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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현재 미국경제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기업들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중 가장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김태동(54, 성균관대 경제.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가변동 폭이 심하고 반도체 가격이 최저 수준이기 때문에 현재 경기를 낙관할 수 없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개혁정책과 관련 “중남미에 비해서는 성공한 개혁이지만 절대평가해보면 아직 여러 가지로 미흡하다”며 “기업 재무구조 개선과 부채비율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태동 교수는 경제정책 개혁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 “개혁도 일종의 수술인데 실력이 부족한 의사가 환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수술이 잘 되지 않고 있다”며 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한국경제가 나름대로 독자적인 색깔을 갖추기 위해서는 질서자유주의, 인본주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맹목적으로 한 나라를 좇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성공한 사례를 모아서 우리 실정에 맞는 ‘비빔밥’ 경제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태동 교수는 은행합병에 대해서는 “결정된 정책인 만큼 잘 됐으면 좋겠지만 합병이 우리 문화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경제적 효과도 중요하지만 기업 합병에서는 그 나라의 문화도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투명성 확보가 관건

- 경기에 부정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기가 바닥을 치면 무조건 성장 할 것이라는 ‘하키 스틱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한국의 경제상황을 전망한다면.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장래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장래를 반영하는 지표는 주가 움직임이다. 올해 주가가 6개월 동안 500-630 사이에서 2번 정도 오르락내리락 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미국 주가도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어 예측이 어렵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정보통신의 핵심부품인 반도체 가격이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점도 경기를 낙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2차 대전 이후 처음 있는 10년간의 미국 장기호황을 보면서 누구도 언제 불황이 온다고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할 일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중 가장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난 주 한국은행이 콜금리 0. 25% 인하를 발표했다. 비판적인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경기부양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하나.

“적절한 조치였다고 판단한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에서 과다한 투자가 줄었다. 저축은 경제위기 이전이나 이후가 비슷하지만 이자는 많이 싸졌다. 시중금리가 낮은 상태에서 국공채 금리도 내려가고 초단기 금리인 콜금리가 하향됐다는 것은 중장기 금리 하향에도 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 기업 투자나 내구재 소비,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만 따로 놓고 본다면 경제위기 전보다 가시적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금리 변동을 보면서 기업이나 소비자가 투자 또는 집 구입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도 경제 위기 이전까지는 금리고하를 불문하고 은행대출만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3-4년 전에 비해 높아졌다. 따라서 콜금리 인하가 직간접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 4대부문 구조조정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자르고, 줄이고, 조이고, 파는 ‘감량경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특히 일반 국민들은 구조조정은 ‘정리해고’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 사이에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동일시하는 인식이 퍼져 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구조조정이라는 말보다 개혁이 좀더 광의의 개념이다. 구조조정은 개혁의 일부분이다. 4대 개혁 중 기업개혁의 일부로 정리해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IMF협약의 ‘키워드’는 투명성이다. 정리해고와 투명성과는 관계가 없다. 투명성 확보는 경기가 나쁠 때건 좋을 때건 언제고 필요하다. 투명성 제고의 조건으로 IMF가 요구한 내용은 재벌 결합재무제표를 만들어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결합재무제표가 작년부터 발표되고 있지만 계열사의 재무제표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계열사를 묶어서 결합재무제표를 만들어야 소용이 없다. 대우그룹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계열사 하나 하나의 재무제표가 정확하지 않음으로 해서 20조원 이상의 분식회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마어마한 분식회계가 누구 지시로 이뤄졌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우중 회장이 지시한 것인지 아니면 계열사 사장들이 목이 달아날까봐 총수를 속인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로 인해 은행이 부실해졌고, 예금자와 납세자들이 손해를 봤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은 재무제표를 투명하게 만들지 않고 있다. 단순히 결합재무제표를 만든 사실만 내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춰 재무구조를 건실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채비율을 50% 이하로 낮춘 우량재벌의 우량계열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옥석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건실화된 기업도 있는 반면, 어떤 재벌은 99년 주가가 오를 때 유무상 증자를 통해 자본금만 늘리고 부채를 줄이지 않고 편법으로 부채비율을 낮췄다. 그런 기업에 과연 돈을 대출해주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상대평가는 ‘만족’, 절대평가는 ‘미흡’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있다. 개인적으로 경제위기 당시 IMF 처방은 옳았다고 본다.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개혁과 관련된 처방은 100% 옳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개혁을 상대평가한다면 70년대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중남미 보다 개혁을 잘했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제2의 외환위기를 겪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개혁했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못하다. IMD(국가경영개발원)에서 국제경쟁력 보고서가 매년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순위는 30위 안팎이다. 외환보유액은 1000억불로 세계 5위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50점 밖에 개혁이 안된 원인이 무엇이냐. 개혁도 일종의 수술인데 환자가 수술이 필요하면 집도를 해야 하는데 의사 실력이 부족하면 수술이 잘 되지 않는다. 실력이 부족한 관료들이 우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말단 노동자가 바뀌는 것보다 사장이나 회장이 바꿔어야 한다. 장관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하급공무원들만 10% 이상 잘라내면 효과가 있겠느냐.”

- 일관성 없는 정책의 대표적인 예로 많은 사람들이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반도체 처리를 꼽고 있다.

