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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를 만난 건 꼭 보름 전의 일이다.

2001년 4월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만난 그는 손에 농약병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농사꾼인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이 자리에서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농약병을 들었다"고 말했다.

평범치 않은 생김새...
ⓒ 오마이뉴스 노순택
누가 봐도 크다고 생각할 만한 코에는 산소통으로 연결되는 플라스틱 호스가 연결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코만 큰 것이 아니다. 커다란 손에, 거인같은 발, 두툼한 입술, 큰 귀의 신체 어느 곳 하나 작은 데라곤 없을 것 같은 육중한 몸... 그는 140kg의 거구였다.

정오의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서울시청 앞 차도에 나타난 그는 몰고 온 차를 가만히 세워놓고 운전석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트렁크 문짝은 휠체어가 삐져나온 채 삐그덕거렸다. 잠시 후 이 심상찮은 차량을 발견한 시청 경비직원이 그에게 다가가 차를 빼라고 지시했다.

그제서야 그의 두툼한 입에서 얘기가 터져 나온다.
"서울시장 만나러 왔습니다. 시장님 좀 만나게 해주세요."
"아저씨가 누군데 시장님을 찾아요? 빨리 차부터 빼세요."
"시장님 오기 전까지는 차 못 뺍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경비직원 두엇이 더 나타나 윽박지른다. 그러나 요지부동...

때마침 시청 앞 계단에서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인 소설가 현기영에게 기자들이 달라붙어 플래시를 터뜨린다. 하지만 아무도 자동차 안의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이번엔 경찰관 서넛이 출동해 차를 빼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그는 "시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다"며 "1급 장애인 나를 건드렸다간 곧바로 사망"이라고 강하게 맞섰다. 경찰관도 움찔하는 눈치다. 봄날씨 답지 않은 후텁지근함,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하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는 왜? 시청 앞에 나타나 서울시장을 만나려는 걸까.
"나도 더 이상은 지쳤어요. 이제 얼마나 살지도 몰라요. 살아있는 짧은 기간만이라도 좀 편하게 살면 안될까요?"
쉽게 감을 잡을 수 없다. 재차 물었다.
"한마디로 살 집을 달라는 겁니다."

그는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몸이 악화되니 갑자기 살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도 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한참 뒤 나타난 사람은 서울시청 주택기획과 직원이다. 이미 그를 알고 있다는 눈치다.
"대체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잖아요. 모든 일에는 절차와 규정이 있는 법인데, 이렇게 맘대로 하시면 저희가 곤란하지 않습니까."
"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단 말예요. 당장 시장을 만나게 해줘요."

ⓒ 오마이뉴스 노순택
둘 사이에 해답이 없을 것 같은 대화가 오고가던 중 갑자기 시청직원이 깜짝 놀라며 물러선다. 그가 농약병을 깐 것이다. 그는 농약병을 휘저으며 고함을 질렀다. 거친 손놀림에 농약이 사방에 튄다.
"그딴 소리 하려거든 가란 말이야. 나는 오늘 확답을 들어야겠어. 이 자리에서 죽는 걸 보고 싶어?"

경찰도 시청직원도 두 손을 들었다.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그는 세 시간 남짓 시청 앞에서 '나홀로 차량 시위'를 벌이다가 다시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의 손에는 "다음 주 안으로 답신을 주겠다"는 메모가 적힌 시청직원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그는 누군가.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의 이름은 김사균(金士均), 1963년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리에서 태어났다. 김씨는 몸이 자꾸 커지고 곳곳에 혹이 생기는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다. 말단비대증은 '성장호르몬'의 과다분비로 인해 발병하는 희귀한 병.

5살 때 발병한 것을 제 때 치료하지 못한 김씨의 몸은 엉망이다. 특히 지난 몇 년부터 몸이 불기 시작해 70kg이던 몸무게가 어느새 두 배로 늘었다. 그 과정에서 흉부에도 큰 혹이 생겨 김씨의 폐는 거의 제기능을 못한다.

김씨는 최근 주민등록상의 거주지를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서울시에 "임대아파트를 내놓으라"며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물론 거저달라는 건 아니다. 김 씨는 빠른 입주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요구는 분명 '규정과 절차'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서울시로서는 난감한 일임에 틀림없다.

오마이뉴스는 앞으로 다섯 번의 연재기사를 통해 김씨의 삶을 카메라에 담고자 한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에 게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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