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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원(가명. 26 여)씨는 5년째 실업 상태다. 나 씨가 전문대학을 졸업한 것은 지난 97년. 나 씨는 졸업하고 취업이 되지 않아 모 방송국 아카데미에 사립대학교 등록금과 맞먹는 돈을 내고 1년을 다녔다.

그러나 취업은 쉽지 않았다. 주말이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직업을 알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실업자라는 꼬리표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씨는 사실 IMF 최대 피해자다. 졸업과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IMF덕에 이래저래 어려움을 겪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나씨는 요즘 다시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웹디자인 6개월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주말이면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말이다. 나씨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16시간 정도. 나 씨는 웹디자인 과정이 끝나는 대로 어서 취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지금 배우는 게 재미있기는 하지만 사실 걱정이 많아요. 주변에서 너도나도 취직하겠다고 다 웹디자인 과정 다니거든요. 실업자들이 몰리는 곳이 정해져 있어요. 학원들이 다 비슷하거든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아무개(47. 남)씨는 IMF 이전에 금융권에서 일을 했다. 과장 직함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실직 상태가 돼 버렸다. 이 씨는 실직한 후 삶의 의욕을 잃고 말았다.

"실직한 후에 방황하게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상당히 충격을 받았어요.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잘 되지도 않고 해서요."

이 씨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서소문 공원과 노숙자들이 살고 있는 자유의 집을 오가며 살다가 99년쯤에 서울역에 왔다. 이 씨는 겉으로 보기에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보였다. '이 사람이 노숙자 야'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는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일당 5만원 노가다 일을 했다. 그러나 이제 일자리 구하는 것도 포기했다.

"덥고 귀찮아서 일자리 찾고 싶은 마음도 없고, 동사무소 복지과에 찾아갔는데 생활보호자로 등록을 하려고 해도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포기했어요. 실업자나 노숙자를 위한 혜택은 없지만 그래도 밥 주는데는 많아요. 서울역에도 있고, 저기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한마음 센터도 있고..."

실망실업자는 실업자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률 변화 추이 ⓒ통계청


통계청이 지난 8월 16일 발표된 '2001년 7월 고용동향' 발표에 따르면 7월 중 실업자는 76만명, 실업률은 3.4%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15일 전후 일주일 동안 전국 3만 표본가수 경제활동 상태를 조사해 공식 실업률을 발표한다. ILO(국제노동기구)기준에 따라 공식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로 실업자 수를 나눈 수치다.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세 이상 총생산가능인구는 3650만명이고 이중 경제활동 참가 인구는 2252만명, 취업자 수는 2176만명이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취업자 수에는 조사대상 기간 전 1주일 동안 생계를 위해 1시간 이상만 일을 해도 모두 취업자로 분류된다. 위의 예로 제시한 나 씨의 경우 스스로를 실업자라고 생각하고, 또 주위에서도 그를 실업자라고 보고 있지만 통계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실제 체감실업지수와 공식적인 실업자 발표와는 괴리가 크다. 더구나 ILO 기준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는 실업률 계산에서 제외된다. 비경제활동인구는 15세 이상 인구로 집 안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가정주부, 학교에 다니는 학생, 일을 할 수 없는 노인과 심신장애자, 자발적으로 자선사업이나 종교단체에 관여하는 자, 실망실업자(노숙자 포함) 등이 여기에 해당되며 7월 현재 1398만명에 이른다.

여기서 문제는 실망실업자다. 위의 예로 제시한 이 씨의 경우가 바로 대표적인 실망실업자다. 이 씨는 취업자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니다. 단지 비경제활동인구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취업 가망성이 없어서 구직활동을 포기한 실망실업자는 실업률 통계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비경제 인구 가운데 최소한 5.1%(통계청 추정치), 최대 15.7%(통계청에 의한 개인의 구직의사 조사결과)가량이 실망실업자로 추산되는데 7월 통계를 놓고 계산해 본다면 최소 71만 2980명에서 최대 219만 4860명에 이른다. 실제 완전실업자 수는 150만명 이상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이같은 실업률 통계의 허점에 대해 통계청 사회통계과 허진호 과장은 "현재의 통계는 엄연히 ILO기준(1주일 전후 노동시간 측정)과 OECD(한달 전후한 노동시간 측정)기준에 의해 산출된다"며 "시간대별 취업인구 수나 업종, 지역, 연령, 성별로 분류가 되는 만큼 필요에 따라 활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망실업자는 실업자도 취업자도 아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습니다)ⓒ오마이뉴스 박수원
그러나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 견해는 다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은 "현재 존재하는 실업대책이 단순 실업률 지표를 근거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자료를 취사선택해서 쓰면 된다는 사고는 지극히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통계청이 실망실업자 현황을 비롯해 실업과 관련된 보조자료들을 일반인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근거로 정책당국자들이 적절한 실업대책을 세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과 멕시코는 ILO기준 실업통계 이외에도 자체적으로 다양한 실업형태에 대한 통계를 만들어 실업대책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1994년부터 실망실업자나 가사나 육아나 학업 문제 때문에 구직활동을 하지 못하는 인구를 세분화해 U-1부터 U-6까지 분류해 놓고 있다. IMF구제금융을 통해 급격한 경제변화와 고용악화를 겪었던 멕시코도 공식적인 실업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시간 근로자나 잠재실업자, 실망실업자를 포괄해 R1-R11로 분류해 통계지표를 만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순희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멕시코의 모델을 참고로 우리나라도 노동시장 환경변화에 맞게 실업에 대한 다양한 지표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실망실업자와 단시간 근로자, 전직 실업자를 포함해 K1-K7형태로 나누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강 연구위원은 "통계의 활용 이외에도 조사된 통계, 특히 비경제활동상태에 대해 대외적으로 공표해 적절하게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위의 예로 든 나혜원 씨는"일주일에 한 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되는 줄 정말 몰랐다"며 "주변에 직장을 구하지 못한 친구들도 대부분 최소한의 비용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씨는 "가끔씩 언론에 보도되는 몇십만명 실업자 중에 나도 포함되는 줄 알았는데 정작 실업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황당할 따름"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실망실업자가 돼버린 이 씨는 “정부에서 내놓은 실업대책이라는 게 이곳저곳 전전하는 노숙자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라며 “이제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이은숙 정책기획실장은 "정부가 4-5년 동안 일관적으로 추진한 실업대책은 공공근로와 IT산업 육성을 빼면 딱히 내세울 만한 내용이 없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실업률 통계로 실업률 낮추기에 골몰하기보다 현실적인 실업률 세분화 작업을 통해 실효성 있는 실업대책을 만들어야 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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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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