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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월 2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마침 김병현이 던지고 있는 미국월드시리즈 TV 중계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9회말 주자를 2루에 둔 상태에서 아웃을 하나 잡고 타자를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 9회말 투아웃까지 잡았다가, 홈런을 맞는 바람에 다 이긴 경기를 놓치고, 연장에서 또 한방의 홈런을 맞아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 쓴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이번만은 멋지게 타자를 처리해 세이브를 올리며 월드시리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한 타자를 멋지게 삼진으로 아웃시켰다. 이제 한 타자만 더 잡으면 월드시리즈에서 세이브를 기록하게 된다.
"이제 김병현! 대망의 월드시리즈 세이브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입방정이 좀 귀에 거슬렸다. 아니나 다를까, 딱 하고 맞는 순간 '이건 넘어갔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환호하는 상대선수, 김병현은 고개를 처박고 주저앉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순간 TV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나와 다름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은 잠깐, 강판당하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김병현의 얼굴에서는 안타까움은 볼 수 있었으나, 절망은 없었다. 오히려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후에 TV에서 볼 수 있었던 경기후 김병현의 인터뷰에서도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두 번의 연이은 실패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22살의 청년 김병현은 분명 훌륭한 선수이다.

그가 올해 가장 어린 나이로 월드시리즈의 무대에 오른 것은 분명 커다란 행운이며, 성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월드시리즈에서의 연이은 불운과 좌절로 고개를 떨군 그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왠지 모르게 가슴 뿌듯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늘의 그의 좌절이 앞으로 그가 성숙하고 훌륭한 선수로 커가는데 정말 적절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지 3년만에 월드시리즈에서 공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과 재능에 힘입은 바도 크겠지만, 많은 행운이 따라준 것도 또한 사실이다. 박찬호나 미국에서 아직 빛을 못보고 있는 다른 선수들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이번 월드 시리즈에서 운좋게 세이브라도 쉽게 건졌다면, 한순간 조명을 받을지 몰라도, 뼈저린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그가 과연 계속 좋은 선수로 커 갈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사회는 온갖 부정과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판도 서로가 헐뜯고, 공격하고 상대를 부정하기에 바쁘다. 사회를 희망으로 채색해야할 언론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혹을 부풀리고, 국민들에게 우리사회에 대한 환멸을 자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청년 실업자들은 일자리가 없어 좌절하고 있고,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살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기득권을 누리며 자기 것을 지키고 늘리기에만 여념이 없다.

이제 좌절과 절망을 보지 말고 희망을 보자. 성취와 환희를 눈앞에 두었다가 한 순간의 실수로 좌절과 실패의 나락에 떨어진, 22살 청년 김병현의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보며 모두가 희망의 끈을 다시 잡아당겼으면 정말 좋겠다.

김병현이 다 끝나가던 경기에 홈런을 맞고 주저앉을 땐 나도 눈물이 날 뻔했다. 하지만 조금 지나니 오히려 가슴속에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래! 좌절도 희망과 성공에 있어 필요한 요소다. 너도 희망과 성공을 향한 길에 당연히 거쳐야할 관문을 거친 것 뿐이다.'

좌절을 겪지 않은 성공은 성공의 환희를 느낄 수가 없는 법이다.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했던 고통을 겪은 사람이 가족의 소중함을 안다. 오늘, 많은 실패에 좌절하고 낙담하는 사람들은 실패했으나 좌절하지 않는 김병현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병현은 분명 오늘의 실패를 딛고 메이저리그에서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우리도 실패에 한순간 무릎을 꿇으나,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서 희망을 잃지 않은 한 실패를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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