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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름을 향해 가는 계절, 봄에 심었던 채소들이 하나둘 열매를 맺어 우리집 작은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잘 생기지는 못했지만 그 맛이야 시장에서 산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나답니다.

저의 작은 텃밭에 있는 '못생겼지만 더 맛난 먹거리'를 만나보시겠습니까?

▲ 고추
ⓒ 김민수
하얀 꽃을 피우던 고추, 사실 못 생겼다고 소개를 해드렸지만 고추가 들으면 기분 나쁘다고 할 것도 같습니다. 봄에 모종 10개를 심었는데 하나는 병에 걸려 말라죽고, 지난 작은 태풍에 수난을 당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요즘에서야 고추를 주렁주렁 달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컸는지 새벽에 나가보니 군침이 돌게 생긴 고추가 열렸습니다. 먹을 만하게 생긴 것 두 개를 따들고 들어와 아침상에 올려놓고는 아내와 내가 먼저 시식을 했습니다.

"음, 맛있군. 하나도 맵지 않은 것이 우리 아이들 먹기에도 그만이겠는 걸......"

곁에 있던 막내도 먹고 싶은지 "아빠, 안 매워?"합니다.
고추장을 찍어 한입 넣어주니 막내도 아빠 흉내를 냅니다.

"음, 맛있군. 하나도 맵지 않은 것이 우리 아빠엄마 먹기에도 그만이겠는 걸......"

▲ 가지
ⓒ 김민수
아직 따먹은 적은 없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반가운 가지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보라색 꽃이 지면서 마른 꽃을 미처 떨쳐버리지 못한 가지, 가지에 얽힌 저의 아련한 사연이 있답니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의 근교에서 농사를 지시던 부모님, 어느 해에 가지를 심었습니다. 노지에서 자란 가지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시기는 여름철입니다. 당시 '쭈쭈바'가 100원이었는데 밭에서 가지 따는 일을 도와주다 어머니에게 쭈쭈바 하나만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100원을 받아들고 쭈쭈바를 사오는데 어머니께서 가지를 도매상과 흥정을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한 접에 100원밖에는 못 쳐주겠다는 것입니다. 한 접이면 쭈쭈바만한 가지가 몇 개인 줄 아세요? 자그마치 100개입니다.

잠시의 혀끝의 시원함을 위해서 가지 100개를 먹어치운 저는 그 이후로 아이스크림이나 쭈쭈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보면 가지 100개가 생각나는 통에 감히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 오이
ⓒ 김민수
노란꽃을 피우는 오이는 많이 먹어보았지만 제가 직접 모종을 심고, 오이를 따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고추와 가지, 토마토 모종을 같은 날 사왔는데 오이가 가장 먼저 신고를 했답니다. 벌써 3개를 따먹었고, 주렁주렁 달린 것이 조금 있으면 따먹기가 바쁠 것 같습니다.

오이는 어린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애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이슬을 맞은 오이를 따서 바지에 쓱 문질러 우적 깨물어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동네 개구쟁이들의 손이 많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농약도 안 치고는 커다랗게 '농약살포, 절대 따먹지 말 것! 절대 책임 안 짐!' 뭐 이런 문구들을 곳곳에 써서 붙여 놓았지만 동네 개구쟁이들의 코도 만만치 않아서 잘도 피해 따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이를 처음 따온 날 경쟁이 붙었습니다. 두 개를 따왔기에 다섯 식구가 나누어 먹어야 했는데 막내는 기어코 반을 뜩 잘라달라고 해서는 혼자서 다 먹었습니다. 빨간 고추장을 찍어서 먹을 때 그 아삭거리는 느낌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상큼합니다.

▲ 호박
ⓒ 김민수

누가 호박꽃을 못생겼다고 했습니까? 보면 볼수록 예쁘고 탐스러운 꽃인데.

호박꽃은 아침 일찍 찍어야 제 모습을 담을 수 있는데 오늘 아침에 드디어 예쁜 호박꽃을 찍었습니다. 차후에 '꽃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호박꽃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호박꽃이 지기도 전에 앞으로 우리 식탁에 오를 호박이 동그랗게 맺혀있습니다. 호박잎이 넓어서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 있는 호박들, 그렇게 빠뜨리지 않고 따도 어느새 늙은 호박이 생기는 것을 보면 숨바꼭질을 아주 잘하는 것 같습니다.

▲ 방울토마토
ⓒ 김민수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못생겼지만 맛있는 먹거리는 방울토마토입니다. 아직은 열매를 맺고 있는 중이고 빨갛게 익으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합니다. 토마토는 다른 오이나 가지나 고추나 호박에 비해서 우리 밭의 것도 그렇게 못 생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둥글기 때문입니다. 둥근 것은 모나지 않거든요.

이렇게 나의 작은 텃밭에서 자란 먹거리는 못생겨서 시장에 내다 놓아도 아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들은 시장에서 사온 것보다도 밭에서 방금 따온 못생긴 가지와 오이와 고추를 더 좋아합니다. 살아있는 맛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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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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