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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에 나선 김지하 시인
ⓒ 오마이뉴스 이종호
글: 홍성식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 마지막 날인 5월4일 오후 12시55분 서울시청 앞. 작가회의 사무국장 전성태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1분 동안 불법시위를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전씨의 구호, "박정희 기념관 건립 문인들은 결사 반대한다" "세계의 웃음거리 독재자 기념관 건립계획 즉각 철회하라" 시청 입구 계단에 줄지어 선 문인들이 구호를 따라 외쳤고, 김지하의 시에 곡을 붙인 <타는 목마름으로>가 합창됐다.

박정희 유신정부(政府) 시절 '또 하나의 정부'로 불리던 김지하 시인이 시청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확히 정오. 20여 명의 취재기자와 지지·격려차 찾은 30여 명의 선후배 문인들 그리고, 시청입구를 가로막은 전경버스 5대가 그를 맞았다. 졸지에 시청 앞은 '고립된 섬'이 됐다.

1인시위 나선 김지하 시인 / 김정훈 기자



허가 받은 집회를 가로막고 선 경찰에 대해 작가회의 현기영 이사장과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이관복 씨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차량으로 현장을 가로막는 건 정당한 집회를 방해하는 행위다. 즉각 철수하라." 이에 경찰측은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의 요청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쪽과 연락하라"며 맞섰다.

▲시청 앞을 가로막은 전경버스를 두고 김지하 시인은 시위를 벌였다. / 이관복 상임대표가 전경들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결국 전경버스에 둘러싸인 채 김지하 시인과 기자들의 일문일답이 시작됐다.

- 거리시위에 나선 것이 얼마 만인가?
"1964년 '굴욕적 항일외교 정상화 반대시위'(6.3시위) 이후 처음이다."

- 박정희 반대시위에 나서지 않다가, 갑작스레 (이번 1인 시위)참여를 결정한 이유가 있는지.
"문인은 본업은 집필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1인 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나왔다."

- 개인적으로 박정희를 평가한다면.
"그간 '경제살리기만은 잘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터진 IMF 구제금융사태를 보라. 이것은 박정희가 뿌린 잘못된 경제정책의 씨앗이 불러들인 비극이다. 그러니, 이제 그에 대해선 아무 것도 추억할 것이 없다."

- 이 자리에 선 소감이 남다를텐데.
"79년 감옥에서 참선을 했다. 참선을 시작한지 꼭 100일만에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개인적 원한은 다 버렸다. 내 아버지, 어머니까지 고문한 정권이지만... 그것도 용서했다."

-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견해는?
"일본의 양심세력과 진보주의자들의 실책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일본의 양심세력과 연대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문제점들을 짚어나가야 한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일문일답이 끝난 12시43분에야 시청 정문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던 전경버스 2대가 자리를 떴다. 길거리에 줄지어 앉아 점심식사를 하는 의무경찰들을 지켜보던 한 문인은 "한편으론 측은하다. 하지만 서울시 행정의 얼굴이라 할 시청 정문에서 꼭 저래야 하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

문인들의 행사에 여간해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씨가 격려 차 경기도 양평에서 올라왔다. 그는 입버릇처럼 "내가 문단에서 만난 인간 중의 인간은 김지하"라 말해온 사람. "모든 문제는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 정확한 평가와 단죄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야. 그러니 '파시스트'가 '향수'로 부활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잖아."

강형철 작가회의 상임이사의 간략한 경과보고에 이어 이관복 공동대표가 문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국민들에게 박정희 반대 운동의 정당성을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감사하다. 그리고, (경찰차량까지 동원한 걸 보면)아직도 김지하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참여자들의 박수와 함께 4월30일부터 5월4일까지 이어진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 공식일정은 끝이 났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인근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긴 문인들은 점심을 함께 들었다. "91년 조선일보에 실린 글('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은 조선일보가 편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있지 않느냐"라는 시청 앞에서의 질문에 "그런 면이 없지 않지요"라 짤막하게 답했던 김지하 시인이 입을 열었다.

관련기사: "10년전 조선일보 칼럼을 참회하라"- 이준희 기자

"그 문제로 작가회의와 사단도 있었지...(웃음). 가까운 시일 안에 '그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하고 해결할 생각이다. 언제까지 못난 기억력으로 연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동석했던 문인 하나가 슬며시 귀띔한다. "조만간 91년 조선일보 사설에 관련한 김시인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있을 겁니다."

5월3일 '1인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던 김영현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은 "이번 일이 작가들을 '골방'에서 '광장'으로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지하 시인이 혼자 쓸쓸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음영(陰影)이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착잡했다"면서 "오늘 시위는 너무 외로웠어"라 말한 김지하 시인을 위로하기도 했다.

▲문인들이 모여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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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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