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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림시장입구
ⓒ 이종원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아요?"

서울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 상인회장 유의준씨의 절규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2년 전부터 우림시장 근처에는 대형할인매장이 세 군데나 생겼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의 강펀치를 연달아 맞았는데 누가 살아남겠습니까? 자금이나 가격, 서비스 어느 한 분야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역시 대형할인마트가 우후죽순 생기는 것을 보고 우림시장이 사라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1년 지난 오늘 시장은 보란 듯이 성공합니다. IMF 때보다도 더 힘들다는 이 시기에도 매출이 20%나 늘었고, 시장을 찾는 사람은 늘어만 갑니다.

▲ 무료주차권과 카트
ⓒ 이종원
무엇 때문에 새우가 고래를 이겼을까요? 그것은 재래식 시장이 주는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고객을 위한 마케팅으로 새롭게 무장했기 때문이지요.

입구서부터 우림시장 간판이 현란합니다. 네온사인을 통해 그날의 이벤트를 알려줍니다. 한쪽엔 무료주차장이 보입니다. 근처 공용주차장을 1년을 임대하여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방울토마토 2천원어치를 사면 15분용 주차권을 받습니다. 상추 한 봉지, 우유 몇 통 사면 한 시간 정도를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답니다.

할인점에서나 볼 수 있는 카트도 보입니다. 무거운 짐을 일일이 들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도 카트에 올라타 재래시장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맛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천장엔 비가리개가 설치되었습니다. 이젠 비가 내려도 쇼핑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비가리개는 상인들이 무려 2억5천만원을 갹출하여 설치했답니다. 영세한 상인들에게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매출이 올라 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근처 시장은 비가 오면 타격을 받는데 이곳은 날씨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 시장은 삶의 터전입니다.
ⓒ 이종원
생선을 토막내는 생선가게 아저씨가 배시시 웃으며 귀띔해줍니다.

"햇볕을 이기는 생선은 없어요. 저 가리개가 없었을 때는 30%는 상해서 버렸는데... 지금은 그 손실이 5% 이내로 줄었습니다..."

지금은 각 상점마다 소화시설을 끝내고 배수시설공사가 한창입니다. 물을 시원스레 뿌리면 바닥이 깨끗해질 수 있도록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공사지요.

우림시장은 절박한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케이스지요. 30년을 지역주민과 호흡하다가 대형할인마트가 들어서면서 갑자기 시장은 죽어갔습니다. 매출은 현저히 떨어지고 손님들은 할인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상인들은 절망합니다.

"이대로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다."

상인들은 다시 똘똘 뭉치고, 구청 직원들과 함께 시장을 살리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합니다. 재래시장을 다시 살리기 위해 스스로 메스를 가합니다. 그 이름하여 '재래시장 환경정비사업'. 무질서한 상품적치를 막고 좌판을 최소화하여 손님이 여유있게 쇼핑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습니다. 쾌적한 쇼핑을 위해 천막과 파라솔 등은 전부 치웠습니다. 예전엔 서로 자리를 넓히려고 서로 얼굴을 붉혔는데 지금은 좌판마다 선이 그어져 있어 상인들이 스스로 지켜나간답니다.

"자리가 넓다고 장사가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손님이 자주 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지요."

▲ 인터뷰에 응해주신 우림시장 유의준 조합장님
ⓒ 이종원
조그만 피자집 사장님이 바로 우림시장 조합장입니다. 시장 구석구석 안내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시장모습을 보여줍니다.

"값도 깎고 덤도 듬뿍 얻는 것이 장보는 맛이 아니겠어요."

"대형할인점보다 품질이나 가격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야채나 생선값을 한번 비교해 보세요. 공산품이야 뒤질지 몰라도 먹는 것은 시장이 훨씬 싸고 좋습니다."

시장에 대한 애정이 예찬으로 변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가꾸어낸 자부심이겠지요.

"구청사람들에게 감사드려요. 조례까지 개정해가면서 시장사람들 편에 섰습니다. 퇴근하고 밤 2시까지 시장에 살면서 공사감독하며 한솥밥을 먹었으니까요. 낮에는 물건을 팔아야 하니까 밤에만 공사를 했거든요. 상인과 구청이 함께 뭉치지 않았으면 우림시장은 죽었을 겁니다."

