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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풍기읍 버스터미널에서 희방사행 '털털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유리창 너머로 소백산의 끝자락 능선과 황금빛 논밭, 그리고 구불구불한 산행길의 옆구리가 드러납니다. 토요일 오후 시간이라 종아리를 허옇게 드러낸 여학생들이 버스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득 '저 학생들은 자신들의 고향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느끼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남의 비옥한 갯벌에서 유년을 보냈던 필자 역시 그 시절에는 아무 생각 없었던 것을 반추하면서.

계곡을 따라 오솔길로

단풍 사이로 아른거리는 희방사의 법당. ⓒ 김영주

희방사 입구 종점에서 내려 아스팔트 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10여 분 정면 매표소 입구에 다다릅니다. 국립공원 안내사무소를 지나면 오른편으로는 아스팔트길이 이어지고, 왼쪽에는 야영장 이정표가 있는 작은 오솔길이 나오는데, 당연히 이 길을 택해야 소백산 단풍을 만끽할 수 있겠지요.

ⓒ 김영주

희방계곡 단풍길은 공원 사무소에서 희방사까지 1km 정도 이어지는데, 야영장 입구에서 희방 계곡 앞 주차장까지 600m, 그리고 주차장에서 희방사까지 400m가 펼쳐집니다. 족히 4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가뿐한 산행길입니다. 단풍 산책이 아닌 등반 코스로는 희방사를 거쳐 소백산 천문대까지 올랐다가 하산하는 한나절 코스가 있습니다. 4시간 정도 걸립니다.

이리저리 계곡을 넘나드는 구름다리

콸콸 소리를 내는 희방 계곡을 따라가는 등산로는 울긋불긋 단풍이 한창입니다. 특히 희방사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만나는 각기 다른 모양의 구름다리가 기분을 배가시킵니다. 처음 만나는 구름다리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계곡을 넘고, 두번째 만나는 구름다리는 다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산행객들을 옮겨놓습니다.

계곡을 넘나드는 구름다리. ⓒ 김영주

처음부터 그런 즐거움을 미리 염두에 둔 듯 합니다. 오목한 구름 다리의 중앙에 서서 산정상을 바라보면 산봉우리부터 계곡 아래까지 그 색깔의 정도를 달리해 물든 단풍 계곡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푸른색 리트머스 종이를 한쪽 끝부터 빨간색으로 물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희방 계곡의 단풍. ⓒ 김영주

도중에 만나는 친절한 '생태계 안내판'도 다른 곳의 산행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입니다. 소백산 자락에서 자라는 신기한 곤충들과 생소한 이름의 풀들을 등산로 곳곳에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매발톱꽃, 벌개미취, 산쥐손이, 짚신나물, 동자꽃…. 비록 꽃은 지고 앙상한 뼈대만 남았지만 그 생소하고, 정겨운 이름만 들어도 즐겁습니다.

자연이 주는 절경, 희방 폭포

그렇게 희방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주차장이 나오고, 거기서 200여m 정도 더 오르면 희방 폭포가 보입니다.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그 웅장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소백산 연화봉 밑 기슭의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몇천 구비를 돌아 흐르다 이곳에 멈춰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웅장한 폭포를 이룹니다.

희방폭포. ⓒ 김영주

폭포로서는 보기 드물게 해발 850m 고지에 자리잡은 희방폭포는 28m 높이에서 거대한 암벽 사이를 가르며, 시원스럽게 쏟아집니다. 우거진 잡목 속에 자리잡은 폭포는 여름철 으뜸 피서지는 물론이거니와 단풍철인 요즘에도 주변 경치와 잘 어울려, 지나는 산행객들의 발길을 한참이나 잡아놓는 곳입니다.

손 끝에 잡힐 것 같은 폭포 줄기

희방폭포를 보는 즐거움은 그 조화로운 자연 속의 절경이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폭포 바로 옆 바위에 설치된 수직 계단을 타고 산행이 계속되는데, 폭포의 물방울이 등반로까지 튀길 만큼 가깝습니다. 계단의 중간쯤에 올라 폭포를 내려다보면, 먼발치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이런 장엄한 폭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여름철 수마처럼 거대하게 고꾸라지는 물줄기는 웅덩이에 닿으면서 세찬 물보라를 일으킵니다. 마치 핵폭탄이 터지면서 우산 모양의 핵구름을 펴듯이 연신 물웅덩이에 동그란 물살을 만들어내고, 쏟아지는 물줄기가 다시 밀어내 새 물살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절경을 지켜보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즐겁습니다. 줄을 지어 오르는 북한산이나 관악산 산행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기쁨입니다.

울긋불긋 단풍에 가린 산사

희방사에서. ⓒ 김영주

희방폭포 바로 옆의 깎아지른 돌벼랑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으슥한 골짜기에 소백산 희방사가 홀연히 나타납니다. 새빨간 색으로 치장한 단풍잎 사이사이로 희방사 초입의 법당이 보입니다. 청녹색의 짙은 단청을 뽑내는 새 법당이 단풍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눈에 들어옵니다. 희방사는 6.25전란으로 법당이 불타고 새로 중건한 사찰이라 건물의 규모는 작으나 창건한 지는 1500년이 넘는 신라의 고찰입니다.

두운대사가 신라계림부 호장의 딸을 호환으로부터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창건되었기 때문에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 해서 기쁠 희(喜)자를 앞에 쓰고 두운대사의 참선방을 상징해서 모 방(方)자를 함께 붙여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원래는 훈민정음의 원판과 월인석보 등 귀중한 문화 유산을 소장하고 있었지만, 전란으로 소실됐다고 합니다.

희방사의 극락교를 건너면 소백산 천문대, 비로봉으로 향하는 산행길이 이어지는데, 날이 저물어 희방사에서 산행을 마무리짓고 내려왔습니다. 소백산 능선은 겨울 산행으로도 유명한데요, 올 겨울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덧붙이는 글 | 줌시티에서 여행 컨텐츠를 맡고 있습니다. 희방사 단풍 산행! 정말로 좋은 곳이었습니다. http://www.zoomcity.com 에 가시면 자세한 희방사 단풍 여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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