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감자밭에 둘러쌓인 외딴집 ⓒ 김남희


2001년 7월 3일 화요일 비온 후 갬

새벽 2시부터 깼다.
적멸보궁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시는 아주머님들이 깨는 바람에 덩달아 깨고나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방바닥은 뜨겁지, 파리는 귓전에서 앵앵거리지, 빈대가 온 몸을 물어대지...

결국 4시 반에 일어나 씻고, 5시에 아침식사.
내 인생에서 가장 이른 아침식사가 아닐까.
사탕과 토마토를 챙겨주시는 할머니께 옥희가 사온 과자와 빵을 나누어 드리고 5시 50분 출발.

관대거리에서 옥희와 헤어져 다시 혼자 걷는다.
비가 온다.
제법 세찬 바람도 불어오고.
받쳐든 우산이 자꾸 뒤집혀진다.

북대사까지는 긴 오르막길이다.
눈 앞을 가리며 몰려왔다 사라져가는 안개.
나무를 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꼭 차소리 같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길에 사람은 없다.
여전히 비포장 흙길.
길위엔 부지런한 까투리며 다람쥐들이 왔다갔다 한다.
요것들이 사람이 지나가는데 서둘러 피하지도 않는다.

구룔령 오르는 길의 절경. ⓒ 김남희


7시 반. 해발 1310m 표지판이 보인다. 고갯길의 정상에 서 있다.
여기서 홍천군 내면까지는 13km.

10시 반. 드디어 홍천군 내면이다. 명개리까지는 여기서 3km, 잠시 쉰다.
곳곳에 열목어 서식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명개리는 깊은 산과 계곡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내려와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명개삼거리에 도착하니 양양 43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구룡령을 넘는 긴 길이다.
이 길을 넘는다고 했더니 여러 사람들이 "어휴, 그 길 굉장히 지루할텐데..."하시며 미리 겁을 주셨는데 어디 얼마나 지루한지 보자.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햇볕마저 뜨겁게 내리쪼이고...
우리 나라 산이 이렇게 깊은지 오늘에야 알았다.
그 깊은 오대산길을 20km나 빠져나왔는데 또 산길이라니...

새벽 5시에 아침 먹고 아직 아무 것도 못 먹은 상태라, 몹시 허기가 진다. 하필 오늘따라 가방엔 아무 것도 먹을 게 없다.

물만 들이키며 고갯길을 오르는데 트럭 한 대가 갓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저씨, 저 기다리시는 거라면 그냥 가세요. 저 걸어서 여행하는 중이거든요." 헉헉거리며 소리를 지르는데, 한 분이 내리신다.

"걸어서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거예요?"
"네."
"힘들텐데... 어디서부터 왔어요?"
"땅끝마을요."
대답하는 것도 귀찮고 힘이 든다.

"대단하네. 점심은 했어요?"
"아니요, 아직."
"저런. 정상 휴게소까지는 아직 좀 더 가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여기 갈천휴게소 지나서 2km만 더 오면 우리 양어장인데, 우리 집 와서 점심 먹고 갈래요? 찬은 없지만..."

갑자기 솟는 힘.
"그래도 되요?"
"그럼요. 내가 약도를 그려줄 테니까 내려오면 꼭 와서 밥 먹고 가요."

"꼭 들렀다 가요!" 다시 외치는 아저씨게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다시 걷는다.
1시 20분. 해발 1060m. 정상이다.
도저히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휴게소에서 자장면을 시킨다.
최악의 자장면이지만 지금 난 돌이라도 소화시킬 수 있는 상태이므로 잔말없이 먹는다.

구룡령의 기막힌 절경. 한폭의 산수화다. ⓒ 김남희
점심 먹고 구룡령 내려오는데 왼편을 보니 아, 이건 정말로 그림이다.
이 기막힌 풍경을 어떻게 내 천박한 글이나 사진 따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산과 산들이 구름 사이로 살짝 비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그 산들 사이로 나지막히 들어앉은 사람의 마을이 보이고, 산봉우리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비구름이 간혹 걸려 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나 혼자 받고 있다는 게 속상하기까지 하다.

눈을 떼지 못하고 걸어 내려오는데, 차 한 대가 내 앞에 와서 서더니 여자분이 내린다.
"남희씨 맞죠?" 라며 활짝 웃으며.

