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29일 오전 북방한계선(NLL) 남쪽 연평도 부근에서 남북한 해군 사이에 교전이 발생해 양측 모두 큰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것은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99년 6월 서해교전 때와는 달리, 양측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측이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이다.

이번의 불행한 사태를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및 한국 대표팀의 4강 진출을 질투보다는 민족적 관점에서 축하하는 태도를 보인 북한이 폐막을 하루 앞둔 시점에, 또한 월드컵 이후 남북 및 북-미대화 재개가 모색되고 있는 시점에 무력 도발을 감행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가 우발적인 것인지, 계획된 행동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우발적인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남한 정부 및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사태가 북한의 계획된 행동이라면,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최고위 수뇌들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북한군 강경파들의 독자적인 행동인지도 반드시 밝혀야할 중대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내부 동향에 대한 정보가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남, 대미 전략이 너무 미온적인 것이 아니냐는 북한 내 강경파들의 불만이 투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즉, 주요 현안에 있어서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요원해지고 있는 가운데, 부시 행정부의 공세적인 전력 증강 및 군사 교리의 채택, 남한의 전력 증강, 한미 합동 군사훈련 등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면서, 북한도 강하게 맞서야 한다는 강경론이 이번 사태에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의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나는 북한군 강경파의 '선(先) 독자 행동, 후(後) 추인'의 가능성이다. 즉,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최고 수뇌부와의 사전 교감없이 일단 일을 저지르고, 후에 남측의 도발 및 선제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고 상부에 보고하고 용인받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른 하나는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최고 수뇌부가 '사전에' 강경파 불만 달래기 차원에서 무력 도발을 수락했을 가능성이다. 이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독자적인 행동이 어렵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북한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점에서 쉽게 단정할 수도 없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또한 계획된 행동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발적인 사태라는 가능성 역시 쉽게 배제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서해교전 사태가 햇볕정책 때문에?

이번 사태가 대단히 가슴아프고도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불행한 사태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 찾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대응책 마련을 어렵게 하며, 불행한 사태를 정치적 논란의 대상으로 왜곡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는 7월 1일자 사설, "'DJ 햇볕' 이젠 뭐라고 할 작정인가"를 통해, 이번 사태의 원인을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서 찾고 있다. 이 신문은 햇볕정책은 한반도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 대가로 돌려받은 것은 정조준된 대포 공격이었다"는 식의 감정적인 비판과 "현 정부의 '튼튼한 안보'는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국민 기만용이었다"는 식의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또한 같은 날 사설인 "통수권자·국방장관부터 책임져야"에서는 직접적으로는 김동신 국방장관이, 간접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등장한 대북인식의 혼란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당사자가 바로 군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모두 군(軍)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며, "김 대통령과 임동원 청와대 특보 등 '햇볕 전도사'들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군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위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 역시 7월 1일 사설을 통해, 서해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 등 민간 교류를 계속하기로 한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다. "지원을 계속하면서 사과를 요구할 때 북한이 과연 순순히 그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믿는가"라는 것이 동아일보의 금강산 관광 중단의 논거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나라당을 통해서도 제기되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 햇볕정책의 유효성, 금강산 관광의 지속 여부, 향후 대응과제 등을 놓고 정치적 논란이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햇볕정책에 대한 공방은 유보해야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은 이번 참사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차분한 대응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정치적 논란으로 허비하는 구태가 반복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햇볕정책이 실패한 명백한 증거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이번 사태를 'DJ 때리기'의 일환으로 접근하고 있다. 잇따르는 비리 사건과 아들들의 구속 등으로 궁지에 몰린 DJ에 대해, 현 정부가 최대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대북정책마저 무력화를 기도하면서 정치적 승리의 재물로 삼으려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빛을 바랜 것이 사실이지만, 현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은 남북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긴장완화에도 일정 부분 기여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대립구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문제에 있어서 진전이 크게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햇볕정책 그 자체에서 유래한다기보다는 안보 문제에서 있어서 보수적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국내외적 환경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햇볕정책이 100% 완벽한 것도 아닐 뿐더러, 득과 실,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원인 및 그 책임 소재를 햇볕정책에서 찾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햇볕정책과 북한의 무력 도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 및 정책 대결은 대선 과정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햇볕정책 계승을 천명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와 햇볕정책을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 사이에 이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핵심적인 대선 이슈이다.

대북정책을 놓고 두 후보간의 벌일 정책 공방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와 함께, 향후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북정책을 놓고 정치적인 공세가 아닌 진정한 정책대결의 장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6.29 서해교전 사태는 진상 규명과 사과, 긴장 확산 억제 및 재발 방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마치 이번 사태가 햇볕정책 때문에 일어난 것인 양, 극단적인 여론몰이를 하면서 '반(反) DJ' 정서를 자극하는 것은 문제 해결 및 긴장 억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햇볕정책에 대한 정치적 공방으로 비화시키면서, 남한 내부가 극심한 이념 갈등으로 분열될 때, 이번 사태를 일으킨 세력의 목적을 스스로 달성해주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