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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신>27일 밤9시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그러나..." - 박수원 기자

고대 안암역 주변에는 전경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고대정문과 후문을 수백명의 경찰이 지키고 서 있다.

밤 8시 10분 고대 학생회관 앞. 1백여명의 주택,국민은행 조합원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해산집회가 있었다.

금융노조 박창완 부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지금 다소 실망스럽더라도 다시 힘을 내자"며 "28일 오전 10시와 오후2시 지하철 2호선 각 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각 지회별 대국민선전전을, 28일 밤에는 서울역 노숙투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했다.

▲ "강제해산됐지만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기자
집회장에서 만난 국민은행의 한 조합원은 "이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면서 "돈이 있다면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났다.

"우리의 파업이 모든 면에서 다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도해 줬으면 좋겠다."

"경찰의 봉쇄로 고려대 안으로 동료들이 들어오지 못했지만 평조합원들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한 그는 "비록 우리는 강제해산 됐지만 내일 출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창원에서 올라온 지 일주일 됐다는 주택은행 조합원 김아무개(42)씨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은행원들이 지금까지는 징계를 내린다고 하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이번 만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일주일 중에서 가장 편안 잠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함께 올라온 직원들과 여관을 잡아 오랜만에 잠자리다운 잠자리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한편 27일 마무리된 금융노조 22개지부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는 28일 새벽 2시께에야 나오는데 지도부는 한국통신 153서비스를 통해 노조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27일 오후 5시 현재 국민은행 전체 1만4358명의 직원 가운데 40.8%인 5854명이 업무에 복귀했고 주택은행은 4095명(전체 1만1천995명)이 출근, 34.1%의 출근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려대에서 만난 파업 노조원들은 "금융감독원의 발표는 노조원들을 분열시키려는 수치조작"이라면서 "오늘 일산에서 파업을 끝냈는데 그렇게 많이 복귀할리 없다"고 말했다.


▲ 고려대에서 예정된 집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1백여명의 조합원과 학생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제23신> 27일 오후 8시 30분-고대 앞에 갇힌 노조원들의 즉석논의 - 권병석 기자

학교 정문에서 전경과 대치 중이던 학생대오는 정문 안으로 들어간 상태이며, 여전히 두 은행 노조원들은 곳곳에 모여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증강된 전경은 정문 건너편에서 인도를 반 이상 차지하고 길게 늘어서 있다.

6호선 고려대역 역사 안에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50여명의 노조원들이 무리지어 있고, 고대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

노조원들은 지점이나 부서별로 함께 행동하고 있는 듯 20여명씩 무리지어 있는데 지속되는 추위와 피로함 속에 지친 듯 집으로 돌아가서 쉬자는 의견,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면 안 될 것이라는 염려 등 여러가지 논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노조원들이 역사를 빠져 나와 고대 정문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출입구부터 봉쇄한 전경이 일일이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보다는 그나마 검문검색이 뜸한 학교 외곽 지역에서 무리지어 이동하는 노조원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제23신> 27일 오후 6시 55분-경찰 고려대도 포위 - 권병석 기자

고대학생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민족고대에 오신 금융노동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그러나 고대로 들어오는 모든 입구는 전투경찰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 경찰을 태운 버스는 도로 한차선을 점거한 채 학교 주변을 빙 둘러 주차한 상태이다.

얼마 전 개통된 6호선 안암역과 고려대역 역시 경찰이 출입구를 틀어 막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조차 힘겨운 상태이다.

삼삼오오 모여서 배회 중인 두 은행노조원들은 매우 차분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추운 날씨를 피해 커피숍을 찾기도 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즉석 회의를 통해 이후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 우선 오늘은 각자 흩어지고, 내일 종로에서 만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고, 계속 주변에서 머물면서 다음 메시지를 기다리자는 의견도 제시된다.

경상도 사투리며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보아 전국에 걸친 노조원들이 상경하여 지속적으로 강제 합병에 맞서고 있는 듯하다.

경찰이 정문 건너편에서 곳곳에 배치 되어 역시 곳곳에 모여 있는 노조원들을 경계하고 있고, 이곳 저곳에서 경찰과 노조원들간의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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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앞은 온통 검문중 / 권병석 기자

▲ 강제해산된 조합원들이 연수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22신>27일 오후 5시 50분-"다음 집결지는 고대"

다음 집결지는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고대로 정해졌다.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뿔뿔이 흩어진 파업 노조원들은 오후 3시경 파업 지도부로부터 이같은 지침을 받고 고대로 이동중이다.

