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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정리:김종철 기자
사진:이종호 기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부 스스로가 재벌에 굴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경제 체질이 바뀌지 않았는데 서둘러 재벌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정부와 재벌간 뭔가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관료적 경제팀으론 더이상 안된다. 새로운 개혁 주체가 나서 남은 기간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비판적 경제학자 정운찬 서울대교수(경제학부)가 또 다시 정부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정 교수는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30대 대기업집단지정제도 폐지와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 등으로 재벌 정책의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 의지가 흔들릴 경우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이어 "기존 상위 재벌들의 경우 기업 활동의 규제가 너무 많다면서도 오히려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확장해 왔다"며 "부실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구조조정 의지가 퇴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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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재벌이나 금융기관 등에 발목이 잡혀있는 관료적인 경제팀으로는 더이상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개혁 추진 세력을 적극 등용해 마지막 남은 1년여 동안 경제 개혁을 마무리 해야한다"며 현 경제팀의 교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는 또 정부가 추진하는 은행간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과 관련 "은행 합병이라는 것이 우량은행간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올리는 것이 기본적이고 가장 일반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이미 부실 규모가 커져 공적자금이 투입된 여러 은행들을 모아 지주회사를 만들어 합병을 추진한다는 것은 `거대한 부실은행'을 정부가 나서서 만드는 꼴이다"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지난 98년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이후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와 `한국경제 아직도 멀었다'라는 책을 통해 재벌 정책을 포함 한국 경제 전반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인터뷰 요지이다.
 
  "정부, 재벌에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
 
-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는 그동안 재벌 정책의 핵심이었던 30대 대기업집단지정제도 폐지와 출자총액제한 제도 등의 완화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부가 재벌에 굴복한 것이라고 본다. 정부는 5조원이라는 기준을 정했다고 하지만 그같은 기준은 큰 문제가 안된다. 왜냐하면 시스템(재벌 정책) 관리자로서 정부가 재벌의 행태를 감시하고 조절하는데는 매출 규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 재벌 정책을 추진했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과거 재벌의 행태가 크게 변하지도 않았는데 이제 규제의 룰(재벌 정책)을 바꾸겠다는 것 자체가 재벌에 항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정부 스스로가 재벌에 대한 감시 기능을 축소하거나 게을리 하겠다는 얘기다."
 
- 30대 대기업에 속한 재벌들과 경제단체 등은 이같은 규제가 기업의 투자 감소와 기업 활동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30대 대기업집단지정제도 등을 통해 기존 4대 재벌들은 (재벌 정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동안 금융이나 정보통신 등에서 끝없이 팽창해 왔다."
 
- 그렇다면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인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부실기업이나 금융기관 퇴출 등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얼마나 제대로 지켜졌는가. 물론 일부 기업이나 은행권의 종금사 등이 퇴출되기는 했지만 정말 제대로 망했다는 기업이 있는가. 일부 망한 그룹을 얘기 하지만, 그룹은 사실상 없어졌지만 그룹을 이뤘던 전자, 건설, 자동차 등 각 개별기업들은 거의 모두 다 살아있다.

따라서 정부는 출범 때 말했던 부실 기업이나 금융 기관의 과감한 정리를 통한 구조조정 추진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당연히 큰 효과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한 금융구조조정, 부실 덩어리만 늘리는 꼴"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기업과 함께 정부는 은행간 합병을 통한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금융 구조조정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부실하게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 합병이라는 것이 우량은행간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올리는 것이 기본적이고 가장 일반적인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정부는 어떤가. 이미 부실 규모가 커져 공적자금이 투입된 여러 은행들을 모아 지주회사를 만들어 합병을 추진한다는 것은 `거대한 부실은행'을 정부가 나서서 만드는 꼴이다."
 
-국민과 주택은행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우량한 은행들 아닌가.
"국민, 주택은행이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된 은행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불량하다는 것이지 (이들 은행들을) 우량은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들과 같이 `덜 불량한' 은행들을 합쳐 놓으면 `거대한 덜 불량' 은행 만을 다시 하나 만들어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합병을 통해서 `거대한 덜 불량한' 은행이 우량해질 것이라는 말하는 것 자체가 매우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다."
 
