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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월 1일을 맞아 과거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유인물을 돌렸다고 해서 문제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거죠.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이 없는 사실도 아닌데..."

지난 3월 1일 대구 수성구 시지동 일대에서 조선일보의 친일행각과 관련된 유인물을 돌리다 결국 조선일보 지국장의 신고로 경찰서에 불려가 5시간동안 조사까지 받은 이상호(31. 경산진보연합 사무국장)씨. 그는 경찰조사로 까지 이어졌던 이날의 '사태'에 대해 한마디로 '담담하다'고 표현했다.

"황당하기보다는 담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조사에서 당당히 따지겠다는 각오마저 들었죠. 물론 전국에 20만장이상 뿌려진 유인물 때문에 경찰조사를 받을 것이란 생각도 못했지만 말입니다"

왜 이씨는 옛 선배들이 일제에 항거한 3월 1일, 하필 그날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을 알리다 조선일보에 의해 고발당할 처지에 놓여 있을까. 그날의 그 사건에 대해 이씨와 주변 관계자들의 말을 한번 종합해 들어보자.

지난 1일 이씨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산진보연합 소속 후배 2명과 함께 대구 수성구 시지·고산지역 일대에서 <조선일보의 반민족행위를 고발한다>라는 B5크기의 유인물을 돌렸다고 한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이날 작업은 이곳뿐만 아니라 대구지역 '인물과 사상 모임'(인사모) 회원들이 중심이 돼 대구 전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날 배포된 유인물에는 '조선일보가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신문이라는 걸 아십니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고 있는 신문이며 사죄는커녕 '민족정론지'니 '할 말은 하는 신문'이니 하는 말로 국민들을 속여온 신문입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이씨는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시지동 일대를 돌며 일일이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허락을 받은 뒤 세대별 우편함에 유인물을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1만 6천장의 유인물을 거의 다 돌리고 작업이 마무리돼 가던 무렵에 발생했다. 오전 11시 40분쯤 조선일보 직원이라는 한 30대 남성으로부터 배포된 유인물을 "모두 회수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 것. 몇 차례 실랑이가 있었지만 이씨와 일행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머지 유인물을 돌리기 위해 서둘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가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2시 30분쯤 집으로 걸려온 수성경찰서의 전화에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4시 무렵에 집으로 찾아온 파출소 직원에 의해 수성경찰서까지 '임의동행'을 요구받았다. 조선일보 직원에게 제지당한지 4시간만의 일이다.

수성경찰서 수사계 관계자에 따르면 "조선일보 시지·고산 지국장이 명예훼손으로 수사의뢰를 해왔기 때문에 조사 차원에서 임의동행 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허위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될 여지가 있어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결국 5시간 가량의 수사를 마치고 귀가했고 현재는 조선일보측의 고소여부에 따라 재판정에 서게 될 '위기'에 처한 형편이다.

하지만 이씨는 "일제 강점기엔 친일적인 내용의 보도로 국민들을 우롱하던 조선일보가 이후에도 반성하지 못하고 이젠 보수적인 내용의 기사와 사설로 신자유주의와 보수정당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조선일보의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이후에도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해당 지국과 대구지사 쪽은 "본사의 입장에 따라 고소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조선일보 본사 쪽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보고 받은 바가 없다"고 말하고 "고소여부는 지역 혹은 지국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사의뢰를 받은 수성경찰서는 일단 월요일까지 조선일보측(지국 혹은 본사)의 고소여부를 기다려 본다는 입장이다.

한편 수성경찰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사건발생 후 이에 항의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70여건이나 게재되는 등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조선일보측이 고소장을 접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선 경찰서쪽이 조선일보의 하수인이냐" 는 등의 글을 남기며 단순히 수사의뢰만으로도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즉각적인 수사를 나선 경찰서쪽의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인사모 대구지역모임 김두현 회원은 "관할 경찰서 쪽에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항의서한을 보내고 관련자 사과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만약 조선일보측에서 고소장 접수를 한다면 전국적으로 공동대응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은 유인물 내용 일부분이다

<조선일보의 반민족행위를 고발한다!>

조선일보가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신문이라는 걸 아십니까? 모든 재산을 일제에 바치라고 부추기던 신문이라는 걸 아십니까? 우리 청년들을 일제의 침략전쟁에 총알받이로 내모는데 앞장섰던 신문이라는 걸 아십니까? 그리고 이런 사실들을 오십년이 넘은 지금까지 숨겨오면서 오히려 '민족지'라고 거짓말을 해 온 부도덕한 신문이라는 걸 아십니까?

조선일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자신들의 치부와 보신을 위해 민족을 배반했던 신문입니다. 거기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사죄도 하지않은 신문입니다. 사죄는 커녕 '민족정론지'니 '할 말은 하는 신문'이니 하는 말로 국민들을 속여온 신문입니다. 조선일보의 감춰진 추악한 과거를 제대로 봅시다.

1. 조선일보는 일본천황과 일본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신문입니다. 
-천황폐하와 황실가족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충과 의를 다 바치겠습니다..(조선일보 1939. 4. 29)
-한일합당은 조선의 행복을 위한 조약...(조광 1940. 10) ['조광'은 당시 조선일보사의 자매월간지...편집자주]

2. 일제를 위해 민족의 재산수탈에 앞장섰던 신문입니다. 
-조선인들의 국방헌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조선일보 1937. 7. 19)
-먹을 것 입을 것을 모두 바치고 그 처분만 바라라..(조광 1941. 2)

3. 징병과 징용을 독려하고 민족혼 말살에 앞장섰던 신문입니다. 
-일본군 입대는 조선인의 의무이자 영광된 일(조선일보 1938. 6. 15)
-국어(일본어)해독자가 적어 황국신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국어(일본어)를 상용해야 한다..(조광 194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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