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칼날의 양면>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장의 입장에서는 사라와 프랑수아의 만남을 우연한 순간조차 허락하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프랑수아가 제안하는 사업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 기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현직에 몸을 담지 않았던 프랑수아를 대신하여 선수들을 직접 스카우팅 하고 필드에서의 이름값으로 에이전시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역할로 다시 업계로 돌아갈 명분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유명 스포츠인이었다고는 하나 이제는 그냥 전과자에 불과한 그의 입지가 그로 하여금 다시 발을 들이는 것을 막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으니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던져진 것이다.
문제는 그가 프랑수아와의 사업을 이어간다는 뜻은 그만큼 두 사람의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그와 사라의 접점 또한 커지고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두 사람의 재회에 대해 장은 이번에도 역시,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시작하는 에이전시 사무실의 개업식에 그녀가 참석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속내를 드러내며 다투게 된다.
"사라, 보고 싶은 게 사무실이야? 그 친구야?"
그러니까 세 인물의 관계가 삼각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각각의 인물이 안고 있는 현실적, 심리적 상황이 다시 한번 삼각의 모양을 갖게 되는 셈이다. 장의 입장에서는 사라와 프랑수아의 재회가 달갑지 않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는 마치 두 사람의 만남을 돕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움직일 수 없고, 사라의 입장에서는 장이 불편해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프랑수아에 대한 호기심 또는 욕망을 감출 수 없어 도의적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는 모양새가 된다. 프랑수아 역시 마찬가지다. 장과의 동업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것이 분명하지만 사라와의 자연스러운 재회를 위해서는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04.
사라와 프랑수아의 재회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 영화는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이중적인 사고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사라를 통해 명확히 보여준다. 그녀는 프랑수아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장면 직후에 던져지는 장의 의심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상처를 받은 모습으로 눈물로 호소하며 부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는 두 사람이 바깥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집으로 찾아온 프랑수아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확인한 장의 분노에도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거짓된 진실을 항변하고자 한다. 장과 사랑을 나누던 침대 위에서 프랑수아와의 밀담을 나누는 장면조차 무색할 만큼 말이다.
이제 다른 사랑이 생긴, 지금의 사랑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이의 감정싸움에는 거침이 없다. 더 이상 이별이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말꼬리를 잡아 되려 상대를 힐난하는 의미 없는 시간들이 계속된다. 자신의 진실성에 도취되어 자기기만에 가까운 태도로 자신을 감시해 온 것을 안다며 오히려 자신이 지친다는 사라지만 영화는 그 어떤 장면에서도 장이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프랑수아를 만나 먼저 키스를 퍼붓고 사랑을 말하고 몸을 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