  "정부와 재벌, 뭔가 있는가"
 
- 최근 정부는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은행의 소유지분 상한을 4%에서 10%로 올리겠다고 했다.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상당수 은행들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국유화된 은행을 다시 민영화가 아니라 소유를 바꾸는 민유화를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려고 하고 있다. 결국 이대로 추진되면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개인보다는 재벌들을 포함한 산업자본의 금융 진출을 본격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인데, 산업자본이 은행과 같은 금융 자본으로 진출한 예가 없다.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 어떤 부작용인가.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재벌 밖에 없다. 은행 경영에 참여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 예를 들어 대출 등에 대해 유리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거에 종금사를 비롯 제 2금융권의 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재벌 소유였고 이들이 후에 어떻게 부실화됐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정부는 이같은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의결권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의 소유는 인정하되 의결권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가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어 올바른 경영을 이루겠다는 말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은행의 문제는 소유부분보다 경영의 문제다. 정부 소유면 어떤가 투명하고 올바른 경영만이라도 제대로 추진되면 괜찮다고 본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그것(은행의 소유지분 한도)을 바꾸려고 하는 지 이해가 안된다.

은행 소유를 완화해놓고 재벌들의 사금고로 은행들이 변하고 다시 기업과 금융이 나중에 동반 부실되면 그땐 또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 정부 경제 관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정부와 재벌간 뭔가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관료적 경제팀 바꿔야, 김종인 전 청와대수석 일 잘하실 것"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전에 관료적인 경제팀의 개편을 주장하셨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현 한국 경제의 과감하고 올바른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현실 감각과 재벌이나 금융기관에 발목이 잡히지 않은 개혁적인 인사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년 대선까지는 1년여 시간이 남아있다. 새로운 경제팀이 나서 마무리를 해야한다는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도 언급을 했지만 정권과 경제는 다르다고 하지 않은가. 정권은 끝나도 경제는 계속돼야 하니까 올바른 길로 나가야 한다. 현실 감각도 있고, 비전도 있고 재벌이나 금융기관에 발목을 잡히지 않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팀이 들어가서 다음 정권이 나오기까지 개혁적인 경제 정책의 마무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 지난해 경제팀 개각때에도 입각설이 있었고 당시 교수께서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추천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오면 추천 할건가.
"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 전수석이 받아들일지에 대해선 답하기 어렵다. 이미 식사 끝난 밥상에 나중에 남아 설거지나 하라는 식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김 전수석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 전 수석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 같다.
"매일 한국경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시키면 일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분이 들어가면 많이 바꾸어 놓을 것이다. 많이 바꿔어 놓을 것 같으니까 자꾸 재벌들이 그분의 입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 매년 정권으로부터 경제 담당 입각을 제의받았던 것으로 아는 데 앞으로 국민에게 봉사할 생각은 없는가.
"현실 참여를 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얘기인데 신문 등 언론을 통해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현실에 참여하는 것으로 본다. 또 (나는) 학교에서 27년동안 있어 왔기 때문에 학교를 떠나 정부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 더 죽어야 산다

- 부실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과감한 퇴출 등을 통한 구조조정 추진을 역설해왔는데,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 등 약자들만이 피해를 본다는 목소리도 높다.
"물론 맞는 얘기다.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실업 증가 등의 문제가 나오고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부가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했다. 또 실직 노동자들의 생활대책 등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공적자금 대부분이 부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살리는데 사용 됐다.

따라서 (정부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 추진도 하지도 못했고 노동자 등 약자인 경제 주체로부터 반발만 사게 된 셈이다."
 
- 현재의 침체된 한국 경제가 언제쯤 풀릴 것으로 보나.
"대외적으로 미국 테러 이전부터 경기 침체 현상이 시작됐고 테러이후에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대내적으로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경제의 체질 개선이 안됐다고 볼 수 있다. 경제 체질 개선이 안됐다는 것은 지속적 성장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내외적인 여건 모두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는 모른지만 상당 기간 과거에 누렸던 호황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 등 경제가 정치에 휘말릴 가능성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물론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분리돼 가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경제가 정치에 휘말려서는 미래가 밝지 않다. 따라서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개혁적인 추진 세력이 나서서 올바른 경제 정책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와 과감한 구조조정 추진이 계속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 위기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부의 재벌 완화 등의 움직임 등은 정부의 개혁 정책의 퇴보를 의미할 수 있다. 단순히 경기 부양을 위한 투자 촉진을 이끌기 위해 규제를 푼다는 것은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제는 더 죽어야 산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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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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