017년, 2018년이 되며 원룸이 급부상하고 문화가 없는 지역이 되어서 인스턴트식 문화는 번성하지만 성격이 뚜렷한 카페 같은 곳이 없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작품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그녀는 작품 속 화가의 이름을 김미래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대흥동 안에서는 예술가 김미래의 미래는 없는 것"이라고 설정한 이유를 밝혔다.
 
거리에 서서 스틸컷

▲ 거리에 서서 스틸컷 ⓒ JIFF

 
지역영화, 그리고 독립영화의 필요
 
<거리에 서서>를 보고 지역영화의 필요에 공감했다는 관객도 없지 않았다. 한 관객은 "지역영화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공감하게 되었다"며 "감독님이 바라보는 대흥동이 어떤 곳인가"하고 물어 눈길을 끌었다.
 
옛 상업지구여서 크게 흥한다는 뜻의 대흥이란 이름을 달았던 이 동네가 어느덧 특색 없는 원룸이 즐비한 지구로 변모하는 과정은 과연 도시의 자연스런 변천인가를 되묻도록 한다. <거리에 서서>에 지역영화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의문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일 테다.
 
한편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저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더욱 가치가 있다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극중에서 전시를 축하한다는 의미로 여러 인물이 모였는데, 사실 제가 지역에서 아는 분들"이라며 "(이 장면 촬영을) 축제처럼 해주시는 걸 보니 그 자체가 소중한 체험이고 지역만이 갖고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란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아쉬운 연출과 연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그저 재미와 완성도로 평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일깨운다. 때로는 주류 역사가 담지 못하는 대안적 기록으로, 또 때로는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작업으로, 그리고 부족할지언정 의미를 찾아가려는 시도로써 영화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오늘의 아쉬움 가득한 몇몇 장면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비치기도 한다.
 
부동산 투기와 외부 자본의 침투, 본래 살던 이들이 지역에서 물러나는 현상, 그 모두가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그저 대전만의 문제일 수 없다. 기실 전국 많은 지방도시에서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구도심이 개발의 바람 아래 재편되는 모습이 목격되고는 한다.
 
누군가는 도시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고, 오랫동안 구성원이었던 누구는 외곽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과연 자연스런 현상인가, 막고 제어해야 하는 문제인가를 한국사회는 과연 충실히 논의한 적이 있는가. 더 정의로운 답을 내기 위하여선 불편하고 난처한 질문을 더 적극적으로 던져야만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JIFF 거리에서서 김경양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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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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