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피식대학>에 서준맘(박세미 역)이 딱 붙는 원피스에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뭐야, 신도시맘 조롱하는 콘텐츠 아니야?' 최근 몇 년간 신도시 엄마를 '맘충'으로 비하하는 시도는 계속되었고, 서준맘은 인터넷 밈으로 떠도는 신도시 엄마의 외현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단순히 패션을 넘어, 외모에 관심이 많고 속물적이며 주변 뒷담화를 좋아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서준맘은 '맘충'으로 프레이밍될 수 있는 특징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친화력이 좋고 미워할 수 없는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좋은 엄마'와 '맘충'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한가하고 팔자 좋은' 중산층 전업주부라는 타자화를 넘어, 서준맘을 실제 내 옆에 사는 이처럼 친근하게 느낀다.
나는 서준맘과 같고도 다르다. 나는 서준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지만 서준맘처럼 신도시에 살지 않고,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다니지 않으며, 친구들을 쉽게 사귀지 못한다.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던 캐릭터에게서 최근 진한 동질감을 느꼈다. 아들 서준의 시점에서 촬영한 서준맘의 일상 영상에서다.
서준맘은 방금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아 올린 채 아이의 양치를 시키고 아이의 코를 풀어준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자 "우리 배서준이 아파도 돼"라고 말하며 아이의 '열 보초'를 서다 끼무룩 잠이 든다. 나 역시 매일 반복하고 있는 노동의 목록들 아닌가.
그 노동의 상위 목록에는 이런 것이 있다. '높고 밝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항상(서준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항시적으로') 다정하고 명랑하게 대할 것.' 서준맘은 아이 세수를 시키는 와중에도 까꿍 놀이를 하듯 웃어주고,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아이고 그랬어?"라며 반응해주고, 속상한 상황에서도 아이가 나타나면 밝은 표정을 짓는다.
나 역시 아이를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한 톤 높여 아이의 행동에 과한 추임새를 넣을 때가 있다. 가끔은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대부분은 주위의 태도를 습관적으로 따라해서다. 그러다 '현타'가 오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마주친 엄마들이 모두 비슷한 말투를 구사하는 걸 목격할 때, 내 말투가 조금은 '연기'처럼 느껴질 때.
서준맘의 육아 태도는 그의 높은 텐션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엄마에 대한 사회문화적 기대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발달위원회는 부모가 아기에게 높고 밝은 목소리로 말하라고 권고한다.
아기들은 단조로운 톤이나 어른 중심의 말보다는 톤이 높고 가락이 있는 아기 중심의 말을 더 잘 알아듣고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자신의 권고를 뒷받침하기 위해, 단조롭고 어른 중심의 언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의 지능 발달이나 학습 성취도가 더 낮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억텐'으로 포장하는 엄마들... 나는 가끔 '현타'를 느낀다
채널A의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는 화가 날 때 엄마에게 "야! 너!"라고 하는 아이에 대한 솔루션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흥이 넘치는 기질이므로 "너 뛰었지? 정리하자!" 하기보다 "(높고 밝은 목소리 톤으로) 우리가 너~무 재밌어. 근데 바닥에 이거 밟아서 꽈당하면 아야 아야 하니까 우리가 치우기는 해야 하는데… 알았다! 먼저 치우자!"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이 전문가들의 권고에서 하루 종일 높고 밝은 목소리로 명랑한 '연기'를 해야 하는 양육자, 특히 대부분 주양육자로서 독박육아에 허덕일 엄마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는다. 매일 높은 목소리톤으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반복해야 하는 콜센터 상담사의 기분과 감정이 고려되지 않는 것처럼. 육아는 점점 더 복잡한 의사소통의 규칙으로 가득해지고, 감정적으로 자신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 된다.
서준 시점의 이 서준맘 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대다수의 댓글 반응은 "우리 엄마 생각나서 울 뻔", "서준이가 부럽다", "바쁜 와중에 서준이한테 웃으면서 신경써주는 게 너무 대단함" 등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거나, 서준맘의 엄마 노릇을 칭찬하는 것들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박세미와 함께 출연한 배우 이미도는 이 영상을 시청하다 눈물을 보였다. "엄마들이 지치고 힘든데도, 이렇게 아이한테는 밝게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이 노력은 아이를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 존재로 대하겠다는 윤리적 태도다.
그러나 바람직한 육아의 이상도, 감정노동의 규칙도 점점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 노력은 양육자의 고유한 감정과 기질, 성향을 배제하고 '높은 텐션'을 기본값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과업이기도 하다. 이 불가능한 과업에 분투하는 서준맘을, 나는 마냥 웃으며 시청할 수 없었다.
서준맘도 다른 엄마들의 말투에서 어떤 전형성을 발견할 때, 텐션이 떨어지는데도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려 명랑한 얼굴을 포장할 때, 나처럼 '현타'를 느낄까. 나는 서준맘의 그런 순간을 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