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1 12:06최종 업데이트 24.05.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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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윤석열 정부 2년을 집중 진단합니다. 윤정부 2년의 역사적 퇴행을 바로잡고 정책을 복원하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이며, 이 글은 열 번째 '복지 퇴행'입니다.[편집자말]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보장 촉구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2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수십 년 동안 군사정권을 포함해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어느 정권도 사회복지의 확대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진보정부에서 상대적으로 복지정책의 확대가 더 빨리 진행되었고 보수정부에서는 느린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독특하다. 공공복지 확대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낭비되는 건강보험', '시럽급여(2023년 실업급여 관련 당정 공청회에서 나온 발언)', '현금복지 최소화', '복지의 산업화(시장화)', '민간의 복지 참여 강화' 등 공공복지를 억제하는 구호와 용어를 노골적으로 전면화 시키고 있다. 딱 하나 강조되는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약자복지')이다. 기존의 보수정부와 비교해 보아도 가장 우파적 색깔이 짙은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1990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비는 GDP의 2.6%로 OECD 평균 17%와 비교하기도 힘들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복지비는 매년 거의 1%p씩 증가하여 2022년 14.9%까지 올라갔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은 명실 공히 복지국가로 진입한 것이다.

복지국가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점이 중요하다. 첫째는 국가의 자원 동원 능력이다. 조세부담과 사회보험료 부담을 합친 GDP 대비 국민 부담률이 2017년 25.4%에서 2022년 32%로 높아져 OECD 평균과 2%p 격차로 줄어들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인세 등 부분적 증세와 사회보험료 증가 등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세수 수입도 예상치를 초과했고 이를 기반으로 복지비가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등의 감세조치를 취했고, 수출 부진에서 오는 경기 악화로 수십조 원의 조세 수입의 급격한 감소가 나타났다. 즉, 복지국가 공고화를 위한 재정적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으며 상당 기간 복지정책의 정체나 후퇴라는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다.

흔들리는 공공의료기반... 흘러나오는 탄식

재정적 기반 외에 복지정책의 행정적 기반도 허물어지고 있다. 정권 초기 만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돌출적으로 제기되었고, 결국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혼란만 불러일으킨 채 끝났다. 연금개혁은 국회 연금특위 운영과 역사상 처음 시도된 공론화 등 2년여에 걸친 사회적 토론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한마디로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의대 정원은 왜 2천 명이 되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다. 주요 정책들이 입안되고 결정되는,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정책형성의 합리적 절차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복지국가의 재정적, 행정적 기반을 복원시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만큼 한국 사회의 발전이 지체될까 우려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기존의 보수정부에서조차 지속된 사회복지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시도가 주요 정책분야에서 거리낌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사회복지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공공복지 공급자의 비중은 너무 적은 반면, 영리 추구적 성격이 강한 민간 보건복지공급자가 다수를 차지하여 비용통제와 서비스품질 개선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를 가장 잘 대처한 국가로 평가받는 이면에는 공공의료기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코로나 환자의 70% 이상을 공공병원이 책임졌고 이 과정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문재인 정부에서 대규모의 공공의료 확충계획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공공의료의 축소에 나서고 있다. 일반 환자가 떠난 공공병원의 기능 회복을 위한 예산이 삭감되었다. 울산의료원, 광주의료원의 설립도 무산되었고 국립중앙의료원의 신축 예산도 대폭 축소되었다. 공공의료기관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탄식까지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보장성 강화 노력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역대 모든 정부에서 추진해 온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정책을 뒤집고 오히려 보장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문재인 정부는 모든 의료서비스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보장성 강화가 의료 남용을 부추긴다는 논리로 보장성을 축소하고 있다. 필수 의료를 강화한다는 방향은 의미가 있어 보이나 지역단위의 공공의료 강화, 대형병원의 과도한 팽창 억제 등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의 정비 없이 일부 진료과목의 수가 인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의대 정원 확대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정책 내용에서 상당한 논란이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의대 정원 확대는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를 도입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폐교된 서남의대의 정원을 받아 설립되는 공공의대는 일반의대생들이 기피하는 필수의료과목의 전문의를 우선적으로 양성하고자 함이었다. 지역의사는 해당 지역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별도의 의대 입학 자격을 주되 졸업 이후 해당 지역의 의료기관에서 10년간의 의무복무를 강제화한 것이다. 이는 의료 인력의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역의료가 공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안은 10년간 4천 명의 의대 정원 확대 중 3천 명을 지역의사제로 선발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지방 의료의 공동화를 막는 데 상당한 이바지를 하였다. 윤석열 정부 정책에는 지역의사제 개념이 없고 지방의대의 정원을 단순히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단순한 의대 정원 확대가 지역 간 의료자원의 불균형과 의료 격차 완화, 그리고 필수과목 의료인력 확충에 얼마나 이바지할지는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연금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언급된 핵심 정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고 연금 개혁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있는지조차도 의심받는 상황이다. 애초에 대통령 직속 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대선 공약은 파기되었고, 국회에 연금개혁특위를 만드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 종합 운영계획안을 발표하면서 아무런 개혁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국회의 연금개혁특위는 민간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개혁안을 마련하고 이를 500명 시민대표단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에 숙의하게 하여 2개의 연금 개혁 대안을 확정 지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2년이라는 시간과 자원을 투입했고, 구체적인 개혁 대안까지 마련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연금 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자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그동안의 노력이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뿐만 아니라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 이행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에 정권 초기부터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의 소득공제 한도를 대폭 확대하여 공적연금보다는 사적연금 활성화를 더 강력히 추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서비스원의 공적 기능 대폭 약화... 대체 왜
 

