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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기자들의 '성명서' ⓒ 오마이뉴스


조선일보 기자들이 '투쟁'을 선언했다.

조선일보사 편집국의 차장 이하 기자 2백여명은 6월 27일 오후 6시30분 태평로 1가 사옥 편집국에서 긴급 기자총회를 열고 언론사 세무조사와 예상되는 조선일보 사주 검찰고발 등이 현정권의 '비판언론 죽이기 음모'에 의한 것이라며 "맞서 싸우겠다"고 결의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이 총회에서 '조선일보사 기자 일동' 명의로 성명을 채택하고 "비판언론을 압살하려는 권력의 음모가 명확히 드러난 이상, 우리 조선일보 기자들은 그 음모에 분연히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성명은 "조선일보 기자들은 지금 사방에서 언론을 옥죄어오는 권력의 살기를 절감하고 있다"면서 세무조사 결과 등은 "김대통령이 말한 언론개혁이 비판언론 압살 작전에 다름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또 "권력은 나아가 기사를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고쳐쓰게 하는데는 사주를 협박하는 게 지름길이라며 경영진을 향한 공공연한 협박도 서슴치 않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현 정권의 비정상적인 세무조사가 이런 압력이 먹혀들지 않은데 따른 보복조치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기자는 "성명 문안은 이미 다 작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상총회는 성명을 채택하고 20여분만인 6시 50분경에 끝났다"고 말했다.

또다른 기자는 "비장한 분위기였다"면서 "25일 오후 6시경에 기수별 대표자 모임을 갖고 오늘 성명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고 그간의 경위를 말했다.

한 정치부 기자는 총회 분위기에 대해 "좋은 일도 아닌데, 썰렁했지 뭐"라면서 성명서 발표 시기에 대해 "사주가 구속된 다음에 발표하면 사주가 구속되니 기자들이 나섰다고 오해할까봐 그 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회 자리에 간부들은 보이지 않았고, 또 그런 자리에는 간부들은 일부러라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는 이동환 사회부 차장의 사회로 경과보고, 박영철 노조위원장의 '이번 사태를 보는 노조의 입장' 발표, 편집부 한 기자가 대표로 읽은 성명서 낭독, 그리고 박수로 성명서를 추인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 성명서 발표 소식을 알리는 조선일보 28일자 시내 배달판 1면 기사.
한편, 이날 오후 7시경에 발행된 28일자 조선일보 초판에는 기자들의 성명서 채택 소식이 실리지 않았으나 시내 배달판 1면과 2면에는 성명서 전문 등이 실렸다.

다음은 정경렬 조선일보 노조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

- 성명서 채택 내용에 대해 기자들 내부이견은 없었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 노조는 얼마나 개입했나.
"기수 대표 모임에 장소를 제공했고 간단한 연락을 도왔다."

- 검찰에 고발되거나 사주가 구속된 것도 아닌데 성급한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성급하다고 볼 지 모르지만 결과가 보이고 있다. 이미 국세청으로부터 조세범칙 조사로 전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건 검찰고발을 전제로 한 것 아닌가."

- 사주 구속을 반대하는 것인가.
"한솥밥을 먹는 입장에서 인간적으로 구속되지 않았으면 생각하지만, 사주구속 문제는 다음이고 핵심은 언론자유다."

- 기수 대표 모임에서도 사주구속 이야기가 나왔나.
"예상한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막아야한다거나 반대로 잘됐다는 등의 논의는 없었다."


