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의 게임?

안타깝지만... 이것이 한국축구의 현실이다. 5:0. 아니 좀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한국은 이날 운이 좋았고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선수 구성에 있어서도 베스트가 아니었으며, 플레이도 느슨한 편이었다.

한국은 30일 벌어진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에서 현 세계랭킹 1위인 프랑스를 맞아 시종 어려운 경기를 한 끝에 5:0으로 패했다.

프랑스의 첫골이 터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다음 골부터는 더욱 쉬웠다. 전반 8분경 코너킥에 이어 뒤가리가 공을 패널티 에어리어 정면으로 띄워주자 스테브 말레가 화려한 시저스킥으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두번째 골은 18분경 프리킥이 한국 선수의 몸에 맞고나온 공을 비에라가 27M짜리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얻었고, 세번째 골은 34분경 한국의 오프 사이드를 뚫은 카레이르의 센터링을 대쉬하던 N.아넬카가 넘어지며 차넣었다. 그리고 전반종료.

한국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후반에 들어서며 황선홍을 교체투입했고, 프랑스가 페이스 조율을 위해 공격력을 약화시킨 틈을 노려 안효연, 하석주 등의 공격 성향의 선수들을 연이어 투입하며 0패만은 모면하려 했지만 오히려 35분에 조르카에프에게 4번째골을, 후반이 끝날 무렵인 47분엔 윌토르에게 골키퍼마저 제쳐지며 가볍게 5번째골을 허용해 세계 강호와의 실력차를 절감하고 대패의 쓴맛을 느껴야 했다.

5:0이라는 '적은' 스코어 차로 패배한 이유

한국은 전반 2:0으로 뒤지던 20분경 홍명보의 반칙으로 패널티킥을 허용했지만 GK이운재가 막아냈으며 프랑스도 경기가 3:0이 되며 승부가 결정난 이후에는 체력 안배 등을 위해 과감한 공격은 자제하고 무난하게 경기를 끌어, 한국으로선 5:0이라는 적은(?) 스코어차로 패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세계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 지단과, 강인한 인상의 GK 바르테즈, 부지런한 살림꾼들인 트레제게와 튀랑, 그리고 스트라이커 앙리등 스타 플레어들 상당수가 이번 대회에 결장했다. 그러니까 베스트 진용이 아님에도 두터운 선수층을 선보이며 이날 구장을 찾은 대구팬들과 수많은 한국의 팬들에게 세계 1위의 축구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11명의 프랑스 선수들은 마치 끈적끈적한 유기물과 같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그라운드를 잠식했다. 몸싸움 하나하나에조차 의미있는 행동들이 이어졌고, 우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과 제공권은 한국선수들을 더욱 위축시켰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일순간 무너뜨리는 쓰루패스는 감탄을 자아냈고, 골망을 찢을 것 같은 강렬한 슛과 무서운 대쉬에 이은 골 결정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프랑스의 수비수가 공을 잡아도 한국에겐 위협적이었고, 한국은 최전방 공격수가 공을 잡아도 무기력했다. 그것은 명백한 실력의 차이였다.

실력 차이 인정하자

앞서 말했듯 5:0 이라는 실력 차이를 겸허하게, 어떤 면에선 더 벌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우리의 실력을 인정해야 한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스포츠 뉴스에선 호주를 잡자, 또는 멕시코와 호주를 잡고 2승 1패를 하면 자력으로 4강진출을 할수 있다는 등의 '희망'을 남기는 멘트를 했다.

어쩌면 프랑스를 이기자고 말했던 이 경기 전까지의 붕뜬 내용과 비교하면 그나마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한 셈이었다. 분명 한국은 이날 상당히 위축됐고 선수들이 가진 기량을 다 선보이진 못했다. 그러나 같은 입장에서 프랑스 역시 베스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플레이와 선수들이었다.

한국이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호주는 이날 80년 이후 한국이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멕시코(한국전:5승1무1패)를 2:0으로 가볍게 물리쳤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뿐 아니라 다가오는 월드컵에서도 32개팀 중 최약체팀중 하나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스포츠 신문이나 뉴스에서처럼 한국이 첫경기 징크스가 있어서 패하는 게 아니라 실력이 상대팀보다 못해서 첫경기에 지는 것이다. 한국은 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매번 "어느 팀이든 잡을 수 있다"라는 허황된 자신감은 경기에 들어서는 순간 선수들을 묶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이날도 마찬가지다. 실력 차이를 순순히 인정하고, 좋은 경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잡았다면 지는 건 어쩔수 없었다 해도 선수들의 급격한 위축은 막았을 것이다.

언론의 말도 안되는 축구대표팀 부풀리기와 무한한 애정을 가진 많은 팬들이 뿜어대는 환각성 열기 속에 한국 대표팀은 매번 냉정한 자기평가없이 경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자기발전의 제 1보는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고, 그것을 어렵더라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과 한국의 팬들에겐 이 부분이 절대부족하다.

이날의 경기는 그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경기였다. 상대는 세계 최강의 축구강호 프랑스이고 한국은 축구 후진 지역인 아시아에서나 인정받는 팀일 뿐이다. 한국은 5:0으로 졌고 그것은 실력 차이이다. 단지 프랑스가 한국보다 월등히 강했을 뿐이다. 그뿐이다.

여기에 어떤 변명이나 화려한 미사여구는 필요가 없다. 강한 팀이 이긴 것뿐이다. 우리로선 아픔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발견한 유일한 기쁨

마지막으로 대표팀의 변화세를 발견한 점은 이번 경기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한국 축구는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 영입 후 한국 축구는 분명 변하고 있다. 그것이 선진형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존의 "깡패축구" 또는 "군대 축구"라는 형식은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은 프랑스의 매서운 공격을 당하며 번번이 위기를 맞고 실점을 했지만 한국의 수비진은 몇 차례 거듭, 프랑스 공격수들을 오프사이드 함정에 빠뜨렸다.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아직도 불안한 수비진이지만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맞아 수비진이 일시에 움직이는 수비패턴이 여러 번 성공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또 공격에서 역시 몇 차례의 원터치 패스를 통한 돌파와, 압박을 보여 예전의 '킥 앤 러시' - 이런 고상한 표현이 아니라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뻥축구' - 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려는 모습을 선보였다.

한국축구는 분명 세계 축구계의 변방이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황선홍은 그가 왜 수많은 축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를 이날 보여줬다. 비록 프랑스가 공격을 자제하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은 황선홍이 들어서며 공격의 패스가 이전과 달리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골을 넣고 안 넣고를 떠나 그는 공을 받을 위치를 찾아가는 탁월한 위치선정 능력을 갖고 있다-한국 선수로선 드물게. 그를 통해 한국의 패스는 그나마 제자리를 찾았고, 다음 경기에도 일말의 희망을 남길 수 있었다.

2001-05-30 23:4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황선홍은 그가 왜 수많은 축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를 이날 보여줬다. 비록 프랑스가 공격을 자제하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은 황선홍이 들어서며 공격의 패스가 이전과 달리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골을 넣고 안 넣고를 떠나 그는 공을 받을 위치를 찾아가는 탁월한 위치선정 능력을 갖고 있다-한국 선수로선 드물게. 그를 통해 한국의 패스는 그나마 제자리를 찾았고, 다음 경기에도 일말의 희망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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