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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버티기와 협박에 밀려 정부가 굴복했다."(참여연대 논평)
"재경부가 정부 부처인지 전경련의 하부기구인지 모르겠다."(금융연구원 이동걸 연구위원)

재벌개혁 후퇴를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15일 30대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하고 출자총액제한 예외규정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대기업 집단정책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측은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나섰지만 시민단체와 학계, 진보정당 등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IMF 위기 이후 재현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99년 다시 도입된 대기업집단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용도 폐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 금융보험 계열사의 의결권 제한마저 풀리고 나면 재벌 총수 중심의 기업지배구조가 더욱 확대돼 제2의 금융 위기를 막을 최소한의 견제장치마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동걸 연구위원은 "잠재적인 폐해를 분석해보지도 않고 출자총액제한을 풀었다는 것은 정부가 재벌개혁 포기를 선언한 거나 다름없다"면서 "제2의 금융위기가 다시 와야 정부가 제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재벌개혁 사실상 포기"

공정위는 그 동안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제한하기 위해 자산규모 순으로 30대 기업집단을 지정, 출자총액제한(2002년 4월 시행 예정),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재벌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재벌규제책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왔다.

이번 개선안은 우선 일률적인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없애는 대신 출자총액제한 대상은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으로,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대상은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으로 각각 분리해 적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은 17개(공기업 7개 제외)로 줄어드는 대신 상호출자 금지 대상은 38개(공기업 9개 제외)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내년 4월 시행을 앞두고 유명무실해진 출자총액제한제도다. 이는 대기업들의 타 회사 주식 취득(출자)을 순자산 2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로, 98년 폐지됐다가 대기업 계열사간 출자가 다시 증가하는 폐해가 발생하자 99년 12월 재도입이 결정됐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최근 경기후퇴를 빌미로 이 제도가 기업의 활발한 투자를 저해한다며 완화 내지 전면 폐지를 요구해왔다. 이에 정부는 순자산 25% 초과 출자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만 제한하고 기업의 핵심역량 관련 기업이나 공기업 등의 주식 취득은 아예 출자총액에서 제외하는 등 예외규정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개선안으로 화답한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출자총액 초과분에 대해 과징금 부과 등 페널티를 없애 제도의 실효성이 사라졌고 예외규정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한성대 경상학부 교수) 소장은 '핵심역량'과 관련한 출자를 자유롭게 허용한 것에 대해 "핵심역량은 회사가 임의로 선언만 하면 그만인데다 타계열사 지분 매각과 같은 자금 출처도 명문화되지 않아 부채를 동원한 주식 취득까지 인정하게 되는 셈이어서 출자총액제한의 근본 취지에서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25%라는 기준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초과분을 일정기간 안에 해소하겠다는 기업측의 계획이 규정돼 있어야 하며 예외조항의 투명한 적용을 위해 공정위에서 예외인정 자료를 공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허용이 더 큰 문제"

하지만 정작 시민단체나 학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대기업 계열 금융보험회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허용이다.

이번 개선안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지난 8월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 금융보험사의 의결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경부 역시 재벌계열 투신사와 뮤추얼펀드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 허용을 포함하는 증권투자신탁업법 등을 입법예고해 현재 국회 통과 절차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금융연구원 이동걸 연구위원은 대우 계열사였던 대우증권과 서울투신이 대우그룹을 돕기 위해 계열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다 결국 부실화된 사례를 들며 "출자총액제한 완화보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완화 조치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금융 계열사가 고객의 저축을 대주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사용하는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금융기관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계열사의 자금이 무한정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는 기업의 부실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재벌개혁 위한 새로운 대안 필요"

김상조 교수는 "현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유지해야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재벌개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결국 기업 성과의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들이 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사전적 감시체계로서 독립적인 사외이사 강화와 사후적 피해구제책으로서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이선근 위원장은 15일 논평을 통해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규제 완화가 아니라 기업의 부실한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소유지배구조를 중심으로 하는 철저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면서 대안으로 노동자 소유·경영 참가 활성화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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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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