현재 고대 근방에는 경찰의 검문 검색이 강화되고 있고, 국민, 주택은행 노조원들과 검문을 하는 경찰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 경기도 여주 한국노총 연수원에는 700여명의 전산직원들이 집결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21신>27일 오후 1시 30분 -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십시오" --김미선 기자(이하 26일, 27일 전체)

"6박7일의 가열찬 투쟁은 실로 위대하였습니다... 이제 또다시 새로운 장소에서 투쟁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현조합원들은 현위치에서 분회별로 휴식을 취하십시오."

국민은행 일산연수원을 빠져나온 국민-주택은행 노조의 2차 집결지는 1시30분 현재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분회장을 통해 2차 집결지를 전달받게 되며, 농성장을 빠져나올 당시에는 '오늘중으로 2차 집결을 한다'는 얘기만 전달받았을 뿐이다. 2차 집결지를 알리기로 한 메시지에서는 '휴식을 취하십시오'라는 말만 나오고 있다.

한편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근영 금감위원장, 김상훈 국민은행장, 김정태 주택은행장 등은 오늘 명동 은행회관에서 파업은행 대책회의를 열고 "파업에 가담했던 국민.주택은행 노조원이 28일 영업시간 개시전까지 업무에 복귀할 경우 그동안의 불법파업행위에 따른 처벌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공권력 투입에 대한 각당의 입장도 발표됐다.
새천년민주당은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부득이한 것으로 해산과정에서 큰 불상사가 없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다"라며 "이제 노조원들은 하루빨리 직장에 복귀하여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온 국민과 함께 간곡히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한나라당은 "정부는 노조원들을 군사작전 펴듯, 타도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가!"라며 "정작 공권력을 투입해서라도 진압해야 할 대상은 현정권 경제정책 실패를 주도한 책임자들이다"라고 발표했다.

<제20신>27일 오전 10시 15분 - 강제해산은 끝났다

강제해산이 종료됐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은 10여명. 대부분 여성이다. 이들을 끌어내는 사람도 역시 여경들이다. "때리지 말라"는 여성조합원과 학생들의 목소리에 여경들은 "안 때려요, 우리가 왜 때려요"라고 답했다.

운동장과 연수원의 몰골은 처참하다. 헬기의 저공비행으로 80여개의 텐트는 모두 무너지고 앙상한 철골만 남았다. 스티로폼은 공중 분해되고 반찬과 밥이 뒤엉켜 건물과 운동장은 아수라장이다. 전경들은 하나둘씩 철수하고 있다.

"강제합병 저지를 위한 금융노동자 무기한 총파업, 7.11 노정합의 사항 이행하라"는 현수막만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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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행노조원 28일 복귀시 불법파업행위 `불문'/김종현 기자

<제19신>27일 오전 10시-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강제해산 당해 나가는 30대 기혼여성(국민은행 소속)은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왜 다른 은행 합병 구실 삼자고 멀쩡한 은행 건드리냐"며 "합병되도 인원감축 없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인 것은 우리 집 다섯 살 꼬마도 다 안다"고 잘라 말했다.

-언제부터 이곳에 들어왔나.
"첫날(22일)부터 들어와 있었다."

-다음 집결지로 갈 것인가.
"물론이다."

-집에 들러서 씻고 싶은 생각은 없나.
"생각 없다."

-이곳에 있던 1만명이상의 노조원들이 다음 장소에 모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제 18신>27일 오전 9시45분- 우리는 다음 집결지로 간다

조합원들은 비록 지금 경찰의 강제해산으로 흩어지고 있지만 다른 장소로 이동을 준비중이다. 이들은 분회별로 모여 다음 장소(비공개)로 집결할 예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제 해산 당하는 이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다. 불필요한 경찰과의 몸싸움도 없다. 경찰은 조합원들이 연수원을 빠져나갈 수 있게 퇴로를 열어주고 있다.

