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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카타르 도하에서 돌아온 현 중국 외경무부(外經貿部) 부(副)부장이자 중국의 WTO가입 협상 수석대표였던 롱용투(龍永圖)가 CCTV의 유명 토크쇼에 나와, 과연 달변가답게 입에 침을 튀기며 얘기를 한다. 11월10일, 중국의 WTO 가입을 위한 15년간의 '대장정'이 완료되면서 롱 부장도 덩달아 '스타덤'에 올라 있는 중이다.

"스위스를 방문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공원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공원의 공중화장실을 찾게 되었지요. 그런데 계속 이상한 소리가 들려 뭔 일인가 하고 봤더니 한 꼬마가 울상을 하고서는 변기의 물내리는 손잡이를 잡고 계속 낑낑대고 있지 뭐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꼬마왈 '볼일을 다보고 물을 내리려고 하는데 물이 안 내려가요. 손잡이가 고장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요'라고 하더군요.

아! 그 순간 내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그 스위스 꼬마애는 그렇게 어릴 적부터 이미 공중도덕의 기본이 몸에 배어 있는데... 중국의 공중화장실을 한번 보세요. 물내리는 건 고사하고 볼일 보면 그냥 자기 엉덩이만 들고 나오잖아요. 우리도 이제 최소한 그런 기본적인 공중덕이나 예절은 지킬 줄 아는 교양을 갖추어야 할텐데..."

롱 부장의 얘기가 끝나자, 역시 달변가인 토크쇼의 사회자와 주변 방청객들의 얼굴 위로 순간 어정쩡한 쓴웃음과 함께 난감한 표정이 스쳐간다.

중국, 고개드는 '도덕론'

굳이 롱 부장이 소개한 일화가 아니더라도, 최근 중국에는 '도덕'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TV나 신문 등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 중의 하나는 'WTO'와 더불어 바로 이 도덕이라는 단어이다. 조금 과장해서, 마치 예전에는 중국에 도덕이 없었기라도 한 듯이 부쩍 도덕에 관련된 문제들이 연일 언론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당대 중국의 도덕성 위기 문제를 걱정하는 책들도 줄줄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얼마전부터 CCTV의 황금시간대에 소위 '사상도덕 공익광고'라는 것이 다양한 아이템으로 제작, 방송까지 되고 있고, 공공도덕을 상실한 중국인을 소재로 한 기사들이 각 신문의 탑을 장식하면서 "중국인이여, 이제는 우리도 문명시민이 되자"고 호소하고 있다.

제발 길거리에 함부로 침뱉지 말고, 신호등 무시하며 무단 횡보하지 말고, 상호간에 예의를 지키며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를 말할 수 있는 중국인이 되자는 것이다. 결론은 한마디로 전체 중국인의 '도덕성 회복'이다. 도대체 왜 갑자기 중국정부와 언론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가며 '도덕중국'을 외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른바 '공민도덕건설실시 강요'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발표문의 요지는, 이제 중국은 세계적으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고 2008년 올림픽 유치 및 WTO 가입 등으로 그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공민도덕의 건설이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인이 '세계시민'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 국가 등 각 부문에서 도덕을 기초로 한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이 '강요문'의 발표와 비슷한 시점에 중국공산당 제 15기 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당 작풍건설에 관한 결정'이라는 역시 중요한 '결의문'을 대내외에 발표했다. 이 '결정'은 당내 간부들을 대상으로 '도덕작풍의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도덕중국'의 건설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결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현재 중국공산당의 전통적인 군중노선의 관철에 삼각한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 당내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라고 지적한다. 즉 이러한 요인들이 간부의 부패를 낳고 당과 인민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에 향후 중국 공산당은 간부들의 도덕작풍의 쇄신과 새로운 군중노선의 건설로 당의 작풍을 혁신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도덕기풍'의 강조는 비단 내년초 열릴 예정인 제 16차 당대회와 새로운 제 4세대 지도자의 부상을 앞둔 사전 분위기 쇄신작업이라는 측면외에도, 78년 개혁개방 정책의 실시 이후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당과 인민 사이의 '틈'을 좁히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은연중에 의미 없는 형용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사회주의적' 중국의 이미지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과거를 알고 싶으세요?' 일부 중국인들은 과거의 '도덕'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진은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 있는 옛날 베이징 사진 관람소.
ⓒ 박현숙
이와 더불어, 90년대 이후 중국인민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 세태와 시장경제의 가속화 이후 중국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도덕적 무기력 현상, 그리고 이로 인해 야기되고 있는 인민들의 '정신적 공백'을 비집고 부패해 들어가는 사회공공질서의 악화에 따른 중국정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정책적, 실천적 '호소'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이러한 중요한 작풍쇄신 결의가 있기 전부터 이미 중국에서는 '도덕의 위기'를 경고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었고 이것은 소위 당대 '중국문제'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각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도덕위기론, 중국지식인 사회도 겨냥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서 쏟아지고 있는 주요한 인문-사회과학류 책들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문제'에 관련된 것들이다. '중국문제'라고 지칭되는 것들은 중국사회가 개혁개방이후 직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각 방면의 '문제'들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이 특히 90년대 이후 차츰 사회전면에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문제'라고 불리는 것들은 다른 의미로는 개혁개방의 부작용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 '문제'시리즈들 중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바로 위에서 서술한 '도덕성 위기론'이다. 도덕성 위기론의 골자는 공민도덕의 상실이나 당 간부와 관료들의 부패행위의 증가에 따른 도덕적 무기력 현상이 중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 대상이 중국 지식인 사회의 '도덕성'에도 맞춰져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국 지식인 사회에 겨냥된 도덕성 부패는 크게 학술계의 '지적부패' 또는 '지적사기'를 비판하는 한 축과, 최근 몇 년 사이 중국문단에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痞子文學'이 국민정신에 미치는 해악을 비판하는 한축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전자의 문제는, 90년대 이후 중국 학술계에 퍼지고 있는 논문베끼기 행위라든지 교수들의 연구능력의 저하 및 대학원생들의 수준하락 등에 대해 중국 학술계의 지적위기뿐만 아니라 지적인 도덕성에도 위기가 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중국문단 및 문화계의 도덕성을 질타하고 있는 후자의 문제는 비교적 논쟁의 여지가 별로 없는 전자에 비해 가히 '피튀기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중국 주류지식인 사회의 '악당' 왕슈어의 등장