"환경개선하겠다고 했더니... 상인들과 건물주들의 반대가 심각합니다. 일일이 집까지 찾아다니면서 설득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제일 힘들더군요."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 심근경색으로 병원신세까지 졌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습니다.

그래도 문제는 없냐고 물었더니, "시장이 잘 되니 임대료가 무척 올랐습니다. 상인들이 힘들게 이루어낸 상권인데... 조금 서운하더군요"라며 건물주에게 조심스레 섭섭한 심정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시장을 위해 야심찬 계획을 밝힙니다.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온라인 판매를 시도할 겁니다. 신선한 물건을 집까지 바로 배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고객과 더욱 가까워질려구요."

큼직한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올 8월쯤 완공할 휴게소지요. 백화점처럼 소비자들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저 쪽은 체육관인데, 헬스시설과 런닝머신을 놓을 예정입니다. 죽어라 일하는 상인들도 가끔은 쉬어야지요."

그 옆에는 장애인 화장실까지 보이고, 옥상에는 대형 주차장까지 구비하고 있답니다.

▲ 재래식 시장에 떡볶기와 튀김이 빠질 수 없지요. 기름에 튀기는 작업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옆에 선풍기까지 놓았네요.
ⓒ 이종원
하도 침이 마르도록 구청직원들을 칭찬하길래 중랑구청 지역경제과 정한식 계장을 찾아갔습니다. 토요일 4시가 넘었는데도 큼직한 지도를 펴놓고 아이디어 짜내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우림시장은 전국 모든 재래시장의 모범입니다. 제주도에서 철원까지 지자체와 상인들이 벤치마킹하러 온답니다. 무려 600개의 단체에서 다녀갔지요. 그러고 보니 울릉도에서는 안왔네요. 작년에는 김대중 대통령도 이곳에 오셔서 격려해주고 갔어요."

"시청이니 소방서니 발로 뛰었습니다. 거의 무허가 영세상인들이어서 그걸 합법화시키려니 무척 힘이 들어요. 상인들이 무엇을 원하며, 그걸 해결해주는 몫이 우리 공무원의 역할이지요."

"6월엔 시장상인들을 위해 예절교육과 경영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도움을 받아 마케팅과 의식교육을 할 예정입니다. 이제 겨우 하드웨어가 갖추어졌으니... 소프트웨어에 중점을 두어야지요."

"우림시장이 성공했으니 이제 면목시장과 동부시장도 바꿔나가야지요. 할 일이 태산같습니다."

성공의 단맛을 본 사람의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 한가족이 둘러 앉아 곱창볶음을 맛보고 있습니다. 재래식시장이 주는 아늑함이 담겨 있습니다..
ⓒ 이종원

▲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삼겹살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좌판에서 젊은이들이 예쁜 썬그라스를 고르고 있네요.
ⓒ 이종원

▲ 역시 할머니가 파는 야채를 먹어야 맛이 있나봅니다.
ⓒ 이종원
역시 할머니가 파는 야채를 먹어야 맛이 있나봅니다.

"예쁜 할머니 조금 더 주세요."

기분이 좋으신지 상추 한웅큼을 봉투에 더 담아줍니다. 이것이 재래시장의 맛이 아닐까요?

▲ 재래식시장도 변했습니다. 손님을 끌기 위해 오토바이까지 경품으로 내놓았네요.
ⓒ 이종원

▲ 오늘은 얼마를 벌었을까요? 자동차 매연까지 참아가며 시장을 지켰습니다. 희망이 있길래 열심히 살렵니다
ⓒ 이종원
시장은 서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입니다. 따뜻한 정이 우러나오는 어머님 품안 같은 곳이지요. 만약 재래시장마저 사라지면 소중한 우리문화유산을 잃은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요?

지금 재래식시장은 공룡 할인마트와 버거운 싸움이 벌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앉아서 동정만을 기대할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입니다. 재래식시장의 특유의 장점을 살리며 고객의 구미에 맞도록 변화해야 할 겁니다. 그걸 우림시장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상권에 맞서 종로상권을 지키듯, 우리의 토종 재래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조합장님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자심감 확보는 두 번째고, 지금은 생존권 문제입니다. 시장이 문 닫으면 당장 우리 식구들이 굶어야 되는데..."


*우림시장 가는길

7호선 상봉역에서 구리쪽으로 버스타고 두 정거장 가면 우림시장 입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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