언론단체 관계자들 "반성을 기다렸는데...실망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긴급 총회 소식을 접한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기자들이 언론인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예전 중앙일보 기자들이 홍석현 사장 구속 때 '사장님 힘내십시요'라고 했는데 조선일보 기자들은 그 차원을 넘어서 '회장님 만수무강하십시요'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권력과 자본은 물론이고 사주로부터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야할 기자들이 오히려 편집권을 사주에게 반납하는 꼴"이라며 "조선일보 기자들은 언론인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주언 사무총장은 "언론사와 언론사주의 탈세, 비리 등으로 언론에 대한 도덕성이 훼손 된 상황에서 국민들은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반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이번 조선일보 기자들의 행동은 국민에 대한 배반"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은 "민언련은 75년 언론자유수호를 위해 싸우다 퇴직한 조선투위, 동아투위 선배들이 만든 단체인데 조선일보 기자들의 이같은 행동은 이 선배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최민희 총장은 "기자들이 언론인이라는 의식보다는 언론기업 회사원이라는 의식에 젖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며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해도 너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젊은 기자들에게 기대를 많이 했지만 물거품이 됐다"며 "궁지에 몰린 언론사주의 닥달에 몰린 조선일보 기자들의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저항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민희 총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기자들의 가슴속에는 언론자유에 대한 의지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응어리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사주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면 그 응어리가 곧 터져나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SBS 박수택 노조위원장도 "일제시대도 아니고 기자들이 무엇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특히 "투명경영을 하지 못해 탈세 등 빌미를 제공한 것은 어김없는 사실아니냐"며 "당당하게 반성하고, 받을 것 받고, 줄 것은 준 뒤에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데 조선일보 기자들의 행동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조선일보 기자들이 27일 저녁 채택한 성명서 전문.

조선일보 기자들은 지금, 사방에서 언론을 옥죄어 오는 권력의 殺氣를 절감하고 있다.

지난 1월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 개혁을 말한 이후, 권력은 언론사를 상대로 마치 군사작전하듯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 조사를 해왔고, 그 결과를 1차 발표했다. 현 정부 스스로 폐지했던 신문고시도 부활시켰다.

언론사도 기업인 이상 세금을 덜 낸 것이 있으면 더 내야하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부분이 있으면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동안 벌어진 일들, 그리고 정부의 1차 발표 내용을 접하면서 조선일보에 몸 담고 있는 우리 기자들은, 김 대통령이 말한 언론개혁이 비판언론 압살 작전에 다름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4개월여간의 조사기간, 1000여명의 조사요원의 투입, 23개 언론사에 대한 5056억원의 추징세액, 13개사에 대한 242억원의 과징금 부과 등은, 여타 기업들과 비교할 때, 언론에 대한 일련의 조사들이 얼마나 형평성을 잃고 감정적인 조치인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해 언론의 비판적 기능에 충실해온 유력지들을 집중 겨냥하고 있음도 명백해지고 있다. 이는 국민에게 복무해야할 국가기관을 권력이 私用化하고 정치적으로 남용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권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언론을 향해 수구 독재세력이라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이념적인 공세까지 함께 퍼붓고 있다. 이는 자신들의 행위가 합법을 가장한 교활한 언론탄압이요, 언론길들이기에 목적이 있음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권력은 언론에 칼을 들이밀면서 기사와 논조를 들먹이고 있다. 겉으로는 언론사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둘러대지만, 커튼 뒤에서는 이제 굴복하고 펜을 거꾸로 잡으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은 나아가 기사를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고쳐쓰게 하는 데는 사주를 압박하는 게 지름길이라며 경영진을 향한 공공연한 협박도 서슴치 않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현 정권의 비정상적인 세무조사가 이런 압력이 먹혀들지 않은데 다른 보복조치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제 권력의 저의는 명백해졌다. 그들이 우리로부터 앗아가려 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그들이 빼앗아 가려는 것은 바로 언론의 자유이고, 기자로서의 최소한의 명예와 긍지이다. 권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문사를 없애버릴 수 도 있다는 오만까지 드러내 보이고 있다.

우리는 조선일보가 朝鮮日報社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우리 민족의 역사의 격랑을 헤치며 81년간 소중히 키워온 자산이다.

비판언론을 압살하려는 권력의 음모가 명확히 드러난 이상, 우리 조선일보 기자들은 그 음모에 분연히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투쟁에서 반드시 이겨 언론자유와 조선일보를 지킬 것이다.

2001년 6월 27일
조선일보 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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