1990년대 이후 중국문단에는 왕슈어(王塑)라는 '악당'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는 물론 80년대 이후부터 소설 등을 써온 기성작가이기는 했지만 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9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한국독자들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영화인 지앙원(姜文) 감독의 '햇빛 찬란한 날들'의 원작자가 바로 이 왕슈어이다.

이 영화에서도 나타나듯이 왕슈어는 기존의 권위나 제도, 질서 등을 혐오하는 이른바 '반문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특히 중국 지식인들 및 지식인사회를 지독히도 혐오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문단의 주류작가들과 주류지식인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 왕슈어가 오늘날 중국문단의 도덕성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주범이다. 더불어 그의 문학은 중국인민들의 정신에도 심각한 도덕적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중국의 주류지식인들이 그를 비판할 때 즐겨쓰는 말들이다. 왕슈어라는 작가가 왜 중국의 주류문단과 지식인들의 '적'이 되어 있을까?

왜냐하면 그가 중국 지식인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 독설은 곧바로 직격탄이 되어 중국 문단 및 주류지식인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가 일으킨 사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건은 이른바 당대 중국의 핵심적인 작가 및 지식인들을 '모욕'한 사건이다. 루쉰(魯迅)을 비롯해서 무협소설의 달인 진용(金龍), 라오셔(老舍), 위치우위(余秋雨)등 당대를 주름잡는 위대한 작가들이 그의 '손' 아래서 놀아났다. 왕슈어는 "도대체 그들이 잘난 게 뭐가 있는데 그들을 신격화하느냐"고 비아냥거린다. 대충 읽어봤더니 별 거 없더라고 깐죽거리기까지 했다.

▲중국인민들의 삶의 질은 날로 풍부해지고 있지만, 도덕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 박현숙
게다가 그가 쓴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혼외정사를 즐기고 범죄활동에 연루되어 있다. 입속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은 베이징의 후통(골목)에서 쓰는 점잖치 못한 '뒷골목 언어'들이 대부분이다. 소위 사회주의적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는 도덕적인 인물들은 그의 소설에서는 찾아볼수가 없다.

그의 소설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부터 중국문단에는 '痞子文學'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 '痞子'라는 단어는 원래 '악당이나 건달, 불한당'의 뜻을 담고 있는데 왕슈어의 작품들이 바로 이러한 막되먹은 인간군상들을 통해 주류사회를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반혁명만 외치지 않았지 그는 사회주의 중국의 신성한 '체면'(面子)를 여지없이 구겨놓았디.