힘들어하며 걷고 있던 나를 안타까워 하던 선배가 "응원군 보내줄까?" 하길래 "네!" 했더니, 선배의 연락을 받고 오색에서 달려온 성숙언니다.
차를 갈천분교에 세워놓고 같이 걸으려고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올라오셨단다.

선배에게 잠시 듣기로는 "실컷 놀게 해주고 싶어서" 서울에서 양양의 오색초등학교로 아이 둘을 전학시킨 분이다.
처음 만나는데도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신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가 언니 발을 보니 고무신을 신고 있다.
"발 안 아프세요?"
"아, 이거... 서둘러 오다보니까 갈아신고 온다는 걸 잊었네. 괜찮아요. 이거 신고 산에 나물 뜯으러도 다니는데요, 뭐."

구룡령에서 내려다본 명개리 마을 전경.ⓒ 김남희


같이 걸어 내려와 양어장을 찾아간다.
반가워하는 아저씨들.
밥을 먹고 왔다니까, 냉커피를 내오고 언니는 사들고 온 떡을 꺼내놓는다.
이분들은 서울분인데 10년 전에 이곳으로 내려와 양어장을 하다가 지금은 각종 약재나 허브를 서울에 납품하기도 하고, 연어훈제업도 하고 계시단다.
서울사람이 시골 내려와 사는 일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가, 책 몇 권을 빌려 헤어진다.

언니의 두 아들인 4학년 남호와 6학년 단희를 만나 오색약수 근처에서 저녁 먹고, 언니가 살고 있는 학교 관사로 돌아온다.
이 집은 언니가 이곳으로 내려온 후 살만한 마땅한 곳이 없자 교육청에 찾아가 비어 있는 관사를 내달라고 담판을 지어 얻어낸 곳이다.
1년 세가 단돈 10만원.

작은 방 두개에 부엌 하나.
가구라고는 원래부터 있었다는 낡은 철제책상과 장롱 하나가 전부다.
남의 집에 가면 책꽂이에 꽂힌 책부터 살피는 버릇이 있는 나.
슬쩍 훑어보니 녹색평론과 소로우의 "월든",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같은 책들이 보여 반갑다.
집 안에 TV도 없고, 컴퓨터도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은 학교에 딸린 "푸세식" 화장실을 쓴다고 한다.

열심히 집구경을 하는 내게 언니가 말을 건다.
"우리 개울가에 가서 목욕할래? 안그러면 관사 보일러실에서 씻어야 하는데 퀴퀴하고 어두침침하고 그렇거든."
언니의 유혹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간다.
이거야말로 내가 꿈꾸던 일이 아닌가.

우리 얘기를 들은 단희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엄마. 박달상회 아저씨가 오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니가 못 오게 막아야지."
"뭐라고 하지? 엄마 그럼 우리 1000원만 줘요. 과자 사면서 시간 끌테니까..."
아이들 답다.

"우리 엄마 목욕해요 그러면 카메라 들고 쫓아올 테고, 뱀 나와서 지키고 있는 건데요 그러면 뱀 잡겠다고 달려올텐데 뭐라고 하지..."
불안해하는 단희와 남호를 끌고 계곡으로 내려가 망을 보게 하고, 언니와 나는 다 벗고 계곡으로 들어간다.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계곡물의 차가움.
박달상회의 개는 미친 듯 짖어대고.
구름 사이로 살찐 달이 슬쩍 훔쳐보며 지나간다.

물 속에 들어가 바위에 엎드려 있기도 하고, "앗, 차가워"를 연발하며 서로 물을 끼얹어 주기도 하며, 신이 나 있는데 갑자기 울리는 언니의 휴대전화.
단희가 받더니 하는 말.
"우리 엄마 지금 친구 와서 개울가에서 노래하고 있어요."
배를 잡고 웃는 우리.
차마 목욕하고 있다는 말을 못하는 단희가 너무 귀엽다.
옆에서 남호가 거든다.
"두 선녀들이 목욕한다네... 엄마! 옷 숨길까요?"

삼척 무릉계곡 밑에 살았던 어린 시절.
달 밝은 여름밤이면 동네 아줌마들과 엄마를 따라 개울가로 씻으러 가고는 했던 기억이 내게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반딧불이 날아다니고, 깔깔대는 아줌마들의 웃음소리에 내 마음은 덩달아 달뜨곤 했었는데...

오늘 그 어린 시절의 목욕을 되살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