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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문단권력 휘두르나"

"김언희 시인에 내 멋대로식 비평
폭력적 페미니즘…왜곡·억지 삼가야"
김정란씨 "비판글 아직 못 읽었다"

11월 20일 <조선일보> 문화면에는 위와 같은 인상적인 제목과 부제 하에, 문학비평가 남진우(40) 씨가 시인 김정란(47) 씨를 혹독하게 비판한 내용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남진우 씨의 글은 <문학동네> 겨울호에 '시인론 : 메두사의 시 - 김언희의 시세계'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것인데, 조선일보 기사는 남진우씨 글 말미에 언급된 김정란 시인에 대한 비판을 소개한 것이다.

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이, 남진우 씨가 제기한 비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문단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온 김정란 씨야말로 이른바 '문단권력'이며, 둘째, 김정란 씨의 비평은 왜곡, 억지가 특징인 '내 멋대로식'이라는 비판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남진우 씨에 의해 제기된 비판과 그의 비판을 기사화한 조선일보의 편집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남진우 씨의 글이 논리적인 근거를 지닌 비판이라면, 이는 '문학권력'에 대한 거침없는 문제제기로 관심을 모아온 김정란 씨의 일련의 비판 작업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된다. 특히, 김정란 씨야말로 '문단권력'이라는 그의 역비판은, 김정란 씨 본인이 이른바 '문단권력'에 대한 비판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그의 비판이 객관적인 타당성이 결여된 일방적 비난에 불과하다면, 김정란 씨가 그간 '<문학동네>가 <조선일보>와의 유착 관계 속에서 특별한 후원 하에 성장했다'고 공개 비판했음에 비추어 볼 때, 남씨의 의도적인 '김정란 죽이기' 시도가 아닌가 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미 <창비 게시판>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기사를 '문학동네'와 '조선일보' 측의 '김정란-안티조선 죽이기'라 주장하고 있다.)

2. 조선일보는 그간 '문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문학권력과 관련한 일련의 논쟁들을 기사에서 다루지 않았었다. 특히, 조선일보와 관련된 김정란 씨의 문단권력 비판은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최근, 문단의 뜨거운 이슈인 이명원 씨와 김윤식 교수 표절 파문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단지 '문단에 파문이 일 조짐'이 있다며, 유독 김정란 씨에 대한 남진우 씨의 역비판만 기사화하여 중요하게 취급한 건 의문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쟁점에 대해, <오마이뉴스>라는 열린 매체를 통해, 공개적인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져 시시비비가 명백하게 밝혀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비판의 대상자인 김정란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반론을 들어 보았다. 남진우 씨와도 인터뷰하기 위해 출판사 '문학동네'와 그의 자택으로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해 보았으나 부재중이라 그의 논평을 들을 수 없었다.

김정란 씨는, 남진우 씨가 '제 멋대로식 비판'의 근거라며 제시한, 김언희 시인에 대한 자신의 두 가지 언급은, 전혀 다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남진우 씨가 이를 특정 문장만 의도적으로 빼내어 상호 모순인 것처럼 왜곡시켰다며 분개했다. 한마디로, 조선일보의 최장집 교수 검증 사건 당시, 글의 맥락을 무시한 채 특정 문장만 나열하여 최교수를 곤경에 빠뜨린 일을 연상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 '내 멋대로식 비평'인가, '문맥을 무시한 왜곡'인가

관련기사 - 문학동네는 조선일보의 특별한 후원하에 성장했다?


다음은, 김정란 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남진우 씨는, 김언희 시인에 대한 김교수의 비판이 "전혀 반대되는 평가를 동일한 대상에게 적용한 기회주의적 비평"이라고 주장했다. '내멋대로식 비판'의 근거로 제시된 이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진우 씨가 내가 김언희 시인을 극찬했다고 주장한, '세계사 시인선 100호 기념'으로 쓰여진 <언어의 전위를 지켜온 외로운 선택>이라는 글에서, 나는 다른 여러 명의 시인들의 이름과 함께 김언희 시인의 이름을 언급한 바 있다. 그 글은 나의 비평적 입장을 밝히는 글이 아니라, '세계사 시인선'의 전체적 편집 방향의 의미를 규명하는 글이었다. 나는 '세계사 시인선'이 한국 문단 안에서 비교적 '순수한 문학적 고려'를 잘 적용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나의 개인적인 입장이 어떻든, 편집진이 선택한 시인들의 독특함을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그 글에서 김언희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더라도, 그녀를 독특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거명하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시세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독특함만은 인정해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맥락을 무시하고 문장 한 구절을 가져다가 자기가 편한 대로 적용하는 남진우 씨야 말로 '내멋대로식' 비판을 한 게 아닌가?"