▲ 경찰이 스크럼을 짜고 연좌농성중이던 노조원들을 강제해산시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 17신> 27일 오전 9시35분-경찰 강제해산-노조원 몸싸움 시작

오마이TV
27일 일산 강제해산 그 생생한 현장 / 노경진 기자 (와이드앵글)
26일 일산 연수원 현장 동영상 보기 / 노경진 기자 (와이드앵글)

협상이 결렬되고 9시 35분부터 경찰의 강제해산 작전이 시작됐다. 농성장의 절반 정도에서 경찰과 노조원간의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경찰은 방패로 노조원들을 위협하거나 때리면서 끌어내고 있다.

<제 16신> 27일 오전 9시25분-경찰 위험천만한 헬기동원 해산

9시 25분, 노조대표와 경찰이 해산방법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사이 노조원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협상도중 노조원을 에워싼 전경들이 물러섬과 동시에 경찰 헬기 2대가 상공을 매우 낮게 날아 들었다. 헬기는 굉음과 심한 바람을 일으키며 노조원들을 위협했다.

▲ 12월 27일 오전 8시 경 경찰 헬기 2대가 강제 해산에 앞서 저공비행으로 해산을 유도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연좌농성중이던 노조원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헬기가 일으킨 바람에 불피우다 남은 재들, 산에 쌓인 눈들, 쓰레기들이 날려 노조원들을 덮쳤다.

협상중의 이런 돌발상황이 경찰의 의도된 작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의도된 듯하다.

<제 15신> 27일 오전 9시17분-경찰-노조원 협상 "1시간의 여유를 달라"

포위된 노조원과 포위한 경찰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노조 지도부는 경찰에게 "1시간의 여유를 주면 내부 회의를 통해 자진해산할지 강제로 끌려나갈지에 대한 답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경찰측은 "1시간은 너무 길다"면서 더 빨리 결정하라고 통보. 한쪽에서는 경찰이 '실력'을 보여주려는듯 일부 노조원들을 강제해산-연행하려고 시도했으나 곧 중단했다.

이런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노조원들은 모두 찬 땅바닥에 드러누어 "일산 경찰서장을 만나게 해달라" "폭력경찰 물러가라"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장 분위기로 보아 이곳에서 노조원들이 해산한다 하더라도 직장으로 복귀하는 노조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 14신 대체> 27일 오전 9시-경찰 노조원 완전 포위

정문, 산, 담벼락 등 3방향에서 진압한 경찰이 8시 40분 현재 운동장의 노조원들을 완전포위했다. 노조원들은 정문 반대편 운동장 한켠에 몰려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51개중대 7천여명의 경찰은 이들을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다.

▲ 12월 27일 오전 7시 경 진입임박소식에 초조한 표정의 조합원(사진 왼쪽)과 강제해산에 울음을 터트리는 조합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 포위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정문 앞에서 일부 학생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기도 했으나 잠시만에 경찰에 밀려났다. 현재 노조원에 대한 연행작전은 시작되지 않았다. 여성노조원 연행을 위해 투입된 여경 1개중대는 남자경찰과 똑같이 전투복에 헬밋을 쓰고 있지만 방패는 들고 있지 않다. 노조원들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다. 그러나 경찰 헬기에 날린 농성용 천막 등으로 운동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연좌농성을 시작한 노조원들은 경찰투입을 비난하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노벨상을 박탈하라"는 구호를 계속 외쳐대고 있다.

<제 13신> 27일 오전 8시17분-경찰 정문 뚫고 진입

8시 17분 경찰이 정문 등 3방향에서 진입하기 시작했다. 사수대들은 비무장 상태에서 저항하고 있다. 경찰은 방패를 휘두르면서 사수대를 밀고 있다. 8시 30분 현재 노조원들은 운동장 한 가운데로 몰리고 있다.

경찰은 두 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이미 뚫은 정문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과 2대의 헬기를 운동장 상공에 낮게 비행하면서 농성용 천막과 쓰레기등을 날리면서 노조원들을 위협하는 것. 현재 이곳은 아수라장이다.

27일 오전 7시께 경찰의 진입이 임박하면서 노조원들이 서둘러 짐을 챙겨 운동장으로 집결하고 있다.(사진 위) 8시 17분 경찰이 진입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 12신 대체> 27일 오전 8시13분-초긴장--"정문 안열어주면 강제집행하겠다"

아침 8시 13분 정문의 경찰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강제집행하겠다"고 노조측과 국민은행 연수원측에 전달했다. 노조측은 정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침 8시 6분, 경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문 앞에는 사수대 150여명과 전경들이 얼굴을 맞대고 서 있다. 경찰은 헬기 2대를 동원A4용지 반장짜리의 유인물을 운동장의 노조원들을 향해 뿌렸다. 이 유인물에는 "국민은행-주택은행 노조원 여러분, 불법파업이니 속히 해산하십시오"라는 '최후통첩'이 들어있다.