이 '악당'의 출현 이후 중국지식인 사회는 그야말로 분기탱천하여 그가 주류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결사저지하려고 했지만 그의 소설과 소설을 개작한 영화들이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대중들사이에 그를 추종하는 '왕슈어 팬'들까지 생겨나자 그제서야 중국 지식인 사회도 뭔가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사회의 가장 가증스러운 점은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위선"

중국의 주류지식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왕슈어의 진입을 방어하는 동안 그는 다시 한번 태연자약하게 "내가 건달인데 누구를 두려워하겠느냐", "절대 나를 인간으로 보지마라"라는 냉소를 던져 또 한번 주류지식인들의 심장을 벌떡이게 만들었다. 여기에다 "중국사회의 가장 가증스러운 점은 위선이며, 그러한 위선을 기른 뿌리의 근원은 바로 지식분자들에게 있다"라는 발언까지 해 그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90년대 이후 이러한 '왕슈어 현상'을 놓고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다각적인 분석과 비판들을 쏟아놓고 있다. 어떤 이는 그를 일컬어 문화혁명당시 홍위병의 망령이 되살아 왔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왕슈어의 등장 이후 나타나고 있는 지식분자의 痞子化가 국민정신의 痞子化를 가져오고 있는 근원이라고도 말한다. 즉 "왕슈어, 너야말로 오늘날 중국에 도덕적, 정신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양아치"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러한 주류지식인들의 도덕비판에 대해 중국문단에서 존경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왕멍(王蒙)은 "누가 감히 왕슈어에게 돌을 던질수 있느냐"며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던졌다. 중국 지식인사회에 왕멍이 던진 문제제기는 원래 왕슈어의 '반항'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식과 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왕슈어를 비판하는 중국 주류지식인들에게 왕멍은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먼저, 생활이 신성(神聖)을 모독했는데 예를 들면 지앙칭(江靑)과 린비야오(林彪)같은 인물들이 얼마나 졸렬하고 구역질나는 연극을 통해 얼마나 그럴 듯하게 신성한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우리의 정치운동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무슨 주의니 충성이니 당적이니 생명을 다바쳐서라는둥 온갖 신성한 호칭들을 남발해가며 우리를 가지고 놀았는가. ....그들이야말로 먼저 잔인하게 '농'을 부리기 시작한 자들이다! 그 다음에 왕슈어가 나타난 것이다"

중국, 과연 '도덕의 위기'인가

공민도덕건설의 주장이나 당작풍 건설, 그리고 왕슈어 논쟁등의 공통점은 '도덕이 서야 나라가 산다'는 요지이다. 과연 중국은 '도덕의 위기'를 말할 만큼 사회가 부패해 가고 있는가?

한번 삐딱하게 뒤집어서 보자면, 현재 중국의 관-언이 말하고 있는 도덕의 위기는 비단 일반서민들의 함부로 침뱉는 행위와 같은 공공도덕의 상실과 물욕주의의 만연 그리고 관료사회를 좀먹는 부패의 증가와 같은 표면적인 위기위식의 발로만은 아닌 듯하다. 문제의 핵심이 중국공산당의 지속적인 존립여부와 사회주의적 도덕정신의 단절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장쩌민 주석의 '7.1'(공산당 건립 80주년) 연설내용이나 소위 '삼개대표론'으로 불리는 내용들의 핵심도 가만히 뜯어보면 '도덕정신'의 강화인데 이것은 다시 말해, 이제 자본가도 합법적으로 공산당원이 될 수 있는 21세기에 중국공산당이 더 이상 무엇으로 인민들의 지지와 계속적인 신임을 얻을수 있을까라는 자문에 대한 '답'이다. 그것이 바로 '덕치와 공민도덕, 당의 도덕작풍' 건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78년 제 11기 3중전회 이후로 폐기된 '계급투쟁 중심론'이나 계급투쟁이 모든 도덕을 대표하던 시대가 막을 내린 후, 오로지 경제발전이라는 하나의 중심에만 매달린 채 20년 이상을 달려오다보니 눈 앞에는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고 인민들의 손에는 어느덧 핸드폰이 하나씩 들려 있다. 그러나 정작 뒤에서는 '호박씨 까는' 관료와 간부들이 득실대고 인민들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상실한 채 어디서 굴러먹다 날아들어온 날파리같은 왕슈어에 열광하고 있으니 당중앙이 고뇌하지 않을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의 모교수는 현 중국사회를 이렇게 비유한다. '양고기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고 있는'(掛羊頭賣狗肉)사회라고. 그러나 양고기 머리에 아무리 냄새좋은 향료를 바른다고 한들 개고기 냄새가 가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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