- 김언희 시인에 대해 '여성의 육체를 난도질해서 구경시켜주고 그 몫을 문학적으로 챙긴다'고 비평한 김교수에 대해, 남진우 씨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가장 부정적인 형태의 페미니즘 비평'이라고 비판했는데...

"남진우 씨는 평소 뚜렷한 반페미니즘적 시각을 고수해 온 비평가이다. 그가 갑자기 페미니즘에 온정적인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김언희 씨의 시세계에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비평가들과 여성시인들이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노혜경 시인도 김언희 시인의 시세계를 <페미니즘의 얼굴을 한 반페미니즘>으로 보고 있다. 김언희 시인의 시세계는 겉보기에는 여성 육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사실은 남성의 가학충동을 충족시켜주는 매우 반페미니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나는 여성들이 의식없이 이처럼 편한 외적인 문화 코드를 차용해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반페미니즘적 환상을 양산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본다. 이런 코드들은 비평가들의 눈길을 끌어당기기에는 아주 편하다. 그러나 기실 여성성은 이러한 환상들에 의하여 황폐화된다고 본다. 남진우 씨는 내가 평소에 어떤 비평을 해 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비평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 단호하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진우 씨는 중앙일보에 쓴 '독서일기'에서, 권력자들이 인정하는 작가들을 얌전하게 추인하는 여성비평가를 지혜로운 <아테나>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비평관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 비평가를 추악한 <메두사>로 분류한 적이 있다.

그에게는 남성권력자들의 말을 얌전하게 듣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는 여성비평가는 무조건 흉한 괴물로 보이는 것 같다. 요컨대 남진우 씨는 <온순함> <수동성>을 <페미니즘>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남성들의 세계관을 추종하는 여성 작가들을 내가 비판한다고 나에게 <폭력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내가 폭력적인지 아닌지는 독자들이 내 비평들을 직접 읽고 판단해 달라."

- 남진우 씨는 '새예술의 해ㅡ문학 분과'에 참여하고 있는 김교수를 가리켜 "현 정부의 문화행정 브레인"이라 지칭하면서 김정란 씨야말로 이른바 '문화권력' 아니냐'고 했다. 문화권력, 문단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온 당사자로서 역비판을 받았는데...

"나는 나더러 <문화권력>이라고 말하는 데에 대해 난감한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초야에 묻혀 있는 시인들이나 작가들에 비해 보면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예중앙]에 다른 편집위원들과 상의해서 조금씩 지면을 마련해 주는 것?, 문예중앙은 다른 잡지들과 달리 편집동인들이 수십년씩 편집권을 장악하고 있는 잡지가 아니다. 2년 정도의 임기로 편집진이 바뀐다. 그런데 무슨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참고로, '문예중앙'에도 이미 달포 전에 사퇴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이명원 사태를 두고 문단이 보이는 행태에 많이 실망했다.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문인들과 함께 걸어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는 10년이 넘도록 비평활동을 해왔지만, 중요 문예지로부터 비평원고청탁을 받은 경우가 두 번밖에 없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은 내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문예지들과 지방 문예지들, 그리고 시전문지들뿐이었다. 나는 내가 '기득권 문인'들로부터 비평가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그 흔한 신춘문예 예심에조차 참여해 본 적이 없다. 문학상 심사는 더 더욱 그렇다. 남진우 씨는 여러 문학상 심사와 신춘문예 심사에 단골로 참여하는 비평가 중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남진우 씨는 대체 누구더러 권력을 휘두른다고 일갈하는가?