오전 7시 40분, 경찰 헬기 2대가 국민은행 연수원 상공을 돌고 있다. 이제 날이 밝아, 연수원 주변을 에워싼 경찰 병력은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다. 경찰 병력은 현재 연수원 건물 뒷편 50미터 후방 비탈진 곳에도 촘촘히 배치돼 있다.

연수원 정문 앞에서도 사수대 1백여명과 경찰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노조원들 1만3천여명은 현재 운동장에 모두 집결한 상태. 이중엔 여성노조원 약 3천여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다행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경찰이 6시45분경부터 움직임을 보였기에 그때부터 서둘러 도시락 등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에 모인 것이다.

경찰이 들어올 경우 폭력 충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는 방송을 통해 "경찰이 들어오면 그자리에서 스크럼을 짜고 앉자"라면서 무력충돌을 자제할 것을 지침으로 내려둔 상태다. 정문 입구에는 노조 사수대원 150여명이 비무장 상태로 서있다. 지원나온 학생 15명 정도가 쇠파이프를 들고 있지만 노조원들은 이들에게도 비폭력 대응을 부탁하고 있다.

▲ 27일 오전 8시경 경찰의 농성장 진입이 임박했지만, 노조원들이 침착하게 짐을 챙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 11신 대체> 27일 07시 20분 -긴급 타전 "경찰이 연수원을 에워싸고 있다"

27일 새벽 6시 43분, 어슴츠레한 미명 속에서 경찰 병력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 정문에 배치된 사수대는 5명 남짓. 이들은 규모를 알 수 없는 경찰 병력이 정문 쪽으로 다가오다가 30미터 전방에서 우측 샛길로 빠져 인근 야산에 배치되는 것을 목격했다.

27일 새벽 6시 47분, 파업지도부는 즉각 구내 방송을 통해 "현재 경찰 병력 투입이 임박했으니 짐을 챙겨서 운동장으로 나와달라"는 경고 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있으며, "경찰 병력은 오전 8시경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재 국민은행 연수원 대운동장에 국민, 주택은행 파업 노조원 1만3천여명이 가방을 메고 모여들고 있다. 경찰병력 투입 소식이 전해지자 노조원들은 다소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현장 분위기는 차분하다.

경찰측의 한 관계자는 "현재 60개 중대 8천 4백여명이 연수원을 에워싸고 있다"며 "경찰은 3방향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 국민 주택 은행 노조 소속 1만5천여명의 조합원들이 12월 26일 밤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 운동장에서 불나비 등 노래를 부르며 추위를 쫓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10신> 27일 01시 30분 :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집에 갈 수는 없다”

농성 7일째를 맞이하는 농성장의 밤은 낮의 부산함과는 달리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있다. 27일 새벽1시의 국민은행 일산연수원에서 발견한 네가지의 장면이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119 구급차의 출입이 잦다.
낮에는 임산부 여성이 구급차에 실려가더니 방금전에는 허리디스크 환자가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담에 걸렸다며 또 실려갔다. 6일간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간 사람은 총20명.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대부분 지병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는게 일산소방서 관계자의 설명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버티고 있는 일주일째의 이 파업현장이 그만큼 처절하다는 거다.

정문앞엔 여전히 사수대가 버티고 있다.
서너겹으로 정문을 지키는 사수대 사이엔 여성들도 한두명씩 끼어있다. 우비와 두터운 잠바로 중무장한 그녀들의 손에도 쇠파이프가 들려있다. 이들은 은행노조의 여성노조원들은 아니다. 고려대, 경희대, 서울대 등에서 지원나온 학생들이다.

