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성공을 거두면서 미 독립 영화 섹션의 하위 장르로 받아들여지던 교포, 이민자 소재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제작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르의 탄생 및 정착에 기여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짧은 시간 안에 반복적으로 제작되는 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알리거나 내면을 터뜨리는 용도로만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인 교포 출신의 연출 시도 역시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연출한 한국계 캐나다 배우이자 감독인 앤소니 심 또한 이들 그룹의 선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90년대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소영(최승윤 분)과 아들 동현(이선 황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자신의 삶 전부로 생각하는 소영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겪게 되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가 극의 중심에 놓여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완벽하지 못한 가정의 모습과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가해지는 인종 차별 문제가 야기하는 여러 문제는 상황 설정과 갈등의 격화, 해소의 구조를 반복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이 갖는 서사의 계층을 쌓는다.

02.
영화는 아들 동현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엄마 소영과 동현의 날들이 그려진다. 아이는 아이대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일을 나가는 공장에서 성희롱을 당한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홀로 감내할 수 있는 어른과 달리 아이는 그럴 수 없다. 아이들의 조롱 섞인 장난에 엄마가 싸준 김밥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리고도 집에 돌아와서는 맛있다고 하고 한국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싸달라고 넌지시 물어온다. 철이 빨리 든 탓에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나름대로는 노력을 하지만 엄마가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다.

아이들의 따돌림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루저(Loser)라며 놀림을 당하고 무리를 지어 따돌리는 녀석들은 안경을 빼앗고 침까지 뱉어 온다. 영화에서는 단 한 신으로 설명이 되는 외로운 시간이지만 실제로 동현은 그보다 더 숱한 날들 속에서 매일같이 겪어온 일일 것이다. '라이스 보이'라는 기분 나쁜 별명을 얻는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현은 그런 백인 아이들을 닮고 싶어하고 그들이 먹는 음식만 먹으려고 한다. 그들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이미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3.
이처럼 영화의 초반부를 관통하는 동현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인종 차별에 대한 주제 의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 시절의 이민자 세대가 겪어야 했던 현실적인 아픔이자 빼놓을 수 없는 서러움을 이 작품에서도 강하게 보여줌으로서 현실성을 획득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외부의 인종 차별은 내부의 적응에의 노력으로 치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동현이 다른 친구들의 폭력에 맞서 자신의 폭력으로 저항했을 때 주어지는 불공평한 결과로 정점에 이른다. 문제의 발단이 되는 백인 아이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에 비해 동현은 홀로 일주일의 정학 근신 처분을 받는다. 소영이 학교를 찾아 항변에 항변을 거듭해 보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직전에 언급했던 '적응에 대한 노력'은 표현 그대로 숭고한 종류의 것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참하고 처절하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불공평하고 억울한 날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이를 갈며 속으로 삼켜야 한다. 여기에서의 적응은 그런 것이다.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에게 이 땅은 그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다른 선택지가 아니라 마지막 장소와도 같기 때문이다. '라이스 보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애원을 하면서도 '라이스 보이'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공장에서의 부당한 처우에도 그 공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적응해야 하는 이유다.

04.
한편,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는 16살이 된 동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9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제법 안정적인 상황이 되었다. 소영도 공장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동료를 만들었고, 동현도 어울려 다닐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하지만 동현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달라졌다. 친구의 집에서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며 소영의 기대와 달리 그리 착실한 모습의 청소년이 되지는 못한 모습. 술과 마약, 담배는 제발 하지 말아 달라던 엄마의 부탁이 있었음에도 그는 조금도 꺼려하지 않는다.

그의 모습이 이렇게 많은 변화를 보이는 동안 엄마의 삶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처음 타국으로 건너왔을 때처럼 그녀는 여전히 가정을 지지하는 유일한 버팀목이며, 아들 동현만을 걱정하는 인물로 남아있다. 다만 아들이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보살피고 다독거리며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과 달리 동현과의 거리는 점차 조금씩 멀어진다. 이는 두 사람이 쓰는 언어가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으로부터 시각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전히 한국말을 쓰는 엄마와 이제 영어가 더 편해진 아들의 거리는 단순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두 사람이 마음을 두고 있는 공간에 차이가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영은 가정의 내부에, 동현은 외부에.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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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이 즈음부터 엄마 소영의 서사가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이어지던 다른 모든 주제들을 밀어내고 가족의 서사를 극의 중심으로 끌고 오는 역할을 소영이 하게 되는 셈이다. 소영의 병과 사이먼과의 관계,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한국으로의 여정 등의 장면 모두가 소영의 서사와 맞물려 시작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소영은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영화의 초반에서 동현의 이야기가 조금 두드러졌을 뿐이다. 반대로 이 지점에서 커지는 소영의 이야기는 가정을 벗어나 바깥을 전전하며 일탈을 일삼는 동현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 엄마의 모습처럼 보인다. 한국에 도착한 동현이 어설픈 한국말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그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음을 상징하는 바와 같다.