특히, 문화관광부에서 주최하는 <새예술의 해> 행사에 문학분과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두고 "김대중 정부 문화행정 브레인"이라고 주장했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너무 심한 왜곡이다. 그러면 같은 문학분과위원인 김상수 씨도 정과리 씨도 이영진 씨도 이광호 씨도 모두 '김대중 정부 문화행정 브레인'이란 말인가?

<새예술의 해>에서 대체 무슨 문화정책을 수립했는가? <새예술의 해>는 적은 예산으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실험을 해 보는 기획이다. 정말 적은 예산밖에는 없기 때문에 기획료 한푼 받지 않고 희생적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문학분과위 사이트에는 멀티미디어로 작업된 시들이 올려져 있다. 'live poem'이라고 이름붙였다. 가난한 시인 개인으로서는 이런 첨단의 실험을 해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적은 지원이나마 받아서 새로운 장르를 실험해 보는 것이다. 이 일도 12월이면 끝난다. 이런 일이 '김대중 정부 문화 행정 브레인'이 하는 일인가?

내가 '정부의 문화행정 브레인'이라는 남진우 씨의 주장은, 독자들에게 나를 정부의 '홍위병'으로 의심받게 만들려는 의도적인 왜곡이다."

-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부했는데, 공개 지면을 통해 해당 글에 대해 정식 반론을 펼 생각이 있는가?

"없다. 조선일보는 어차피 자기들 편한 대로 편집하는 신문이다. 신뢰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건은 나 개인에 대한 비판에 관계된 건이다. 내 개인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서 시민연대 차원에서 결의한 조선일보 기고 거부 원칙을 깰 수 없다.(김정란 씨는 인터뷰를 거부했음에도, 조선일보 지면에 자신의 사진이 임의로 게재된 데 대해 불쾌감을 표현함)

- 김교수는 <인물과 사상12>(개마고원)을 통해, '문학동네'와 '조선일보'의 유착관계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문학동네' 측의 직간접적인 공개 반론 혹은 해명이 있었는가?

"전혀 없었다. 대신 온갖 끔찍한 소문들은 다 들었다."

- 김교수는 이번에 남진우 씨의 주장을 조선일보 측이 다루어 준 게,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대로, 'MBC 백분토론', <신동아> 10월호 기고문 등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에 활발히 참여해 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가?

"그동안 조선일보에서는 조선일보 문제와 문단 권력 문제를 둘러싸고 그토록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어도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다른 언론사에서 여러 번 다룰 동안 계속 모르는 체해 왔고, 문단권력 비판이 조선일보 문제와 상당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혀 기사화하지 않다가 왜 갑자기 이 건을 이렇게 들고 나왔는지 알 수 없다. 남진우 씨가 쓴 글은 '김언희론'이다. 그런데 왜 <보유>에서 곁가지로 다루고 있는 김정란 비판을 그렇게 크게 기사화하는 것일까?

남진우 씨 입장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본격적인 비평도 아니고, 벌써 한참 지나간 1997년의 대담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내 가지고(그것도 나에 대한 직접 비판이 아니라 김언희 시인론을 쓰는 계제에 옹색하게 끼워넣어서), 내가 단순히 다른 시인들 이름을 거론하면서 김언희 시인의 이름을 함께 거론한 것을 가지고, 무슨 큰 일이나 났다는 듯이 과장을 하고, 또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기에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희극적이다.

결국 이 건은 '문학동네'가 반조선일보운동진영의 문제제기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조선일보에 대한 분명한 거부 의지를 천명해 왔던 나에게 타격을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비평적 무리수'라고 본다. 그리고 조선일보가 과장과 왜곡이 심한 이 비판에 대해 '문단에 파란이 일 조짐이 있다'며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도 우습다.

이로써 '문학동네'의 조선일보와의 유착은 한번 더 분명해졌다, '문학동네'는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반조선일보운동 진영의 문제제기에 답변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김정란 한 사람을 무너뜨린다고 조선일보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할 문학동네의 의무가 사라지지는 것은 아니다."(이어지는 세 번째 기사, '문학동네는 조선일보의 후원아래 성장했다?' 참조)


단순히, 비아냥거리기 위한 표현인지, 아니면 진지한 비판인지 알 수 없으나, 김정란 씨가 '정부의 문화행정브레인이므로 문단권력'이라는 남진우 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반면, 김언희 시인에 대한 김정란 씨의 비평이 실제로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한 '제 멋대로식' 비평인지, 아니면, 남진우 씨의 비판이야말로 맥락을 무시한 '제 멋대로식' 비평인지는, 독자들 각자가 원문을 통해 판단해 봐야 할 듯하다.