26일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두시간의 사수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조현경(경희대 4)씨.
“인력감축을 내용으로 하는 은행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1년간만일 뿐”이라며 “은행의 문제점을 관치금융 등 근본적인 데서 찾지 않고 사람을 줄이는 데서 찾는 건 답이 아니다”라고 파업동참 이유를 밝혔다.
조씨는 “사실 이들 대부분이 생존권 차원에서 파업에 동참한 게 사실이지만, 요즘같은 경기불황에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냐”며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사회적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잠든 노조원들 틈새에서, 또는 마당에서 불을 피워놓고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사실상 연수원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너무 답답하다”고 말한다. 정부의 일방적인 합병발표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파업)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왜 파업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답답하다는 게다.
한 여성노조원은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인력감축도 없고 합병도 없다’던 7.11합의가 깨진 이상 이대로 집에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본관 2층 기자실은 오늘도 비상대기다.
동틀무렵인 27일 아침 7시30분 경 공권력 투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때문인지 오늘은 기자들의 숫자가 더 늘었다. ‘잠시라도 한 눈 팔면 물먹을지도 모른다’라는게 의자에 앉은 채 선잠을 자는 기자들 대부분의 속마음일지도 모르겠다.


<9신> 26일 오후 8시 : 27일 새벽설, 정오설, 4시설

밤이 깊어가면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다시 찾아왔다. 진흙탕이던 운동장은 얼음판으로 변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핸드폰 충전기 앞에는 항상 십여명의 농성단이 대기중이다.

5박6일간 집을 떠나있었으니 밧데리가 남아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밧데리 한개를 충전하기 위해 그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한두시간을 기다려 충전된 전화기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건다.

한 켠에선 또다시 추운 밤을 맞아야하는 농성단들이 주변을 가능한 한 말끔히 정리하고 있다.

1만3천여명에 이르는 농성단들이 건물안에서 잠을 청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탓이다.

며칠동안 천막에서만 잠을 자던 사람들을 한명이라도 더 건물안으로 들이기 위해 스티로폼과 담요를 정리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들이 농성장을 찾아 아픈 조합원들을 진찰하고 약을 나눠주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일산연수원을 둘러싼 환경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경찰이 연수원 초입과 중간지점에 인간바리케이트를 쳐놓고 차량과 사람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 모습은 항상 있어왔던 일이다. 다만, 오늘 저녁에는 경찰의 숫자가 좀 늘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연수원 주변 아파트 단지 진입로에는 20여대의 전경차량이 계속 대기중이다. 경찰은 전경 차량을 대기위해 그 자리에 주차해 놓았던 차량을 견인조치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농성장 내부는 '공권력 투입'이 언제 또 있을지가 관심사다.
경찰이 확실한 발표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곳 농성장에는 27일 새벽설, 정오설, 4시설 등이 다양하게 퍼져나오고 있다.


<8신> 26일 오후 5시50분 : "경찰, 김빼기 작전 벌이는 게 아니냐"

"또 민방위 훈련 한 번 더 했구나"
4시30분. 어슴프레 노을이 깔리는 국민은행 일산연수원 운동장에서의 집회는 끝났다. 사수대도 원래의 대열대로 30명 가량만 남겨놓고 모두 건물 안으로 철수했다. 결국 일몰전 공권력 투입은 없었다.

"오늘 밤은 위험하니 가급적이면 외출을 삼가하고, 만일의 사태에 항시 대비하라"는 농성지도부의 당부를 뒤로 하고 이제 그들은 언제나처럼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국민, 주택은행 파업 현장인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은 이제 다소 평온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오늘은 공권력 투입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들이 농성단 사이에서 서로 오간다. 역대 정권사상 겨울밤에 공권력 투입을 했던 적은 없었다는 데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현재 연수원 외곽에 배치된 경찰 병력은 20개 중대 2천여명이다. 이밖에 '서울에서 30여개 중대 3천여명의 경찰 병력이 출발했다', '살수차 2대가 이 지역 외곽에 배치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국민 주택은행 노조 사수대가 경찰의 병력투입에 대비해 정문을 지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6일 중 병력 투입도 아직 오리무중.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경찰 병력 투입은 아직 미정"이라며 26일중 경찰병력 투입설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이에 대해 파업 지도부의 한 노조원은 "지난 23일에도 경찰 투입설이 나돌았다"며 "경찰이 김빼기 작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일몰 전이라면 몰라도 사방이 컴컴하고, 곳곳이 빙판인데 경찰로서도 병력을 투입하기에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오늘(26일) 중 경찰 병력 투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28일 금융노조 연대파업 여부는 27일 오후 각 지부별 찬반투표가 집계되는 대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26일 성명을 내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관련 "김 대통령은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안된다는 한심한 노동인식을 갖고 있다"며 "서구와 북구 유럽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노동자 경영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7신> 26일 오후 4시 : "흩어지면 죽는다"

3시로 알려졌던 공권력 투입은 없었지만 일몰까지는 아직 두시간여가 더 남았다. 국민은행 일산연수원의 긴장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밤새 추위와 배고픔에 지쳤던 노동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의 어깨에 어깨를 걸고 스크럼을 짠 채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노동가요를 힘차게 부르고 있다.

