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칼날의 양면>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칼날의 양면>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영화의 시작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년 남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라(줄리엣 비노쉬 분)와 그녀의 남편 장(뱅상 랭동 분)이다. 두 사람은 9년 째 함께 살고 있지만 휴가로 다녀온 여행지에서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과 사랑 가득한 스킨십은 멈출 줄을 모른다. 두 사람의 관계에 작은 흠집을 내기 시작하는 것은 사라가 출근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한 남자를 우연히 목격한 이후다. 그녀의 등 뒤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너머로 여자는 남자의 이름을 여러 번 조용히 읊조린다. 프랑수아(그레고리 콜린 분). 10년 전 헤어진 사라의 전남편이다. 그리고 며칠 뒤, 프랑수아로부터 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스포츠 선수 계약을 담당하는 에이전시를 하나 차릴 계획인데 같이 하면 어떻겠냐는 내용이다.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할 것 같던 부부와 그들의 사이를 파고드는 아내의 전남편. 작은 칼날이 일상을 파고들며 작은 생채기를 내기 시작한다.

감독의 초창기 작품까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최근의 작품들 <돌이킬 수 없는>(2014), <렛 더 선샤인 인>(2018), <하이 라이프>(2019)까지만 보더라도 클레르 드니 감독은 관계의 긴밀한 내막과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인물이다. 이번 작품 <칼날의 양면>에서는 삼각관계에 놓인 세 남녀의 모습을 통해 사랑이라는 단어 그 어두운 면에 놓여있는 이중적인 감정 사고, 자기기만, 거짓된 노력과 의지가 관계를 어떻게 허물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한 가지는 세 사람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상황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가 역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갈등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소 차분한 가운데 행동하는 이들의 동인(動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호흡을 남겨두기 위함으로 보인다.

02.
앞서 이야기한 부분 가운데 장에게 걸려온 프랑수아의 연락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무게는 세 사람이 서로 알고 지내온 인물이라는 부분에 실린다. 10년 전 프랑수아와 사라가 처음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장과 프랑수아는 좋은 친구 사이였다는 설정이다. 전직 스포츠 스타로 부상 때문에 은퇴를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장이 수감 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프랑수아와 헤어진 사라는 장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사라가 오랫동안 모습을 찾을 수 없었던 프랑수아의 모습을 발견한 이후 세 사람의 관계가 급격히 복잡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이 지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갑작스러운 프랑수아의 접근과 사라가 그를 처음 목격한 시간적 간격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을 고려해보면 바로 그 순간에 프랑수아 역시 사라의 모습을 지켜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 시점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다시 바로 키워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프랑수아의 등장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라와 장의 대화를 보면 두 사람 모두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인데 아마도 그들의 이런 태도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커지게 될 불화의 씨앗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정말 두 사람의 말처럼 조금의 불편함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두 남자의 재회를 멀리 내려다보며 사라가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칼날의 양면>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칼날의 양면>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3.    
장의 입장에서는 사라와 프랑수아의 만남을 우연한 순간조차 허락하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프랑수아가 제안하는 사업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 기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현직에 몸을 담지 않았던 프랑수아를 대신하여 선수들을 직접 스카우팅 하고 필드에서의 이름값으로 에이전시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역할로 다시 업계로 돌아갈 명분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유명 스포츠인이었다고는 하나 이제는 그냥 전과자에 불과한 그의 입지가 그로 하여금 다시 발을 들이는 것을 막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으니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던져진 것이다.

문제는 그가 프랑수아와의 사업을 이어간다는 뜻은 그만큼 두 사람의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그와 사라의 접점 또한 커지고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두 사람의 재회에 대해 장은 이번에도 역시,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시작하는 에이전시 사무실의 개업식에 그녀가 참석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속내를 드러내며 다투게 된다.

"사라, 보고 싶은 게 사무실이야? 그 친구야?"

그러니까 세 인물의 관계가 삼각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각각의 인물이 안고 있는 현실적, 심리적 상황이 다시 한번 삼각의 모양을 갖게 되는 셈이다. 장의 입장에서는 사라와 프랑수아의 재회가 달갑지 않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는 마치 두 사람의 만남을 돕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움직일 수 없고, 사라의 입장에서는 장이 불편해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프랑수아에 대한 호기심 또는 욕망을 감출 수 없어 도의적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는 모양새가 된다. 프랑수아 역시 마찬가지다. 장과의 동업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것이 분명하지만 사라와의 자연스러운 재회를 위해서는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04.
사라와 프랑수아의 재회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 영화는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이중적인 사고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사라를 통해 명확히 보여준다. 그녀는 프랑수아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장면 직후에 던져지는 장의 의심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상처를 받은 모습으로 눈물로 호소하며 부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는 두 사람이 바깥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집으로 찾아온 프랑수아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확인한 장의 분노에도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거짓된 진실을 항변하고자 한다. 장과 사랑을 나누던 침대 위에서 프랑수아와의 밀담을 나누는 장면조차 무색할 만큼 말이다.

이제 다른 사랑이 생긴, 지금의 사랑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이의 감정싸움에는 거침이 없다. 더 이상 이별이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말꼬리를 잡아 되려 상대를 힐난하는 의미 없는 시간들이 계속된다. 자신의 진실성에 도취되어 자기기만에 가까운 태도로 자신을 감시해 온 것을 안다며 오히려 자신이 지친다는 사라지만 영화는 그 어떤 장면에서도 장이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프랑수아를 만나 먼저 키스를 퍼붓고 사랑을 말하고 몸을 섞는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칼날의 양면>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칼날의 양면>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5.
등장인물 사이의 삼각관계와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방향에서 극을 진행시켜 나간다. 감정적 혼란과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해서 일상을 멈추거나 다른 사회적 활동을 중단할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도 장의 주변에서는 또 다른 일상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그를 방해한다. 장과 그의 어머니, 아들이 함께 엮여있는 내러티브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들의 이야기는 극의 흐름에서 제거가 되더라도 핵심 내러티브에 영향을 주지는 못할 정도로 독립적인 위치에 놓여있다.

장이 첫 결혼에서 이혼을 하면서 어머니가 그의 아들을 대신 양육하게 되는 일이나,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집 안팎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그런 아이를 이제 더 이상 어머니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등의 서브 스토리는 단지 장이라는 인물이 겪게 되는 문제가 사랑의 감정이 관여하는 지점에만 놓여있지 않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장치인 것이다. 영화 내부에서야 사랑으로 인한 여러 상황이 단 하나의 주요한 테마로 삶에 그것 하나만 놓여있는 것처럼 활용되고 표현될 수 있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06.
어떤 감정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좋은 상태로 고점(高點)에만 머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감정 가운데 하나인 사랑도 마찬가지다. 홀로 숨쉬기를 멈추는 사랑은 없다. 잠시 호흡을 고르는 사이, 감정이 저점(低點)으로 향하는 순간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의심과 불안, 질투와 같은 감정에 자리를 내어줄 때 위기는 항상 찾아온다. 이 거듭된 위기가 이제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로도 서로 이어 붙지 못할 때 서로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서로가 가진 양면의 모습을 목도하며 끝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행복을 선택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그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나중에라도 깨닫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모두 그 자신이 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그로 인한 어떤 상처들은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사랑을 말하고 시작하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이미 시작된 사랑을 부수고 파괴하고 멈추게 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칼날의양면 줄리엣비노쉬 클레르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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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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