이어지는 두 번째 기사에는, 남진우 씨가 김정란 씨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문장들이 실린, 원문 두 개가 실려 있다. (<현대시> 97년 12월호 등)

한편, 남진우 씨의 비판을 소개한 조선일보 문화부 어수웅 기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간 조선일보에서 문학계에 논란이 되어온 문단권력 논쟁은 다루지 않다가 유독 김정란 씨에 대한 남진우 씨의 역비판만 비중 있게 다룬 건 공정성이 결여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간 김정란 씨 등의 문제 제기는 조선일보도 기사화하지 않았지만 관심을 두어 왔다. 그러나, 김정란 씨의 주장은 여러 매체를 통해 충분히 다루어졌고 반영되었다. 반면, 남진우 씨의 역비판은 처음 있는 새로운 주장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사화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정란 씨의 반박에 대한 재반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다음은, 조선일보 11월 20일자 문화면에 "누가 문단권력 휘두르나"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의 전문이다.

"김언희 시인에 내 멋대로식 비평 
폭력적 페미니즘…왜곡·억지 삼가야" 
김정란씨 "비판글 아직 못 읽었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40) 씨가 역시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김정란(47) 씨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게재, 문단에 파문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씨는 김씨가 근년 들어 이른바 문학권력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일부 문인들을 공격해온 것에 대해, 정작 김씨가 문단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며, 동료 문인들에게도 내 멋대로식 비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년들어 일부 문단 세력을 겨냥한 비판이 문학권력 논쟁의 이름 아래 잇달아 개진됐지만 이에 대한 역비판이 제기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남씨의 글은 문예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시인론: 메두사의 시-김언희의 시세계란 제목으로 실렸다. 남 씨는 이 글 뒷부분의 8쪽 분량을 김정란 씨에 관한 기술에 할애, 자신에게 주어진 지면의 암묵적 요구에 맞춰 전혀 반대되는 평가를 동일한 대상에게 적용하는 기회주의적 비평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글에서 남씨는 김정란씨가 시인 김언희씨의 작품들에 대해 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강간, 여성적 정체성의 개간 노력을 초토화시킨다는 등으로 비판(월간 현대시 97년 12월호 대담)했다가, 다른 글(세계사 시인선집 100권 발간 기념 시집 '내 몸이 시다' 해설)에서는 세계사 시인선이 아니었으면 잃어버렸을 빼어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상찬하고 있다고 혹독히 비판하고 있다. 

남씨는 또 김정란 씨가 김언희 시인에 대해 여성의 육체를 난도질해서 구경시켜주고, 그 몫을 문학적으로 챙긴다고 비판한 것도 꼬집었다. 

남씨는 김언희 시인이 유명 문학상을 탄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를 낸 것도 아니며, 지방 소도시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뿐이라고 소개하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주요 문예지의 편집위원 겸 현 정부의 문화행정 브레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정란 씨가 이른바 문단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비꼬았다. 

남씨는 김정란 씨의 이같은 행동이 단순하고 폭력적인 가장 부정적인 형태의 페미니즘비평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가는 길손을 잡아다가 자기 침대에 누인 뒤 키가 침대보다 크면 자르고, 작으면 늘려서 죽였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테스를 예로 들었다. 김정란 씨에게 페미니즘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이며 자신과 자신이 편애하는 작가 시인들에게 그럴싸한 후광을 부여하고, 싫어하는 작가 시인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데 더없이 유효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씨는 김정란 씨에게 남을 비판할 때, 특히 동료 문인들을 비판할 때, 사실을 왜곡하거나 억지를 부리지는 않는 최소한의 양식을 유지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편 김정란 씨는 전화통화에서 아직 남 씨의 글을 읽어보지 않았다"며 조선일보에 내 이름이 인용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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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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