"공권력이 투입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여기서 우리가 무너지면 이런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라는 지도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당초 30-20명 규모로 2시간마다 교체되던 정문 사수대는 어느새 300여명으로 불어났다. 자구의 수단으로 들고 있던 쇠파이프도 바닥으로 모두 내려놓았다. 대신 그들은 서로서로 몸을 더욱 밀착시키며 추위를 달랬다. 공권력을 투입하면 드러누워 몸으로 대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농성지도부들은 "맞서 싸우자고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절대 무리하게 대응하지 말자"고 사수대를 독려하고 있다. 농성단은 쇠파이프 대신 전국금융산업노조의 방송용 봉고차로 정문을 가로막아 놓았다.

정문앞에는 사수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물과 옷가지, 이불 보따리 등을 들고 농성단의 가족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올들어 최고로 춥다는 오늘, 초췌해진 농성단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에는 걱정과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언제 공권력을 투입한대요?" 자신을 국민은행 부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기자에게 묻는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이유를 덧붙인다. 그는 "여기에 있는 대다수의 농성단이 은행 합병도 저지하고, 집에도 빨리 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빨갛게 부어오른 손을 비벼대고 있었다.

현재 국민-주택 노조위원장 등 핵심간부는 농성장에서 빠져나가 모처에서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지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진입로에는 경찰이 없다. 차량 두대가 간신히 교차될만한 넓이의 진입로 사이에 죽 늘어서 있던 차량들만 연신 견인차로 들어낼 뿐이다. 공권력 투입을 예고하는 것인지, 겁을 주려고 그러는 것인지..

▲ 국민 주택 은행 노조 소속 1만5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 운동장에서 '강제 합병 저지'를 주장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6신 대체> 26일 오후 2시50분 : 경찰 간부 "일몰 전에는 공권력 투입한다"

국민, 주택은행 파업 현장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파업지도부는 구내 방송을 통해 "오후 3시 정각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실내에 있는 노동자들은 전원 짐을 챙겨 운동장으로 나와달라"고 경고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또 오후 1시 30분경 일산경찰서 정보계장은 국민은행 연수원에 설치된 기자실에 들러 "연수원 진입로에 주차한 신문사 차량을 모두 빼달라"고 요청한 뒤 "일몰전에는 공권력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26일 경찰의 공권력 투입이 확실시된다.

한편 국민-주택은행 파업 지도부는 26일 오전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 대운동장에서 집회를 마친 후 노동자들에게 공권력 투입시 3가지 행동지침을 전달했다. 파업 지도부는 첫째, 경찰 투입시 예상되는 노동자들의 혼란과 부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들이 그 자리에서 어깨를 걸고 누워 연좌농성을 진행하고,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면 분회별로 잠수해 지도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한편, 지도부의 지침이 내려지기 전까지 절대로 출근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농성자들에게 대소변 보기는 가장 큰 고역 가운데 하나. 야외에 설치된 이동화장실을 가기 위해 수십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오후 12시 20분께 끝난 집회에서 이경수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은행이 망해도 합병을 해야 한다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무책임한 정부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말했다. 김철홍 주택은행 노조위원장도 연설을 통해 "우리는 생존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은행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권과 은행원의 정면대결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26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지금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면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투쟁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세로 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26일 각각 성명을 발표하고 "주택-국민은행 파업현장에 경찰을 투입하면 현정권에 대한 퇴진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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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 26일 오전 11시 : "공권력 투입에 대비하라" 계속되는 방송

ⓒ 오마이뉴스 노순택
26일 중으로 공권력 투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경찰은 26일 오전 11시께 일산경찰서에서 금동준 경기경찰청장 등 경기 경찰 지휘부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지휘관회의를 열고 공권력 투입 여부와 시기, 방법 등을 논의 중이다. 이번 긴급 지휘관회의는 1시간정도 진행될 예정이다.