서울시민의 공공돌봄 '서사원' 지켜내자!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 저지와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 시민의 공공돌봄!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 이정민

 
돌봄, 요양 등 사회서비스에서도 공적 책임을 약화하고 민간복지 공급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서비스 고도화'로 명명한 이 정책은 '취약계층 위주 사회서비스를 중산층으로 확대하되, 본인의 재정 부담 하에 민간복지 공급자를 활용하라'는 메시지이다.

우리나라는 돌봄, 요양 등에서 민간 공급자의 비중이 너무 높아 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체로 다수의 학자가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서는 이런 방향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민간 공급자의 경쟁과 지원을 통해 민간 서비스를 더 확대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서비스에서 공공성 약화는 사회서비스원의 기능 축소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사회서비스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요양, 돌봄 등의 서비스 제공기관의 직영, 돌봄서비스 종사자의 직접 고용을 통해 사회서비스의 질 향상을 도모한 정책이다. 또한 향후 대규모로 늘어나게 되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서비스와 관련 지역 차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예산 삭감, 그리고 공공어린이집 등 공공복지기관의 직접운영 억제 등을 통해 사회서비스원의 공적 기능을 대폭 약화시키고 있다. 반면 사회서비스원의 '민간 협업 활성화', '민간 사회서비스 지원' 등을 강조하며 민간복지기관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시는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을 사실상 폐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켜 그나마 남아 있던 사회서비스 공공화의 기반을 무너트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약자복지' 생각한다면...

윤석열 정부에서 그나마 정책개선의 징후가 보이는 것은 '약자복지'라고 칭하는 공공부조 분야이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73개 복지제도의 수급자를 선정하고 급여 수준을 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을 6.09%로 인상한 것과 기초생활 보장법상의 생계급여 수준을 기준중위소득의 30%에서 32%로 인상한 것이다.

기준중위소득 인상 6.09%는 근 10년 이래 최대의 인상 폭임은 틀림없다. 통상적으로 기준중위소득은 최신 통계자료가 나온 해 직전 3년간의 인상률 수치를 사용한다. 따라서 코로나19 동안의 물가를 비롯한 국민 가구소득의 높은 인상률을 이제야 반영하게 되었고, 사용하던 소득 통계치를 가계동향조사 자료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꾼대서 오는 괴리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나온 수치일 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윤 정부의 노력의 결과로 보는 것은 과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생계급여 수준의 인상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개선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림1]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수의 변화(2000-2022) ⓒ 포럼사의재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정책의 획기적 진전을 가져왔음에도 부양의무자 기준, 낮은 재산 기준 등으로 빈곤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부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 혹은 대폭 완화하여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130만 명-160만 명 사이이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가 245만 명까지 증가했고 인구 비율도 4.7%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의료급여에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이 엄격하게 존재하고 생계급여에도 법률 규정이 남아 있다. 법률적으로 남아 있는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여전히 빈곤층은 가족의 재산·소득조사를 신청해야 하고 이 때문에 상당수의 빈곤층이 생계급여 신청을 포기하고 있다. 즉, 빈곤하지만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노인과 장애인을 중심으로 여전히 대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들이 진정한 사회적 약자일 수 있다.

또한 의료급여에 남아있는 부양의무자 기준 역시 빈곤층의 기본적인 의료욕구 충족을 가로막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약자복지'를 생각한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에서 좀 더 혁신적인 빈곤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핵심 과제는 복지국가의 구축이다. 한국의 복지국가는 여전히 공고화의 과제가 남아 있다. 복지를 늘려할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나 비용을 효율화시킬 부분도 존재한다. 비용 효율적 측면에서 한국 복지체계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의료, 사회서비스 등에서 민간 공급자의 과잉과 공공부문의 취약함이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역대 정부는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유독 윤석열 정부는 이 점에서 반대 방향을 가고 있다.

고령화가 진척될수록 막대한 의료, 요양비용이 우리 사회의 짐이 될 것이다. 공공 공급자의 비중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고령화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을 윤석열 정부는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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