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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했다. 차고 앞을 정면으로 가로막은 자동차 때문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락 전화번호도 없다. 주차 브레이크도 콱 잠겨져 있어 요지부동이다.

야속한 운전자

클랙슨을 몇 번 눌러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간다. 아침부터 웬 소음 공해냐고 핀잔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오는 것만 같다. 올 듯 말 듯하던 비까지 내린다. 시내버스를 타고 갈 것인가, 아니면 택시를 타고 갈 것인가?

그러나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변두리 지역이라 직장까지 곧장 가는 버스도 없을 뿐더러 택시를 잡기는 더구나 하늘에 별 따기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동차를 또 한 번 밀어 본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죄 없는 자동차에 발길질이라도 하고 싶다. 아니, 이런 경우 어느 고약한 심보는 바퀴의 바람을 뺀다든지, 못으로 좌악 긁어 놓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차마 못할 일

그러나 못한다. 차마 못할 일이다. '인생을 고달프게 사는 어느 젊은 이가 밤늦게 들어와 남의 차고 앞인 줄 모르고 주차했을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선뜻 돌아서 지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간다면 이 자동차의 운전자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모를 것이 아닌가.

자신의 잘못된 주차 때문에 얼마만큼의 마음 고생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유유히 사라질 것이다. 나는 수첩을 뜯어 이렇게 썼다.

"선생님 자동차 때문에 혼자 속상해 하다가 결국 버스를 타고 갑니다. 고의는 아니라 믿지만 야속한 아침이군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무릎 위에 놓고 쓴 글이라 얼룩이 졌지만 그래도 나는 이 메모지를 접어 운전석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지금쯤 운전자가 집사람에게 사과하고 있을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아니, 집사람이 우중에 차고 앞에서 보초(?)를 서다가 '얄미운 운전자'와 옥신각신 다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오히려 다행한 일?

출근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차고 앞의 자동차가 아직도 그대로 있느냐고 묻자, 집사람은 "설거지하고 나와 보니까 홀랑 내뺐잖아요. 어휴 속상해" 하였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사람을 위로했다.
"잘됐지 뭐, 괜히 고약한 사람 만나 아침부터 싸워 봐야 득 될 게 뭐 있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야속한 생각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분명 메모 쪽지를 보았을 터인데도 일언반구 사과 한마디 없이 달아나 버린 운전자가 은근히 얄미웠다. 이웃간에 주차 시비를 벌이다가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사소한 일 같지만 이 같은 작은 감정의 불씨가 순간적으로 폭발하면 범죄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편의만을 위해 남을 배려치 않는 이기심도 문제지만, 조그마한 불편도 참지 못하고 손해를 보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각박한 우리 세태의 한 단면이다.

'야속한 이웃'도 알고 보니 '공손한 사람'

감정을 잘 조절한다는 것, 그것이 인격인줄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는 않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일행삼사(一行三思)'를 강조했는지 모른다.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순간적인 스트레스는 받을지언정 큰 불행을 자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하찮은 일 때문에 아침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대로 지나쳐 버려도 그만인 것을, 집 사람이 이웃에 수소문하여 자동차 주인을 가까스로 알아냈다고 하기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다같이 운전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괜스레 그런 메모 를 남겨 기분을 언짢게 해 드린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고 말머리를 꺼냈다.

그러자 젊은이는 당황했다. "그러잖아도 전화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말았어요. 너무 죄송해서 선뜻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이렇게 전화를 받고 보니 더욱 죄송해요."

그 날밤 그는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왔다. "이렇게 찾아 뵙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수줍은 듯 하면서도 공손한 그의 태도가 참으로 고마워서 나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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