소영이라는 인물에게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 현재를 완성하는 연결자의 역할도 부여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소영과 동현의 가정은 이국에서 문화적, 공간적인 단절을 겪는 집단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시간적인 단절을 겪는 집단이기도 하다. 엄마 소영의 존재가 사라지게 되는 순간, 홀로 남게 되는 동현은 공간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절대적인 단절을 겪게 되고 만다. 과거의 그 어떤 존재, 기억과는 연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엄마 소영은 동현의 시간적 연결에 중요한 인물이며, 그녀 역시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일 대신 동현과 함께 한국으로 향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06.
영화에는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 소재 중 하나로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죽음을 앞두고도 떠나게 될 자신보다는 남게 될 동현이 눈에 밟히는 소영이 자신과 아들의 상황을 자신이 버려지러 가는 길임을 알면서도 밤길에 지게를 지고 다시 산을 내려가야 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이야기에 비유한 대목이다. 처음에는 아들 동현을 안고 함께 누워있던 엄마 소영의 말을 통해 전해지는데, 이후 아버지 원식의 무덤을 찾아 산을 오르는 장면에서 동현이 엄마를 등에 업는 장면으로 실체화 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를 버리고 홀로 돌아오기 위해 산을 오르던 이야기 속 아들의 모습과 달리 이 장면에서 동현은 힘들어 하는 엄마를 돕기 위해 업고 산을 오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벼운 전환을 시도한 것처럼 보이는 연출이지만, 이 두 장면의 연결로 인해 아들 동현이 가지는 캐릭터의 입체성은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이 소재를 양쪽에서 이렇게 뒤집어 활용하는 면만 봐도 앤소니 심 감독이 이 작품에 얼마나 진심으로 접근하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이 영화의 또다른 특징적인 부분인 화면비의 변화에 (캐나다에서의 삶이 그려지는 부분에서는 1.33:1의 비율, 한국에서의 장면에서는 1.78:1의 비율로 촬영되었다) 대해서도 감독은 인물의 심리를 담고자 했다고 지난 8일 GV 자리를 통해 밝혔다. 땅은 넓지만 그 안에서 느끼게 되는 개인의 외로움과 거리감을 강조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좁은 비율의 화면비를 사용한 것과 반대로 땅은 좁지만 정(情)이 느껴지고 감정적으로는 훨씬 더 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넓은 비율의 화면비를 사용해 차이를 뒀다고 말이다.

07.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제공한 프로그램 북의 공식 프로그램 노트에는 이 작품이 제 2의 <미나리>(2020)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는 표현이 있다. 이민 가족의 이야기, 타지에서 겪게 되는 유사한 어려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따뜻함.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의미로 그런 설명이 제공되었는지 조금은 수긍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영화 <미나리>가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포착해 삶의 특별한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감성적인 부분(아들의 잠자리를 돌보는 엄마의 모습이나, 마지막 춤을 함께 추는 소영과 사이먼의 장면 등)은 물론, 자신의 처지나 외부적 환경과 상관없이 자신의 뿌리와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가계도와 관련한 학교의 이야기, 한국에서의 에피소드 등) 전달하는 부분 또한 이 작품이 가진 특별한 지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어린 시절의 동현과 청소년이 된 동현, 두 시기의 이야기를 함께 그려낸 감독의 선택이 참으로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오늘 이야기한 모든 내용의 요약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한번 더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민자 가족이 겪게 되는 집단(가정)의 외부적 문제와 함께 개인의 내면적 문제를 그려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른 의미에서 이 작품이 영화 <미나리>만큼이나 마음에 남는다.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영화 라이스보이슬립스 부산국제영화제 앤소니심 최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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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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