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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오후 3시 30분 "호텔같은 병원에 환자들이 우루루"

지하철 3호선 일원역에서 삼성서울병원이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채 5분도 안되어 시야에 들어온 병원의 모습에 놀랐다. 강남에서 유행하는 말인 '태어날 땐 차병원, 죽을 땐 삼성병원'이라더니,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꽃과 나무로 훌륭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병원은 호텔인지, 궁인지 구별이 안가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병원 안과 밖에는 연두빛의 유니폼을 입은 '에스원'의 직원들이 무전기를 손에 들고 병원의 경비를 '탄탄히'지키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도 없고 어디에선가 향기로운 냄새가 나기까지 한다.

병원 안에는 다른 병원과는 달리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병원약국 앞, 약을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평소 종합병원의 모습 그대로였고, 약국의 번호판은 빨갛게 달아오른 증권회사의 시황판처럼 번쩍였다.

서울시내 환자들은 모두 삼성병원에 몰려든 것일까?

어떻게 될지는 우리도 모른다

이 병원의 홍보실 좌호철 주임은 재진에 한해서만 의사의 판단에 따라 외래진료를 한다고 한다. 즉, 예약환자만 외래진료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 예약을 안한 환자들은 돌려보냈다고 한다.
외래예약은 폐업중에도 가능하나, 초진과 마찬가지로 7월 10일 이후에 진료날짜가 잡힌다.

현재 병상의 가동률은 70%정도로 높다. 입원환자가 쓰고 있는 침대수는 약 1250개이다.

어제 예상과는 달리 환자들이 많이 몰리지는 않았다. 6200명 정도의 외래환자가 있었다.

오늘은 평상시 화요일처럼 6000여명이 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 외래환자는 3700명에서 3800명이고, 나머지는 입원환자나 약을 타가는 환자들이다.

삼성서울병원은 다른 병원에 비해 병원의 가동률이 높고 외래진료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좌주임은 "지난주 금요일에 교수 400명이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22일, 목요일까지 정부의 대답이 없고 현상황이 유지된다면, 금요일에 일괄적으로 사표를 내기로 말입니다. 지금 삼성병원이 외래진료를 하고 있는 것은 저희가 비상체제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우리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현상황을 보면 종합병원들이 대체적으로 외래진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응급실 등, 급한 환자를 위한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상체제가 며칠을 갈까?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3일이 지나면, 이 비상체제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체제 자체가 한계에 부딪히지 않더라도 지금 병원에 남아 있는 교수의료진들까지 사표를 내고 폐업에 들어간다면, 병원은 이미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며, 의사들은 도덕적, 직업적으로 의사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의약분업'에 대한 투쟁이 결코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프고 죄없는 환자들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저항이, 순수한 의미를 떠난 집단이기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의사들의 폐업은 단순히 그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료대란으로, 아니 의료재앙으로 번질 것을 염려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의사와 보건복지부 모두 '아파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생각한다면, 조속히 해결책을 마련하여 병원정상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서울대 병원

오후 1시. 입원환자들, "달라진 걸 모르겠다"

정형외과 진료실 앞 의자에 세 명이 앉아 있다. 두 명은 오늘 한 시에 예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으며, 한 명은 무작정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산부인과 앞에는 외래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주일 전에 예약을 했고, 오늘 두 시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오늘부터 폐업이 있어서 진료가 조정된다는 연락은 못들었다. 사람이 없으니 두 시에 정확히 진료가 가능할 거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응급실에는 칠팔 명의 의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현재는 점심시간이라 두 명 정도 남아 있다. 응급환자는 현재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응급실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은 의사폐업과 상관없이 진찰을 받고 있다.

9층 병동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 환자는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다'고 말했다. "오전 회진 때 평소 들어오시던 전공의 대신 교수님이 들어왔다. 인턴과 레진던트도 함께 들어왔다. 폐업을 했다고 하지만 저를 비롯한 환자들은 불편한 점이나 달라진 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9층 병동에는 빈 침대가 많았다. 벽에 기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에게 몇 %의 침대가 비었느냐고 묻자, "자세히는 모르나 많이 비어 있다"고 대답했다.

8명 정원의 병실에는 보통 2~3개의 침대가 비어 있고, 4명 정원의 한 병실에는 단 한 명의 환자만이 입원해 있었다. 환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낮 12시 "예약환자 대상으로 진료 실시"

햇볕이 강렬히 내리쬐는 서울대 병원 앞에는 SBS, YTN 등의 취재 보도 차량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러나 이곳 서울대 병원도 삼성병원과 같이 적적하고 한가롭기는 마찬가지이다. 병동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짙게 깔린 초록의 잔디가 지금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듯 싱그러운 빛으로 광합성을 즐기고 있다.

커다란 병원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여기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각각의 '진료과' 앞에 마련된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과의 이영희 약사는 76명 정도의 환자들이 약을 타갔다고 말했다. 약을 타간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오늘 외래 진료를 받은 후 약을 타간 사람들이다. 비뇨기과의 신미선 간호사는, 폐업을 한다고 예약 환자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미처 연락이 되지 않은 환자들이 있어 그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뇨기과뿐만 아니라, 피부과 등 다른 진료과들도 의사들이 폐업을 한다고는 했지만, 외래 의사들이 1~2명씩 상주하면서 예약환자들들 대상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다.


강북삼성병원

오전 9시 "강북삼성병원은 너무나 조용하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이 들어섰고 택시문을 열어주는 도우미의 미소는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환자복을 입은 세명의 노인이 바깥 공기를 들이쉬기 위해 병원 입구에 서 있다. 1층 로비에는 간간히 약을 타는 사람들. 접수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벽 한면과 기둥에는 '국민과 함께 하는 전국전공의 일동'이 보내는 호소문과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갑자기 의사 대여섯명이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져 갔다. 몇 명 안되는 사람들은 한 쪽 구석에 마련된 TV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홍보팀의 김성녕씨는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 수술, 입원환자등 긴급한 환자를 제외하고, 외래의 경우, 현재 진찰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진료과마다 부분적으로 진료실을 개설하여 전문의를 중심으로 비상체제에 돌입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전체의 분위기가 아무 소동없이 조용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지나다니는 의사들, 간호사들, 약사들, 심지어 환자들의 얼굴에는 불만족의 표정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정말 만족을 하는 것은 아닐게다.

교통사고로 5급 1호 장애인이 되어 '고관절'수술을 받은 고양시의 윤필수 씨는 "평소에는 박사와 인턴 2명, 레지던트 3명이 회진을 돌더니, 오늘은 박사 혼자 8층의 45명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던지, 회진을 건성건성 보더만요"라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환자들에겐 당장 아픈게 나아지는 것보다 의사들의 성의있는 말 한마디가 어쩜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병원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약을 타는 사람도 많아지고..
이지균 약사는 "어제가 폐업전날이라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평소 20분정도 되던 약타는 시간이 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오늘 약을 타러 오시는 분들은 어제 못타신 분들이거나, 미리 예약을 하셔서 약을 찾아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라며 "약처방은 언제든지 가능하지요, 지금 병원에 오신 분들은 아마 약을 타러 오시는 분들"이라며 환자들에게 약을 내주며 바삐 말한다.

약사실은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강북삼성병원 전체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지금 의사폐업중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접수실 옆에 마련된 T.V에서 '서울대병원'의 현재 상황과 병원폐업에 관한 뉴스가 전해지자, 모두들 발걸음을 멈추고 T.V에 눈과 귀를 고정한다.

커다란 한숨만이 그들의 코와 입을 통해 조용히 내뿜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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