경찰은 25일 밤늦게 연수원 입구 출입 통제 등을 위해 3개 중대 3백여명의 소수 병력만 남긴 채 대부분 철수시켰다가 26일 오전 9시께부터 20여개 중대 2천여 명으로 다시 늘려 원거리 배치하고 있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편 26일 중으로 경찰 투입이 확실시된다고 판단한 국민, 주택은행 파업 지도부는 5-6차례에 걸쳐 "공권력 투입에 대비하라"는 내용의 구내 방송을 내보내고 있고, 오전 10시 30분 집회에 참석하는 노동자들은 모든 소지품을 챙겨 집회장으로 나오고 있다.

또 쇠파이프와 각목 등으로 무장한 사수대를 전원 집합시켜 경찰 진입로로 예상되는 정문과 중산초등학교 방면, 고봉산 기슭 등지에 증강 배치했다.

파업지도부는 "공권력이 투입되면 강제 연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업무 복귀 회유나 협박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이에 굴하지 말고 오는 28일 2차 총파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4신> 26일 오전 9시 : 밤새 공권력 투입은 없었다

ⓒ오마이뉴스 노순택
날이 밝았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노조원들 1만 여명은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농성 6일째를 맞았다.이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익숙한 폼으로 배식대로 가서 밥과 국을 타오면서 하루는 시작됐다.

아침 햇살과 함께 찾아온 이곳의 풍경은 어제 밤과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전쟁 난민수용소를 방불케 하고 있다. 80여 개의 천막들과 탠트들, 그리고 널려있는 쓰레기들....

연수원에 준비된 숙박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숙소동의 숙박인원은 250명이다. 하지만 250명 정원의 숙소동에는 2000명 가량의 여성 노조원들이 기거하고 있다. 나머지 노조원들은 운동장에 준비된 천막들과 각 건물의 복도, 계단, 화장실 가릴 것 없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잠을 청했다. 심지어는 주차해 놓은 자동차 사이에 비닐을 둘러치고 잠을 청하는 노조원도 보였다.

연수원에 부족한 것은 숙소뿐 아니다. 1만여명의 배설욕을 채워줄 화장실이 겨우 100여개. 연수원에서 농성을 진행하면서 집행부는 100여 개의 이동 화장실을 준비했다. 하지만 만여 명이나 되는 노조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매일 아침이면 화장실 앞에서 30분 정도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표정이다.

오전 8시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식단은 매우 단촐했다. 하얀 쌀밥에 배추국, 그리고 김치. 이것이 전부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들의 하루일과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다. 추위도 여전했고 외로움도 여전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공권력 투입 시일이 임박함에 따라 긴장감의 강도가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전 9시, 예상됐던 공권력 투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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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26일 새벽 2시 : "마음이 약해질까봐 핸드폰도 꺼놨다"

파업 중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노조 조합원들은 지금 힘든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이들에게 26일 새벽은 아주 고약하기만 하다. 영하 10도. 피곤한 몸에 스치로폼을 깔고 눕기는 했지만 추위라는 적과 이들은 이 밤 또 다시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한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이야기 보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이 싸움이 과연 어떻게 끝날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농성자들의 살을 파고든다. 일부는 "추워서 잠도 오지 않는다"며 새벽녘까지 모닥불을 피우고 추위에 언몸을 녹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들이 묵고 있는 숙소 입구에는 일일 계획표와 '조합원 동지들의 파업 수칙'이 붙어 있다. 파업 수칙 중에 이런 문구도 있다.
'단결이란 함께 행동하고 파업지침을 숙지함에서 시작된다'

26일 새벽 1시. 연수원 운동장 뒤편에서 사수대를 서고 있는 주택은행 신아무개(남,38)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대구가 집인 그는 21일 연수원에 들어왔다. 7살과 1살난 아들이 있는 그는 집에 전화를 한 것이 벌써 3일전 일이다. 지금은 마음이 약해질까봐 일부러 핸드폰도 꺼놨다고 했다.

신씨는 "이번 주택과 국민의 합병은 객관적인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엉터리 합병"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소매금융과 소매금융이 합병해서 무슨 시너지 효과가 있겠느냐"며 "두 은행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인력감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26일은 신씨에게 특별하다. 어머니 제사1주기가 바로 12월 26일 이지만 그는 지금 어머니 제사에 맞춰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다. 그렇지만 그는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

"국민들이 파업을 한다는 사실보다는 왜 파업을 하고 있는지, 정부가 어떻게 약속을 안 지키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새벽 2시. 곳곳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안내방송에서는 사수대 명단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중앙상황실에서는 지도부 회의가 한창이다.