“개별 기업 처리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서 시장의 판단력이 높아졌다. 그것이 개혁의 성과다. 이제는 정부가 아무리 살려주려고 해도 시장판단력과 너무 배치되는 곳은 살려주지 못한다. 현대는 시간을 두고 처리할 것으로 본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98년 빅딜이 문제였는데 그때 만약 반도체 빅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반도체 위기를 극복하는데 쉽지 않았겠느냐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정부가 두 기업을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피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본다. 너무 큰 기업이 쓰러지면 실업자도 많아지고 경제안정에 너무 심각한 피해가 오는 부분도 있고. 그러나 시장의 실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정부는 크게 오산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 대우차 처리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대우차 처리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기업에 국한시키지 않고 이야기를 하겠다. 98년도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게 위기극복의 열쇠라고 생각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개혁이 돼야 한다. 기업개혁이 되는 방법은 첫째 주인과 종업원이 힘을 합쳐서 미리 방법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주인 바꾸는 방법이 매각이다. 매각에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언제 파느냐에 따라서 값도 결정된다. 매각에 대해서 국민들은 ‘국부유출’이라고 비판하는데 그건 오해다. 중요한 기업을 헐값에 팔고 싶어서 팔겠느냐.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경제위기다. 대우차를 98년 팔았다면 50억불은 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주인이 와서 잘한다면 정부도 국민세금 안들이고 좋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구조조정은 김대중 정부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해외매각은 불가피한 선택"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나 해외매각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4대 개혁 중에 공공부분도 포함돼 있다. 공공개혁 핵심은 부패척결이다. 우리나라는 공기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민영화가 공공부분 개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영화를 뒷받침할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민영화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꼭 지배주주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소액주주에 의한 민영화도 가능하다. 관건은 지배주주 유무가 아니라 거대 공기업을 이끌 경영능력이 있는 지도자다. 그런 사람이 충분한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외국자본에 대해 개방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영국 대처수상 집권 당시인 80년대 초 위기가 있을 때 영국은 10대 금융 기업 중에 대다수를 팔았다. 이후 영국 경쟁력은 금융경쟁력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됐다. 이런 측면에서 매각을 무조건 국부유출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는 면도 있다.”

- 금융개혁 일환으로 정부는 주택은행과 국민은행 합병을 시도했다. 여기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합병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합병이 결정된 만큼 잘 되기를 바란다. 다만 과거 20년 전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이 합쳐 서울신탁은행이 됐다가 서울은행이 됐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할 정도로 부실은행이 된 경험이 있다. 최근 자율적으로 추진한 화학업체(대림과 한화)의 M&A가 삐그덕거리는 것을 보면서 합병이 우리 문화에 다소 어울리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책을 결정할 때는 문화도 생각해야 한다. 수량적으로 세계 몇 등은 중요하지 않다.”

- 한국경제는 1980년대에는 일본을, 1990년대 이후에는 지금까지 미국경제를 쫓아가고 있다. 미국식이 과연 좋은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 나름의 방법을 개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는 투명성이 중요하고, 투명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노력한 사람들이 제대로 분배를 받는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로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평범한 노동자들은 세계 5등 이내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데 사장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투명성과 공정성만 확보된다면 장래는 낙관적이다. 디제이노믹스의 첫째 요소는 질서자유주의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기능강화, 중앙은행 독립, 금융감독위원회의 금융기관 감독을 중요하게 설정했다. 기본 질서만 만들면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시장에 맡기면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본주의다. 21세기 자본주의에서 국민이 중요하다. 평생 학습하는 신지식인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유연성이다.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외풍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높아야 한다. 맹목적으로 한 나라를 좇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성공한 사례를 모아서 우리 실정에 맞는 경제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있고 경쟁력이 있는 비빔밥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교수는 ‘디제이노믹스’ 근간을 형성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집권 후반기를 맞고 있다. ‘디제이노믹스’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투명성이 관건이다. 기업과 공공부분의 투명성이 높아져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책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대통령이 최근에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사실 개혁에는 별로 돈이 들지 않는다. 투명성을 높이는데 저해요인은 결국 공공부분이다. 악취가 나는 시화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와 선거, 개방적인 관료사회와 시장이 피드백 돼야 한다.”

취재를 마치고

ⓒ 오마이뉴스 이종호
‘투명성’. 김태동 교수 인터뷰의 키워드는 바로 투명성이었다. 투명성과 공정할 룰이 확보되고 나면 시장 자율성에 따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인정했듯이 절대평가 기준으로 봤을 때 개혁은 아직 미흡하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책만 ‘투명’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김태동 교수는 94년 겨울 경실련 기관지 <경제정의>에 ‘21세기 오적’이라는 시를 통해 언론(言盜), 공해범(環盜), 부동산투기꾼(地盜), 공무원,(公盜), 판-검사-변호사(法盜)을 오적으로 지목했다. 김 교수는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다섯 집단들은 경제위기 이전이나 이후나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런 점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만큼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지금 있는 주요한 경제관료들이 오랜 공무원 생활에서 잘된 일들만 보고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대통령에게 좋은 일만 보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직접적으로 현직 관료들에 대해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현 정부정책 수립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만큼 긍정적 평가 내지는 ‘불가피론’을 주장했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면 장관들이 잘 기록하고 정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기록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아 결국은 똑같은 사안을 가지고 몇 차례씩 반복해 이야기하게 되고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국정지표로 내세웠던 어떤 사안이 장관들에게도 공유되지 않아 실현되지 못한 사실을 예로 꼽았다.

김태동 교수는 커다란 돌덩이를 옮기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하듯이 개혁도 팀을 이뤄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있으면서 절감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약력 
1947년 충남 부여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 
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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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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