숙소 앞에서 만난 국민은행 1년차 행원인 정아무개(여,25)씨와 오아무개(남,28)씨는 "그렇게 파업이 절실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뭔가 잘못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합병으로 인한 감원이 이뤄져도 당장 저희들에게는 피해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저희들은 선배들 보다 아마 더 짧은 시간 안에 직장을 떠나야 할겁니다."

오씨는 방금 인터넷을 통해 국민은행 인사부에서 26일 근무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하루 일당 20만원을 내건 사실을 확인했다. 오씨의 일당이 3만 8000원임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대우다.

"은행이용자들의 불편은 이해하지만 은행이 이런 불합리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파업 효과를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좀 납득하기 힘듭니다."


<2신> 26일 새벽0시30분 : "26일이 고비다"

파업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들은 지금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 일부 농성자들은 추위를 피해 연수원 건물안으로 들어왔다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잠을 청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국민은행 노조의 한 간부는 이번 싸움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와 은행에서 은행합병에 대해 차근차근 설득작업을 진행했다면 이렇게 조합원들이 분노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파업은 조합원들의 분노가 폭발해서 시작된 싸움입니다. 그래서 노조 지도부들의 부담감도 훨씬 더 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중앙상황실에서 만난 주택은행 노조 김철홍 위원장은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격려차 방문한 주택은행 차장급 이상 간부 30여명과 인사를 나누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철홍 위원장은 이번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의 파업에 대해 "겉으로는 은행합병 반대싸움이지만 뒤집어 보면 DJ정부 구조조정정책 전체와의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 26일 새벽에 공권력 투입이 예상되고 있는데.
"연말이다 보니 은행으로서는 하루 하루가 어려운 상황일 겁니다. 공권력 사용을 통해 1만명이 넘는 인원을 해산하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이 인원을 해산시킨다고 직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죠."

- 고비를 언제로 보십니까.
"26일 지나면 은행 업무가 완전히 마비되기 때문에 26일이 가장 큰 고비라고 봅니다."

- 정부와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정부는 현재 아무런 카드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1신> 25일 밤11시30분 : 일산국민은행 연수원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밤 11시 30분. 경기 고양시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 주택은행과 국민은행 조합원 1만여명이 모인 이곳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수원에서 5일째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1만여명의 국민은행, 주택은행 노조원들은 추위와 불안감이라는 두 가지 적과 싸우고 있었다.

정부는 두 은행 노조파업이 계속되면 가계는 물론 기업의 연말 자금수요까지 겹쳐, 금융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26일 오전까지 노조원들의 자진해산을 적극 유도하되 노조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강제해산에 나선다는 방침이어서 빠르면 26일 중 공권력이 투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수원 정문에서는 20여명의 노조원들이 출입을 통제하며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고, 불과 50미터 앞에는 전경 50여명이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이들과 대치하고 있다.

연수원 곳곳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워 놓은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다. 연이어 들려오는 공권력 투입 소식에 사수대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연수원 1층 중앙 광장에는 한 번 충전에 500원을 지불하는 이동식 핸드폰 충전장치가 마련돼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사수대를 자원해 3일째 근무를 서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경찰은 3일째 '양치기소년’노릇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경찰력 투입설이 나돌아 노조원들을 잔뜩 긴장시켜 놓고는 슬그머니 물러가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내린 눈으로 인해 땅이 얼음판이 돼 경찰측에서도 위험부담 때문에 새벽녘에 경찰투입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25일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하기보다는 자진해산을 유도한다는 게 기본방침"이라면서 "은행업무가 시작되는 26일 오전까지 농성이 계속되면 그때가서 경찰병력의 투입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이날 검문검색에 필요한 20개 중대 2천여명만을 농성현장 주변에 배치한 가운데 일산연수원에 자진해산을 촉구하는 전단 2천300백장을 뿌리고 경고방송을 하면서 노조원들에 대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편 파업지도부는 공권력 투입에 대비, 사수대의 숫자를 400명으로 늘리고 오는 28일까지 현 위치를 고수하되 강제해산되면 지도부가 지정하는 별도 장소에 재집결하라며 노조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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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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